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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Mar 28. 2022

말하지 않았다고

누구나 자기만의 투쟁을 하며 살아간다

오늘로서 9일차.



이번달에 산 진통제도 마지막 두 알만 남은 것을 보니 그래도 하루이틀이면 곧 끝이날듯 하다.

매달 찾아오는 이 고통은 고등학생 시절 시작하였는데 그 후로 조금씩 심화되다가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서른 중반즈음이었고 출산 후에 극도로 심화되었다. 한달에 족히 열흘 이상은 진통제가 없으면 버틸 수 없는 삶을 만 5년째 살고 있다.



애진작에 한국에 들어가 검진을 받고 필요한 시술을 받았어야 했지만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의 위험으로 인해 옴짝달싹을 할 수 없었던데다 아이와 함께 2주간의 격리를 감당하면서까지 병원을 찾는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투브를 통해 얻은 각종 지식과 그 동안 나름대로 다스려온 방법으로 만 2년을 꾸역꾸역 버텨 보았다. 그러다 한계에 다달했을 즈음, 마침내 이 곳 싱가포르와 한국간의 격리는 해제되었고 어렵사리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겨우 일주일 남짓의 일정으로 어떠한 속시원한 대답과 해결책을 가지고 올 수는 없었다. 한국의 대학병원은 또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 것인지 몇달 전에 예약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또 한시간 남짓 택시를 타고 코로나 음성 결과지를 들고 겨우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정확히 세 시간 반을 기다렸고 담당 교수와는 단 3분의 대화같지도 않은 대화, 아니 일방적인 통보만을 듣고 왔다. 



"정확한 것은  MRI를 찍어봐야 압니다. 초음파 소견으로는 양쪽 난소 모두에 혹이 있어서 둘째 임신을 원하신다면 어떤 시술의 도움을 좀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일정이 안되시면 그냥 돌아가셔서 그 곳에서 검사받고 치료도 하세요. 아프면 진통제 드시구요."



이것이 내가 들은, 들을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하아...장난하나 진짜. 내가 겨우 이 말 들으려고 어린애까지 고생고생 시키며 이 먼길을 달려왔나.'



머리끝까지 열이 차올랐지만 잠시 할머니에게 맡기고 온 아이가 울며 전화를 해대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황급히 진료실을 박차고 나왔다.



다음 날, 진료결과를 궁금해하시던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젊은 시절 병원에서 일을 하셨던 어머님은 조목조목 자세히 물어보셨다. 

그 동안의 증상과 이번에 병원에서 들은 얘기 등을 종합해 보시더니, 



"그렇게 아파서 어떡하니, 그래도 들어보니까 생각보다는 괜찮은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괜찮다는거지? 나는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그리고 연이어 하시는 말씀, 



"내가 마흔 네 살에 자궁암에 걸렸어, 그래서 자궁이랑 왼쪽 난소를 다 떼어냈거든. 그런데 지금까지 잘 살은거 보면... 괜찮아. 너두 괜찮을거야."



순간, 화들짝 놀란 나머지 나는 갑자기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와락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필 영상통화중이라 벌개진 눈시울을 들킬까봐 부러 화면을 멀리했다. 

그런 내가 당황스러웠다.



나의 결혼식 날 우리 엄마는 가발을 쓰고 있었다.

지난 몇년간 유방암 투병을 하며 독한 항암치료제 탓에 민머리가 되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내게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없는데 그 중에는 엄마의 가발을 사러다니던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들과 딸이라는 힘의 높낮이 관계에서 이상하게 나랑 엄마만 발을 동동거렸던 느낌.



반면, 시어머니의 태도는 너무나 여유로워보였고 나는 그것이 내내 못마땅했다. 그래서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일부러 모른척하고 하지 않았다. 그 쪽을 향한 얄미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혼 후에도 한참동안 사라지지 않았었다.



나는 되물었다.

"어머님, 그 때 많이 힘드셨나봐요...마흔 네 살이면 너무 젊으셨을 땐데...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서도 생각했다.

'아...왜 눈물이 자꾸 나는거지. 왜 목이 메이지...'



어머님은,

"응, 근데 내가 시댁식구가 너어어어무 많아서, 아유 말도 마. 너무 속을 썩여서...아유 내가 큰 애한테도 안한 별얘기를 다한다... ㅎㅎ 그래서 내가 그 때 이후로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고. 왠만한건 그냥 다 까먹어. 그러니까 너두 너무 신경쓰지말구 왠만한 일은 다 까먹고 넘겨. 그래야 살지..."



그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통화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내가 어머님이랑 이렇게 오랫동안 통화를 하다니.

생각해보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동안은 어쩔 수 없어야 겨우 통화를 했을 뿐이었다.





나만, 우리 엄마만 아픈줄 알았는데.

어머님도 많이 아프셨었구나.

어쩌면 훨씬 더 많이.



갑자기 죄의식이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말하지 않아 그냥 그럴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다. 



우리는 모두 남들은 알지 못하는 새에도 자기만의 투쟁을 해내느라 버거운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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