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시작한 일본어가 밥을 먹여 줬습니다.
일본에서 취업하고 싶어 혼자서 두 시즌 동안 고군분투했더니, 6개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그 속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최종 면접을 보고 온 호텔이다. 면접 이틀 후에 바로 합격 전화를 받았다. 내가 일본어로 합격이라는 단어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머릿속이 새하얗다. 바로 비자 수속에 들어가고 싶으니 다음 주 월요일까지 입사 여부를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첫 면접에서 바로 합격이라니. 이렇게 잘 풀릴 수가 있는 것인가.
그저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전공인 관광학과 관련된 호텔 업계를 택해 지원했다. 심지어 학교 졸업 준비에 벅차 열심히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합격 통지를 받았다. 기쁨보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그전까지는 생각도 않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호텔 프런트 직무가 내게 맞는 것인가. 더 많은 회사를 접하지도 못한 채 섣부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를 가장 아껴주시는 학과 교수님을 찾아가 고민 상담을 했다. “입사를 했을 때의 장단점을 적어 봐. 장점이 더 많으면 입사하는 거고, 단점이 더 많으면 안 하는 거야.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
몇 시간 동안 공책을 채워 내려갔다. 내 결론은 후자였다. 너무 좋은 회사지만, 내 적성과 맞는 업무는 아니었다. 나에게 더 적합한 일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이 마음으로는 호텔 프런트에서 고객을 웃으면서 맞이할 수 없었다.
일본 현지의 신입 사원 채용 사이클은 1년 주기로 반복된다. 대부분의 회사가 3월 1일부터 서류 접수를 받는다. 3개월 간 회사 설명회, 짧은 인턴십, 서류 심사가 끝나고 나면 6월 1일부터 면접 전형이 시작된다. 10월 1일에는 합격자를 불러 내정식을 하고, 다음 해 4월 1일에 정식으로 입사를 한다. 이 회사에 입사하지 않으면 입사 예정이 1년 미뤄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정중하게 입사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일본 취업 시장은 지원자의 잠재력을 보는 '포텐셜 채용'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학벌이나 학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원자가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대학에 다니며 학업 이외 어떤 것에 열중했는지, 추후 어떤 커리어를 생각하는지 등을 적게는 2차례, 많게는 5~6차례의 면접을 통해 판단한다.
일본 취업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자기 분석을 통한 스토리텔링이다. 내가 호텔 입사를 포기한 이유도, 자기 분석이 명확히 되어 있지 않아 내가 원하는 커리어와 지원한 회사 간의 갭이 컸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할 차례이다. 대학 입학 이래 내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일 년 단위로 정리한 후, 그중에서 무엇을 할 때 행복했었는지 고민했다.
20살 : 재수 생활, 관광학이라는 진로를 결정하다.
21살 : 처음으로 혼자 일본 도쿄로 해외여행을 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다.
22살 : 전공 수업을 들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이벤트 기획에 관심이 생기다.
23살 :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혼자 유럽 한 달 여행을 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견문을 넓히다.
24살 : 복학 후 일본 교환학생 자격시험에 합격하다.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며 자유도가 높은 업무가 맞다는 것을 깨닫다. 특히 업무 처리 방식을 직접 만들어 갈 수 있음에 매력을 느끼다.
25살 : 6개월 간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체류하다. 일본인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100여 명의 유학생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26살 : 파워포인트 강사, 일본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다.
아래와 같이 네 가지 키워드가 나왔다.
1. 커뮤니케이션 :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이 하나 더 생긴다고 했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내 세상을 넓히고 싶다.
2. 외국어 : 여행지에 가서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현지 사람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
3. 기획 : 대학에서 관광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 기획을 전공했다. 내 머릿속 생각을 이벤트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즐거웠다.
4. 정보 공유 :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내 손으로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양한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삶을 여러 가지 색깔로 채우고 싶다. 해외 진출을 했거나 외국인 사원이 많아 글로벌 교류가 많고, 사람들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회사에 지원하는 것으로 기준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