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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Jul 16. 2021

나는 내 딸이 되고 싶다

나는 예쁜 걸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게 예쁘게'를 강조하며 키워준 엄마의 영향일까?

연년생 딸 둘을 키우는 딸딸이 엄마이니 어지간히 예쁘게들 키우고 싶었을까. 


요즘에야 인터넷 쇼핑몰에 커플룩이다 패밀리룩이다 하여  값싸고 질 좋은 상품들이 널려있지만  옛날 내가 어릴 적 40년이 다 되어가는 그때 그 시절에는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는 나와 동생을 종종 같은 디자인의 다른 색, 혹은 윗도리와 치마 색깔 매칭을 반대로 한 일종의 커플룩을 입혀서 데리고 다녔는데 아직도 동생과 맞춰 입은 옷 중 내 머릿속에 제일 기억나는 옷은 엄마가 동네 양장점에 가서 천을 떠서 코바늘 뜨개질로 만들어준 동생과 나의 커플룩이다. 나에게는 흰색+하늘색 실로 짜인 여름용 니트 드레스를 동생에겐 빨간 치마에 하얀 물방울무늬 무늬가 들어간 드레스를 지어주셨다. 지금도 가끔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그 원피스는 참 예쁘다.


그렇게 애살바리 우리를 키운 엄마는 옷이나, 머리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자세, 말투 등 행동거지까지도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썼는데 우리가 아주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모든 면에서 엄마의 코칭과 터치가 지나가지 않은 지점이 없다 할 정도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엄마 말로는 내 여동생은 유독 어렸을 때 혀 짧은 소리를 냈다고 했다. 나는 그걸 분간할 나이도 아니었고 기억에도 없지만 내가 잊을 수 없는 건 어느 날 여동생에게 혀 밑을 절제하는(요즘에 알게 된 '설소대' 수술)을 시킨 것이다. 아직도 그날 동생이 방에서 아픔을 참으며 끙끙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후로 동생은 정말 혀가 길어졌고 그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정말 발음이 정확하다 못해 똑똑하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어느 날,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치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앞니가 살짝 뻐드렁니였는데 그것을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강제로 이 전체를 벌렸다가 다시 합치는 교정기를 끼게 되었고 자는 동안에는 머리에 헤드기어까지 끼고 무려 3년을 보냈다. 그 헤드기어를 끼고 이빨엔 고무줄을 칭칭 감고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아팠고 침은 베개로 다 흘러있고 얼굴에는 헤드기어에 눌려 당겨진 자국이 선명하게 생겨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은 등교한 이후 첫 시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엄마가 갑자기 거실 바닥에 테이프를 주욱 길게 붙였다. 동생의 걸음걸이가 '팔자'라며 그것을 교정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머리 위에 책을 올리게하고 그 선을 따라 똑바로 걷는 연습을 시켰다. 미스코리아라도 내보내려고 했던 걸까. 아무튼 어디 '예쁜이 선발 대회'라도 나가야 하는 것처럼 나와 여동생은 자라는 내내 조금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


덕분인지 우리는 뻐드렁니도 없고 혀가 짧아서 발음이 새지도 않고 걸음걸이도 바른 엄마의 마음에 쏙 드는 자매가 되어있다. '리 자매' 우리는 그렇게 불렸고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외출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해주는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는 엄마를 보았다.


"어머~ 딸들이 엄마를 닮아 그런지 예쁘네요." 그러면 우리 엄마는 꼭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엄마보단 좀 더 나아야죠." 나는 이 대답을 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뭘 꼭 저렇게까지 대답하는 거지? 겸손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게 우리는 엄마의 '트로피 걸'이었던 모양이다. 

동시에 나는 엄마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훗날 내가 무려 서른셋이 되었을 때, 파혼 직후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은 나에게 성형 수술을 제안하여 큰 싸움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엄마의 나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사그라들게 되기도 했다.


결혼 후 딸을 낳은 내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야, 나는 한별이가 되고 싶어!"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자기 딸은 자기가 보기에도 다 가진 여자라나. 자기도 지금의 자기 말고 자기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는 희한한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을 향한 친구의 눈빛에서 부러움과 질투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들만 있는 나는 잠시 이해를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물심양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만들어준 내 딸의 삶이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부럽다는 말인데 그것이 그 딸을 향한 칭찬인지 그런 오늘날의 네가 있도록 만들어준 것은 바로 나다! 임을 확인시키려는 친구의 스스로를 향한 자화자찬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나에게 저런 마음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내는 엄마는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자신을 '이쁜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말을 내게 했다. 나는 "뭐야 유치하게~"라고 했더니 엄마가 하는 말,


"엄마는 평생 예쁘다는 소리를 못 들어봐서 이제는 누가 좀 예쁜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네."라고 했다. 그리고 그 모임의 다른 사람들은 엄마의 별명을 정말 "예쁜이"라고 지어주었다. 그동안 엄마는 주변에서 '딸들이 예쁘네요~'라는 말을 들으며 동시에 '나도 좀 예쁘다고 해줘'라는 마음이 있었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랐다. 


사실 엄마 스스로가 예뻐지고 싶어서 그랬던 거구나.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입히고 가꾸고 키워온 딸을 보며 엄마는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다.

결국 그런 엄마의 특훈으로 자란 우리도 예쁜 걸 좋아하는 딸들이 되어버렸지만 적어도 나는 내 자식을 부러워하면서 살지는 말아야지. 왠지 나는 그 마음이 석연찮은 까닭은...

그냥 내 자식이 예쁜 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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