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일하는 5년차 직장인입니다. 제가 일본에 처음 발을 디뎌, 유학생을 거쳐 직장인이 된 5년 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는 여행을 사랑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관광이벤트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외국어가 중요한 전공이기에 영어는 물론이고 제2외국어고 유창하게 사용하는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일본어를 택했습니다. 학창 시절, 좋아했던 가수가 발매한 일본어 곡을 이해하고 싶어 글자를 공부한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일본어를 해 보겠다는 마음은 학과 공부에 밀려 흐지부지 되었고 2016년 1월, 처음으로 도쿄 땅을 밟습니다. 겨울 방학을 맞아 혼자 떠난 여행이었어요. 이왕 일본에 있으니 호텔 말고 현지 사람들의 생활과 좀 더 가까이 있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선택해서 도쿄 스기나미 지역에 있는 한 가정집에 열흘 간 머뭅니다.
당시 저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밖에 말할 줄 몰랐던 일본어 왕초보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스트 가족들은 저를 따뜻하게 환영해줍니다. 젋은 30대 부부와 8살, 2살 아들 둘이 있는 단란한 가족이었어요. 파일럿인 남편 분과 잡지 에디터인 아내 분은 신혼 부부 때 전 세계를 함께 여행했대요.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고 도쿄에 정착을 하게 되었고, 이제 반대로 세상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 에어비앤비를 운영한다는 멋진 부부였습니다. 저녁 식탁에 둘러 앉아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일의 일정이었습니다. 저는 이 때 언어를 한다는 것은 그 언어만큼의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임을 배웠어요. 동시에 이렇게 멋진 가족들과 함께 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제 생각을 100% 전할 수 없는게 속상했어요. 귀국 후, 제 일본어 공부에 불이 지펴졌습니다.
그 일본어 공부가 교환학생 합격이라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 3월, 일본 교토, 영화 ‘게이샤의 추억’ 배경으로 유명한 ‘후시미이나리’ 근처에 위치한 한 대학교에서 6개월 간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첫 장기 해외 체류.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제가 머문 기숙사는 전 세계 각 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사는 국제 기숙사였습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 일본인 학생을 튜터로 붙여 같이 기숙사에서 살게 해 주었지요. 이 튜터 친구가 저희들을 데리고 핸드폰 유심 카드를 사러 가고, 같이 은행 계좌를 개통하러 가 주었습니다. 나름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왔는데,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말과는 너무 다른거 있죠?
그래도 6개월 간의 교토 생활은 저에게는 해방과도 같았습니다. 성적 장학금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항상 학점을 까다롭게 관리하던 저였는데, 교토에서는 pass 혹은 fail로만 성적이 매겨지기 때문에 교수님들조차도 많이 놀고 가라고 하실 정도로 경험을 중요시 하셨습니다. 저는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교토의 온갖 카페와 이자카야를 드나들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산조역에 있는 ‘Kyasa’ 라는 이자카야입니다.
이 곳은 서서 술을 마시는 ‘타치노미’ 스타일의 가게입니다. 가게가 좁은 탓에 손님이 들어오면 옆으로 비켜 자리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인사를 하게 되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일본인 친구와 함께 갔지만 한 번 이 가게에 적응하고 나서는 혼자서도 자주 갔어요. 옆 손님의 일본어를 들으며 여기서 일본어 실력이 일취월장했습니다. 튜터 친구와 함께 유심 카드를 사고 은행 계좌를 개통한 것 기억나세요? 6개월 후 해지는 저 혼자 할 수 있었답니다. 교토에서 배운 일본어, 다양성과 소통하는 방법이 지금 도쿄에서 살아가는 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렇게 교토에서의 6개월을 보내고 저는 4학년 졸업반이 되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제 마음은 아직도 교토에 있었어요. 이왕 언어를 공부했는데 일본에 취업 한 번 해 볼까? 시작은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한 번 시작했으니 끝을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와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일본어로 자기 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결국 제일 원했던 한 여행 관련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효고 아와지시마라는 곳에서 제 첫 일본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두 번의 이직과 지역 이동을 거쳐 지금은 도쿄에서 세 번째 회사에 2년 9개월 째 재직중입니다.
대학생 때의 저는 참 무모했어요. 하지만 이 무모함은 결국 제 인생을 크게 바꿨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다시 한번 용기를 얻어요.
여러분도 지금의 나는 하지 못할 것 같은, 과거의 내가 내렸던 무모하지만 용기있던 결정이 있나요? 그 결정의 결과는 어땠나요?
[도쿄의 조각들]은 도쿄 5년차 직장인인 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주간 레터입니다. 매주 수요일 발행 후 시간 차를 두고 브런치에 업로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