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취업에 첫 발을 내딛다
취미로 시작한 일본어가 밥을 먹여 줬습니다.
일본에서 취업하고 싶어 혼자서 두 시즌 동안 고군분투했더니, 6개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그 속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일본어도 할 줄 알고, 전공도 관광 계열이니 꼭 우리 회사에 지원해보세요. 같이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일본에서 제일 규모가 큰 여행사의 취업 상담 자리였다. 인사 담당자는 이 말을 남기며 환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정말로 그 해, 그 회사의 신입 사원 공개 채용에서 서류 합격을 했다. 막연히 일본에서 더 지내고 싶다는 욕심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나의 고군분투 일본 취업 이야기는 이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중학생 때, 또래 사이에서 일본 드라마가 유행했다. 음악 오케스트라를 주제로 하는 '노다메 칸타빌레', 불량 고등학교에 부임한 조폭 집안 출신 교사가 주인공인 '고쿠센' 등. 다양하고 참신한 소재에 점점 일본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간 곳도 일본 도쿄이다. 할 줄 아는 일본어라고는 "얼마예요?"와 같은 생존 일본어뿐. 그래도 이왕 해외에 나왔으니 색다른 곳에 묵어 보겠다며 숙박 장소를 일반 가정집 홈스테이로 정했다.
걱정을 한 가득 안고 문을 열었는데, 반가운 환영 인사가 들려온다. 호스트 료코 씨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홈스테이로 세계를 집에 초대하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료코 씨 가족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해 주었다.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낯선 도시에서 포근함을 느꼈다. 이 곳에서 머문 열흘 동안 나는 그들의 가족이었다.
체크아웃을 하며 료코 씨가 했던 인사는 "잘 가"가 아닌, "다녀와"였다. 이 따스함에 일본을 더 알고 싶었고, 일본 사람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서점에 가서 일본어 기초 학습서를 산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일본 교토의 '류코쿠대학'에서 교환 학생으로 6개월 간 유학을 하게 되었다. 유학의 목표는 단 하나, 최대한 많은 일본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보기. 그래서 유학생 수업 이외에도 학부 전공 수업을 청강하고, 클라이밍 동아리에도 가입해 일본 친구들을 만들었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잠시 핸드폰은 가방 안에 넣어 두고 발길 닿는 대로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으면 페달을 멈추고 들어가 보았다. 하나둘씩 단골 카페, 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가게가 생기기 마련이다. 교토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좁은 골목길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면 선술집 '캬사(Kyasa)'의 간판이 보인다. "닷쨩, 어서 와!" 문을 여니 가게 안 사람들이 내 별명을 부르며 반겨 준다.
이 곳에서는 모두가 친구가 된다. 가게가 좁아 테이블이 없고, 서서 술을 마셔야 하지만 그 덕분에 옆 사람과 쉽게 말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안주 거리 삼아 마시다 보면 어느새 막차 시간이 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나를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라, 교토에 사는 ‘닷쨩’으로 대해 주었다.
즐거운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고 했던가. 교토 생활이 그랬다. 이제야 일본을 좀 알 것 같은데, 어느새 책상 위 달력은 귀국 D-10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만 남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취업 준비생이 된다.
그때 기숙사 로비에 붙은 유학생 대상의 채용 설명회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 말대로 일본 취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설명회에 갔다. 그저 막연하게 일본에서 더 지내고 싶을 뿐이었다.
커다란 부스 안내도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회사의 이름만 보아서는 어떤 회사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유일하게 아는 회사의 이름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전공 수업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일본 여행 업계 1위의 여행사이다. 마치 비영어권 국가에 여행을 가서 길을 헤매는데, 저 멀리 영어 표지판을 발견한 느낌이다.
상담 부스로 찾아가 무턱대고 입사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인사 담당자의 대답은 내 예상을 180도 뒤집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것이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다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며.
나는 한국에서 취업하지 않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 속에서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것. 일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학 능력, 각종 자격증, 실무 경력… 즉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를 선호하는 한국의 채용 시장과 회사와 결이 맞는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선호하는 일본의 채용 시장. 이 커다란 차이가 내게 더 확신을 주었다. 이런 채용 방식이라면 이것이 막연한 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도쿄에서 처음 만난 일본에는 따스함이 가득했고, 2년 후 교토에서 느낀 일본에는 정이 가득했다. 이 사람들과 더 깊이 교제하기 위해 여권의 일본 여행 스탬프를 유학 스탬프로 바꾼 것처럼, 이번에는 취업 스탬프로 바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