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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Apr 03. 2022

1편-결혼생활의 실(失)

‘후 진짜, 또 늑장이야!’


저녁 8시 반에 예정된 모임에 또 30분이나 늦게 들어가려고 하길래,

“빨리 좀 들어가!”라고 한 마디 했다가 큰 다툼이 일었다.

남편은 평소에 늑장을 부리는 아주 오래되고도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매일 아침 아이의 등원 시각은 분명히 8시 반까지이지만 아이는 매일 8시 반이 넘어서야 집을 나선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속이 터졌다. 물론 아이가 밥을 먹고 준비하는 시간도 있다지만 사실 아이의 등원을 담당하는 아빠가 아침에 화장실에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긴 까닭이다. 대체 남자가 준비하는 시간은 왜 그렇게 길며, 아침마다 화장실을 한번 가면 기본이 30분은 넘겨야 하고 횟수는 왜 그렇게 잦은 지.

그래서 매일 아이를 지각을 시킨다.


나는 속이 터진다. 마음 같아서는 후다닥 내가 아이를 씻겨 둘러업고 제시간에 등원을 시키고 싶지만 그렇다고 등원 하원을 둘 다 내가 도맡아 하기엔 너무나 버겁다. 그러면 나머지 일은 누가 다하나. 아이 가방은 누가 싸고, 아침은 누가 챙겨주고 샤워는 누가 시켜줘. 일의 효율이 너무 떨어지고 손발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서 힘에 부친다.

남편한테 한마디 하고 싶지만 그러면 싸움이 날게 뻔하니 괜히 애한테 뭐라고 했다.

“만두야, 일찍 가야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거야. 매일 이렇게 늦게 가면 안 돼.”

집을 나서는 애 뒤통수에 대고 괜한 잔소리를 했더니 내 마음만 안 좋다.

남편은 옆에서,

아니 애가 무슨 죄야, 우리가(실은 ‘나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늦게 일어나서 그런 거지.

아니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일찍 일어난 사람이 애 좀 준비시키고 있으면 되지 왜 실컷 놀다가 내가 몸이 안 좋아 늦게 일어나는 날까지도 꼭 내가 일어나길 기다려서 아침을 해내라는 거야. 애 아침은커녕 가방도 안 싸놓고.


나는 어젯밤에도 설거지하고 반찬 만드느라 늦게 잠이 들었다. 안 그래도 삭신이 쑤셔서 잠이 잘 안 오는데 밤새 애가 자다 깨서 엄마를 불러대는 통에 제대로 잠 한숨을 못 잤다. 이 방 저 방을 셔틀 하며 두 시간 단위로 깨는 통에 도무지 잘 수가 없는데, 그래서 새벽 네시가 넘어야 겨우 깊은 잠에 잠시 빠지는데 왜! 밤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실컷 잘 자고 일찍 일어난 사람은 애 등원 준비도 안 해놓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아서 아침부터 열이 받지만 아침부터 또 싸울 수는 없으니까 일단 넘어간다.

그런데 저녁에도 또 늑장을 부리더니 기어코 약속된 줌 모임에 늦는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열이 받아 모임을 펑크 내버리는 바람에 결국 애 재우고 나온 내가 나머지 모임 일정을 남편 대신 다 땜빵했다. 

아 진짜, 와 진짜.

꾹 참고 모임을 무사히 마치고 나온 나는 씩씩거리며,

“이게 무슨 어린애 같은 짓이야!”라고 뭐라고 했더니 내 말투가 기분이 나빠서 그랬단다. 

에잇, 이젠 꼴도 보기 싫다.


다시는 지각하지 못하도록 버릇을 고쳐줘야겠는데.

다 큰 어른인 남편은 어차피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고 당신 인생이니 알아서 하라고 한다지만 아이에게마저 그 버릇을 물려줄 수는 없다. 결단을 해야지.


그냥 내일 아침부터는 애 등원도 내가 책임지고 시켜야겠다.

아우 진짜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가 더 과중하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피곤하다.

이래서 결혼생활은 손해다.


다음 날 아침,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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