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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mato Feb 12. 2021

옷 사러 가는 날

02.12.21

"이번 밸런타인데이에는 우리 예쁘게 입고 근사한 데서 식사할까?
 
평소 옷에 별로 관심이 없는 우리 남편이 코디를 맞추자는 제안을 낸 것은 정말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를 핑계로 예쁜 드레스를 하나 고르러 가자는 그의 세심한 배려였다.

남편은 백화점을 들어서자마자 내 손을 이끌며 나에게 어울릴 것 같은 드레스를 적극적으로 찾아봐주었다. 우리 둘 다 발걸음이 멈춘 매장에는 정말 내게 잘 맞을 것 같은 스타일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남편은 아이보리 색의 트위드 드레스를 집어 들며 직원에게 입어볼 수 있냐고 물어봤다.


사이즈가 잘 맞는지, 다른 디자인은 어떤지 그가 피팅룸 앞을 지키며 디테일 한 부분도 꼼꼼히 체크해주는 데 갑자기 우리 엄마 생각이 나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가 골라준 옷을 마음에 들어하자,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남편의 모습에서 바람 살랑 일렁이는 그런 정도의 느낌이 아니라 가슴에서부터 먹먹히 차오르는 설렘을 느낀 하루였다.


우리 엄마는 내가 피팅룸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매장에서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옷을 한 다발 들고 와 전문 코디네이터가 되어주곤 하셨다.
 
"이건 필요 없어요 엄마."
"왜.. 잘 어울리는 데. 요즘 이런 거 유행이지 않니?"
"안 사도 될 것 같아요.. 엄마 꺼도 좀 보세요."
"그냥 사자. 내가 이러려고 살지. 이런 게 내 기쁨인데."
 
내가 머뭇거리는 낌새가 있다 싶으면 엄마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몰래 결제를 해놓으셨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왜 샀냐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곤 했다.
며칠 전 통화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인데 엄마는 내가 적극적으로 뭘 사달라고 하지 않는 게 속상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날 잡고 쇼핑할 때면 내가 피팅룸에 들어간 순간부터 엄마는 더욱 기지를 발휘하셨나 보다. 구경했던 옷들 중에 이렇게 괜찮은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리 엄마는 항상 족집게처럼 잘 찾아내셨다.

같은 옷을 내가 지나가다 혹은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옷은 철이 지나고 목이 늘어나도 나한테는 가치의 변함이 없었고 오랜만에 다시 입어도 그날의 기억이 절로 떠올려지게 만들었다.

나에게 피팅룸이라는 공간은 든든한 코디네이터들 덕분에 좋은 기억들로만 가득하다. 누구한테 새 옷을 사서 기분 좋은 것보다 피팅룸 안에 있는 순간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면 과연 믿어줄까? 옷 쇼핑은 역시 함께해야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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