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일하는 5년차 직장인입니다. 지난 글에는 제가 일본에서 처음 다닌 회사를 소개했습니다. 그 회사를 9개월 다니고, 다시 취준생이 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와지시마에서의 회사 생활은 즐거웠어요. 하지만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맴돌았어요. 입사 전 기대했던 회사 생활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컸습니다. 시골에서의 생활도, 예상치 못한 세일즈 업무도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컸어요.
일본은 입사 후 연수를 받고 부서가 배정되는 방식이라,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빨리 포기한 것 같기도 해요. 입사 9개월 만에 퇴사했으니까요. 부서 이동 제안도 받았고, 많은 분들이 저를 챙겨주셨지만, 그때의 저는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후에는 한국에 돌아갈까도 생각했는데요, 일본에서 겪은 것이 이 회사뿐이라면, 이 경험이 일본에서의 전체 경험처럼 기억될까 봐 한번 더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퇴사 후 거처를 찾는 것이었어요. 아와지시마에서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퇴사 후 바로 이사를 해야 했거든요. 이직처도, 살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를 결정한 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했어요.
이때 친구가 큰 도움을 줬어요. 한국에서부터 함께 일본 취업을 준비했던 친구인데, 고베에 있는 자기 집을 저에게 그냥 빌려줬어요. 덕분에 무사히 고베에서 3개월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회사 동기들이 직접 차를 끌고 와서 이사도 도와주었어요. 저는 정말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고베에서 보낸 3개월은 자유와 책임이 공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 첫 자취였기에 매일 슈퍼에서 장을 보며, 오늘은 뭘 요리해 먹을지 고민하는 게 작은 행복이었어요. 이때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을 정말 많이 해 먹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좋아해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어요.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직접 지원하는 방식보다 헤드헌팅 회사를 통한 간접 지원이 일반적이에요. 저는 딱 10곳의 헤드헌팅 에이전시에 등록했어요. 각각의 회사마다 신졸 전문, 세일즈 직무 전문, 외국계 전문, 스타트업 전문 등 특성이 다 달랐거든요.
헤드헌터와의 상담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1년도 안 되어 퇴사하면 이직이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맞는 말이지만,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양으로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링크드인을 업데이트하고, 직접 지원도 하면서 총 200개 회사에 지원했어요. 그중에서 50번의 면접을 봤어요. 한 달 동안 면접이 몰려 있었고, 2차, 최종 면접까지 포함하면 서류 합격률은 더욱 낮았지만요.
처음에는 면접이 너무 긴장됐어요. 심지어 일본어였으니까요. 하지만 20번쯤 지나니 예상 질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예상 질문과 답안 데이터베이스가 쌓이고 면접 스킬이 점점 늘어나면서, 제 이야기를 좀 더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죠. 나중에는 영어 면접까지 볼 정도로 간이 커졌습니다.
그때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어요.
* 오전: 면접 혹은 컨설턴트 미팅
* 오후: 산책하고 장보기
* 저녁: 이력서 쓰기
마지막 50번째 면접이 끝나고, 좋았던 느낌 그대로 오퍼 레터를 받았습니다. 합격한 세 군데의 회사 중 저의 최종 선택은 커피 생두 다이렉트 유통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이었어요. 한국과 일본, 대만, 네덜란드에 이제 막 지사를 세운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었고, 창립 멤버로 합류할 기회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3개월 만에 퇴사하게 됩니다. 일본 국내 세일즈 업무를 맡을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한국 지사 세팅을 맡게 된 것이었어요. 한 달 동안 한국 출장을 갔다가, 일정이 무기한 연장되었습니다. 채용 면접을 보고, 예정된 오퍼 시기에 맞추어 커피 세일즈 이벤트를 열어야 했어요. 거기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해 샘플을 보내야 했기에, 사무실 겸 로스팅장으로 쓸 공간도 찾아야 했어요.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후배가 입사하면서는 열흘간 에어비앤비를 잡고 합숙하며 업무를 했어요. 처리해야 할 서류를 쌓아놓은 책상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고, 그렸던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친 어느 날 새벽, 일을 마치고 무심코 입주해 있던 공유 오피스 회사 ‘위워크’를 검색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일본 지사 채용 공고. 원래라면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그날은 왠지 홀린 듯이 이력서를 업로드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한 군데만 더 지원했고, 일주일 만에 제 인생의 방향이 다시 도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50번의 면접을 보고 신중하게 고른 회사에서 퇴사하고, 그다음 지원한 딱 한 곳에 합격하여 3년 차가 되었습니다.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아요.
이직 준비라는 게 때로는 끝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한 곳만 합격하면 되는 싸움이에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마음이 저를 더 멀리 데려다 준 것 같아요.
요즘 제가 생각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내가 가는 길이 곧 정답이다.” 정답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반대로 뭘 해도 정답이 아닐까요? 이 일을 겪고 나서, 새로운 도전 앞에 두려움이 줄어들었어요. 결국 모든 경험이 쌓여서 내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