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다녀온 첫 주, 본격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남자와 단 둘이 살아보는 경험도 낯설었지만 갑자기 집 안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역할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 전에는 나의 작은 방 하나만 잘 간수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거실을 포함한 집 전체가 나의 공간이라는 것에 왠지 (자가는 아니었지만) 집의 주인이며 안방마님이 된 것 같아 조금 설레기도 했었다. 동시에 '이 집 전체를 내가 관리하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청소, 빨래, 기타 등등의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왠지 피하고 싶은 낯선 공간 하나. 그것은 바로 부엌이었다. 그럼 이제 저 부엌도 나의 것인 거잖아?
그랬다.
결혼 전에 엄마는 내게 요리를 가르쳐준 적도 없고 하라고 시킨 적도 없었으며 그런 것을 결혼 전에 모두 배워야 하는 신부수업이라고 말해준 적은 더더욱 없었다. 여느 남자와 동일하게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했고 일을 했다. 살면서 누군가의 끼니를 걱정해본다는 일은 상상도 못 해봤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저 부엌이 왜 나의 것이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지, 이 집은 물론이고 부엌도 남편과 나의 것이지. 우리는 이 공간을 함께 쓰는 것이지.'라고.
하지만, 그런 나의 고쳐먹은 생각은 허망하게도 부엌은 나의 공간이 되었고 아이마저 '엄마는 자기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부엌은 나의 것인 것이 맞다.
결혼 전 나는 엄마에게 어떠한 성 역할을 규정짓는 어떤 발언도 삼가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터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엄마는 상견례 자리에서,
"제가 특별히 가르친 게 없어서 할 줄 아는 게 없을 거예요. 그래도 청소는 잘해요~"라고 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나는 속이 상했다.
엄마는 겸양의 표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마치,
"여자라면 시집가기 전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쯤은 기본으로 익히고 시집을 가야 한다. 그것이 여자의 역할이니라."라고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암묵적인 목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둘 다 처음이라 아이를 제대로 안을 줄도 기저귀를 갈 줄도 목욕을 시킬 줄도 몰랐다. 남편도 나도 병원과 조리원에서 모두 처음으로 배우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경청하며 받아 적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했다. 오히려 나는 아이를 낳고 누워있는 통에 아기 기저귀를 먼저 간 것도, 분유를 먼저 먹여본 것도 남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 나오기 직전까지는 나보다 남편이 처음 하는 육아에 훨씬 능숙했다. 그런데 집으로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남편은 낮에 회사에 나가 일을 했고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지내다 보니 아이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고 자연스레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은 점점 그 능력이 나에 많이 뒤처져갔다. 하다못해 무엇 하나를 할 때도 꼭 나에게 물어보고 하는 것이었다.
"분유 몇 미리 먹여? 물은 얼마나? 온도는? 한 번 봐줘." 등등.
아이와 관련된 일들에서 단 5분이라도 해방되고 싶었던 나는 그 물음조차도 너무 짜증이 났다.
"왜 애는 같이 키우는데 난생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행동을 하는 거지? 모르겠으면 하루 종일 수유량, 잠 텀, 대소변을 적어놓은 일지를 보면 되잖아."라고 했다.
그런 소소한 다툼 거리들을 엄마에게 털어놓으면 우리 엄마는,
"남자들은 처음에 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겁이 나서 그래~" 라며 남편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니 나는 뭐 두 번째야? 그럼 나는 뭐 처음부터 알았나? 닥치면 다 하는 거지~ "라고 볼멘소리로 받아쳤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한참 바빠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에는 자꾸 우리 신혼집에 와서 밀린 설거지를 해줬다. 나는 엄마가 내 집에까지 와서 살림을 해주는 것이 미안하고 불편해서 절대로 집안일이며 설거지를 못하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 이건 우리 살림이고 정서방이 이따 알아서 할 거야~~ 엄마가 설거지를 해주는 건 날 도와주는 게 아니고 정서방을 도와주는 거야~~ 그러니 나를 도와주고 싶으면 설거지 말고 딴 거를 해줘."라고도 해보았지만 엄마는 귀찮다는 듯 재빨리 설거지와 밀린 청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시곤 했다.
아침에 엄마들의 단톡 방에 불이 났다.
아침에는 아빠가 오후에는 엄마가 아이의 등원 하원을 책임지기로 역할 분담을 한 집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이의 아빠가 아이가 갑자기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차에서 내리지를 않으며 떼를 쓰자 엄마를 소환했다는 것. 남편은 그 길로 엄마를 호출했고 그걸 본 엄마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아니 알아서 애를 잘 달래서 들어가면 되지, 거기서 나를 왜 불러?"라고 신경질을 빡! 냈다고 했다.
나는 예전에 남편이 그런 비슷한 행동을 할 때,
"아니, 회사에서 일도 그런 식으로 하나 봐요? 주인 정신없이?"라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었다.
남자들이 회사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하면서 집안일이나 육아를 분담할 때에는 비교적 책임감이 떨어지는 것 같기에 한 말이다. 최근에 남편의 한 친구가,
"재택근무를 하니까 와이프가 집안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짜증 나."라고 했단다. 그러자 우리 남편은 자신의 친구에게 이런 명언을 남긴다.
"야 인마, 그건 네가 그게 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래, 니 일이라고 생각을 해봐."
오우, 장족의 발전이다.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피땀 눈물 어린 그 간 투쟁의 역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놀라운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