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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May 17. 2021

마라샹궈와 버블티

중국인데 중국 아닌 중국 같은 너, 싱가포르



“오늘 저녁은 마라샹궈 콜?!”

남편은 마라샹궈 중독자다.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문화와 음식에 대해 좋지 않은 쪽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품고 있던 그다(Covid-19 사태 발발 이후 미국과 미국인의 자유주의가 이기주의로 변질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미국을 향한 그의 맹목적인 사대주의는 비로소 사그라들었다). 내가 중국에서 살다 왔으며 중국 음식 애호가라는 것에 대한 것쯤은 본인의 미지의 영역에 대한 것에 대한 반감인 듯 알고자 하지도 않았었다. 일종의 경시 어린 시선을 보냈다고나 할까. 시절이 어느 때인데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시끄럽고 예쁘지 않은 언어)과 함께 그 언어를 1도 배우려 하지 않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중국어가 공용어인 싱가포르에 살고 있으면서조차. 하지만 그런 그의 취향 따위는 고려될 새도 없이 나의 남편이 되어 버린 이상, 얼마 전부터는 아이까지 유치원에서 중국어를 배워와서는 아빠에게 중국어 회화에 대한 압박을 시작하게 된 이상,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존중해야 했다.



처음 마라샹궈를 먹어본 그의 반응은 단순히 “아 매워~ 이렇게 매운걸 왜 먹어?”였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그저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향이 있고 나중에는 그 향에 인이 배겨 며칠 안 먹으면 금단현상에 시달리게 된다’며 그 중독성에 대해 설파하는 나의 마라샹궈를 향한 애정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었다. 적어도 그것을 먹어보기 전까지는.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음식이 꽤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마라샹궈"를 으뜸으로 꼽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나의 경우만이 아니다. 이 곳 싱가포르에는 특히 한국인 아줌마들 중에 이 마라샹궈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나가서 사 먹다 성에 차지 않았는지 급기야 소스를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먹고는 스스로 <마라샹궈 맛집>이라 칭한 뒤 이 사람 저 사람을 초대해 만들어 먹이곤 한다.



마라샹궈(麻辣香锅)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보면,“마비될 마+ 매울 라+향기 향+냄비(뚝배기스러운)”라는 뜻이다. 즉 ‘혀가 마비될 정도의 매운 향이 나는 냄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매운 향이 나는 소스에 고기, 생선, 채소, 누들 등 갖가지 재료를 기호대로 골라서 마라 소스에 볶아 먹는 음식인데 특별한 조리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가볍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다. 그 기원은 중국의 쓰촨 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사실 특별한 유래는 없고 총칭 지방의 가정에서 해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것저것 남는 나물 다 넣고 고추장에 휘휘 비벼먹던 비빔밥 정도라고 생각해야 하나. 내륙지방 기후의 특성상  바다와 멀어 기온차가 심하고 습하기 때문에 음식의 보관이 어려웠고 따라서 부패를 막기 위해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여 볶아먹던 것이 흘러 흘러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어린 날 중국 유학 시절, 학교 구내식당에서 먹던 마라샹궈. 낯선 기후와 언어 탓에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스트레스를 좀 받곤 했었는데 그럴 때 국적과 생김새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마라샹궈를 먹으러 가곤 했다. 원래 매운 음식에는 취약하여 항상 “쫑라!(미디엄, 중간 정도의 매운맛)”로 먹었어도 그 매운 향에 곧 혀가 얼얼해졌었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푸지게 한껏 먹고 나면 이마에 살짝 땀이 흐르며 그 날의 스트레스가 풀려 잠을 잘 자곤 했다. 그런 옛 추억 때문인지 마라샹궈는 나의 ‘소울푸드'가 되어버렸고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씩 찾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꼭 그 후에는 ‘버블티'로 속을 달랬어야 했다. 지금은 ‘버블티'라고 하지만 20년도 넘은 그 시절에 내가 처음 학교 매점에서 ‘버블티'를 만났을 때의 이름은 ‘쩐주나이차'였다. 한국말로 한자 그대로를 번역하면 ‘진주 밀크티'인데 여기서 ‘진주’가 ‘버블'을 뜻한다. 동글 매끈 유리알처럼 투명한 모양새가 흑진주 같아 보여서 일까. 게다가 버블도 흑진주, 백진주처럼 색깔도 다양하다. 간식 문화가 유난히 발달한 대만에서 시작해 중국 대륙 전체로 유행이 번진 이것은 밀크티에 타피오카로 만든 까만 구슬(버블)을 넣어 간식으로 먹던 것이다. 달달하고 쫄깃한 맛에 씹어먹는 재미에 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어 오후 간식으로 안성맞춤인 이 음료는 중국 학생들의 국민 간식이었다. 지금이야 <공차>, <KOI>, <타이거 슈가> 등 곳곳에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이것을 팔지만 그때는 이런 대형 브랜드들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학교 매점에서만 팔던 매우 저렴한 학생 간식이었다.





남편이 퇴근한  우리는 좋아하는 오차드 Wisma Atria 4층에 위치한 마라샹궈 집으로 향했다. 거기서 신나게 마라샹궈를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린  입가심으로는 건너편 Paragon 지하에 위치한 Tiger Sugar 가서 '블랙슈가 보바 밀크티' 원샷한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영혼의 소울푸드들을 20년이 지나   싱가포르에서 다시 만나게  줄이야. 이번에는 소울메이트도 함께다. 리콴유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고 싱가포리안이라고 했지만 곳곳에 중국인의 정취가 강하게 묻어나는 이곳은  눈에는 아무리 봐도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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