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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Apr 03. 2021

비의 온도는?

창문에 맺힌 빗방울



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저녁 내내 쏟아지던 비가 급기야 폭우로 변해 창문을 후려쳤다.

'타닥타닥 타다닥... 쏴아~~~~'


싱가포르의 가옥 구조는 보통 거실에는 오픈형 베란다가 넓게 자리하고 있고 각 방마다는 'Bay window(베이 윈도)'라고 하는 허벅지 높이의 턱 위로 창문이 넓게 차지하고 있다. 방이 상당히 좁기 때문에 그 베이 윈도에 바짝 붙여 침대를 놓으면 인테리어는 끝이다. 추가로 다른 가구는 들여놓을 공간도 없을 만큼 협소하여 마치 창문에 바싹 붙어 자는 느낌. 그래서 비가 이렇게 심하게 오는 날에는 자는 내내 빗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다. 어려서부터 유독 비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느낌마저도 참 사랑한다.



Bay window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아 오늘도 빗소리 들으며 푹 자겠네~~ 잘 자~"

라고 인사를 하고 아이를 눕힌 뒤 단톡방에 쌓여있는 수십 개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대화를 찬찬히 훑어보니 그중 한 친구의 남편과의 대화가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방에 들어와 이렇게 물었단다.

"비가 엄청 와요, 비의 온도는 몇 도?"

".... 춥도다?"

"비가 오도다...."

"때릴까?"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그리고 그 장면을 생각할수록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와서 옆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난센스야~ 비의 온도는 몇 도?"

"우도?"

"아냐, 5 도래 5도. 비가 오도다.... 웃기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쉴 새 없이 배를 잡고 웃는 나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남편은 외쳤다.

"남의 남편이 한 유머가 그렇게 웃기냐 흥! 내가 더 웃기는구먼"

"나 너무 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아래 또 다른 친구의 남편은 이렇게 물었단다.

애가 오늘 나오려나 내일 나오려나 기다리고 있는 만삭의 친구에게

"오늘은 애 나올 거 같아?"

"아직 36주 차인데 좀 더 있어야겠지..."

"그럼 나 한잔 해도 돼?"

".... 아놔..."


다들 비가 오니 난센스 유머가 생각이 나고 한 잔의 맥주가 생각나는 그런 밤이었나 보다.

우리 부부는 아까부터

"오늘은 비가 오니까 얘 일찍 재우고 넷플릭스 보자"

라고 굳은 다짐을 하며 벼르고 있던 넷플릭스 영화 "Crazy Rich Asians" 검색하고 있었지만 영락없이 그냥  잠들고 말았다.

한 달에 한편도 못 보는 넷플릭스는 구독을 끊어야 맞는 것인데 왜 이렇게 안 끊어지는 거니.


내가 비를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학창 시절에 교복을 입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비를 바라보던 때가 생각난다.

비가 오는 날에는 특히 공부가 잘되었다. 저기압이 깔리면 나도 따라 몸과 마음이 가라앉으며 차분해졌다. 살짝 한기가 들 때 옷깃을 부여잡는 그 느낌도 좋고 창문에 닿는 빗소리는 '엠씨 스퀘어' 저리 가라 나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했다. 연필을 잡고 공부를 하다 보면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나곤 했는데 비가 오는 날은 그렇지도 않았다. 하굣길에 우산을 쓰고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기억도 좋았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된 후 일을 할 때도 운전을 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커피숍에 앉아 무언가를 할 때도 나는 그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잡고 있으면 모든 일이 잘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느낀 비의 온도이겠지.

나의 비의 온도는?


비가 오면 꼭 장화와 우산을 챙겨 나가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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