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tto Aug 20. 2021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열쇠(feat. 울프)

고정수입과 자기만의 방


19세기의 뛰어난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책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울프의 500파운드는 그녀가 살던 당시 1900년대 초를 기준으로 했을 때이고 지금의 통화가치로 환산하면 약 25,000파운드, 한화 4,000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

연 수입으로 봤을 때 결코 적지 않은 돈이라 할 수 있다. 


설령 500파운드가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19세기 여성작가들에게 혼자만의 방을 갖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대부분의 여성작가들은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동의 거실에서 글을 쓰며

수시로 방해받으며

한정된 사회 경험을 소재로 집필하였다.


여기서 울프는 

"19세기 여성작가들이 주로 소설을 쓴 이유는 그들이 주로 거실에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즉,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보다 덜 요구되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굳이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엄마가 되어 본 우리는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자기만의 방'을 가진 엄마는 몇이나 될까? 

방이 두 칸뿐이라서 그런 걸까? 세 칸이 되어도 네 칸이 되어도 별로 달라질 일은 없다.

세 칸이면, 부부 침실, 아이 침실, 아이 장난감 방 혹은 남편 서재가 될 것이고 네 칸이어도 그리 될 것이다. 


왜 텔레비전에서는 남편의 서재만 등장할까?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닌 텔레비전 드라마의 얘기다)

아내의 서재는?

아이방, 남편 방, 부부방은 있는데 왜 다 큰 성인 여성, '엄마'의 방은 보여주지 않나요?



버지니아 울프는 묻는다. 왜 언제나 남성들만이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지는가. 여성은 아이들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데. 그리고 주장한다. 만약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만 찾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여성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으리라. 그 두 개의 열쇠는 바로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울프는 그 유명한 질문,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면 셰익스피어만큼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그에 대해 확신하며 이렇게 대답한다.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 여성에게는 남성인 셰익스피어의 마음 상태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이는 셰익스피어만큼 상상력이 풍부하고 강한 모험심을 가졌겠지만 그녀는 일단,

학교에 가지 못했을 것이고 

문법과 논리학에 무지했을 것이고

십 대를 벗어나기도 전에 사랑 없이 결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사의 노력으로 결혼에서 도망친다 해도 그녀는

밤에 선술집에 간다는 등 자유로운 외출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길거리를 배회할 수도 없었고

타인의 생활 방식을 관찰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이에 반해 셰익스피어는 오롯이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최고의 작품을 써낼 수 있었다. 이처럼 사회적 억압에 둘러싸인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100%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를 그녀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제약들을 넘어서 온전히 자기 자신을 표현해낸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초 영국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여성으로서, 위대한 소설가이자 문학가로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세기를 뛰어넘어 길이 남을 훌륭한 작품을 남기며 여전히 빛나는 통찰력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다. 


그녀가 이 글을 쓴 시점이 무려 1800년대라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그 계보가 이어져 21세기인 지금은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이를 통해 자유를 얻었고 우리는 마침내 성장했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문학의 역할이자 글 쓰는 자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만약 글을 쓰지 않고 집에서 빨래하고 애만 키우며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내가 고정적인 수입원을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를 쥐는 것.




작가의 이전글 나는 내 딸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