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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3. 2020

도쿄에 가족이 생기다

취미로 시작한 일본어가 밥을 먹여 줬습니다.

일본에서 취업하고 싶어 혼자서 두 시즌 동안 고군분투했더니, 6개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그 속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취업도 살아보는 거야

면접을 보는 동안 체류한 고쿠분지의 에어비앤비에는 4개의 게스트 전용 방이 있다. 모두 한 달 이상의 장기체류자였다. 


집 리모델링 기간 동안 잠시 머물던 일본인 사야 아주머니와 프랑스인 데이비드 아저씨, 그리고 두 분의 아들 루이. 과거 도쿄의 한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미쉘 교수님. 연구를 위해 잠시 캐나다에서 일본으로 파견을 온 바바 교수님. 


정신없는 아침. 현관에서 허둥지둥 구두를 신고 있으면, 바로 앞 방을 사용하는 미쉘 교수님이 조심히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 주신다. 출장으로 며칠 동안 중국에 다녀오신 바바 교수님은 비행기를 타면서 관광, 항공 업계에 관심 있는 내 생각이 났다며 항공사의 팸플릿을 챙겨 오신다.


거실에서 다음 날 면접 보는 회사의 면접 답안을 만들고 있자, 회사에서 채용 담당 업무를 수년간 해오신 사야 아주머니가 오셔서 어색한 표현이 있는지 체크를 해 주신다. 데이비드 아저씨는 루이의 저녁밥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같이 먹자고 수저를 내민다.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마음만은 이어져 있다. 

함께 소바를 만들어 먹은 날



평일에는 취업준비생, 주말에는 여행자

주말이 되면 시간이 비는 사람들끼리 같이 식사를 하거나, 근교 당일치기 여행을 갔다. 하루는 세계 각 국에서 모인 사람들 답게 각자 소개하고 싶은 고향의 음식을 준비해 파티를 열기로 했다. 삼겹살을 대접하고 싶어 집 앞 마트에 갔는데, 한국식의 슬라이스 된 삼겹살이 아닌 통 삼겹살만 판다. 아쉬운 대로 김치와 쌈장을 함께 사와 요리를 했지만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게스트들의 음식이 더해지니 최고의 한 상이 되었다. 바바 교수님이 파스타를 만들고, 미쉘 교수님은 갖가지 재료가 들어 간 샐러드를 만든다. 후식은 데이비드 아저씨가, 맥주와 와인은 요코 아주머니가 맡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킨다.  

미쉘 교수님이 만든 샐러드



호스트 아야 언니와 도쿄 근교의 관광지인 '가와고에'에 다녀오기도 했다. 전철로 한 시간이면 닿는 곳이지만 옛 전통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진 색다른 모습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관광안내소에서 추천해 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거리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둘은 공통점이 많다. 해외에서 유학을 해 봤고, 둘 다 서로의 나라를 넘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 한다. 호스트와 게스트와 관계가 아닌 친한 언니와 동생으로 서로를 대한다. 아야 언니는 면접 생각은 저 멀리 제쳐두고 여행자로 도쿄를 즐기도록 도와주었다. 

관광지 느낌이 물씬 나는 가와고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약 한 달 동안 50회가 넘는 면접에 참여했다. 무려 면접 4개를 한 번에 본 날도 있었다. 일본인 사이의 유일한 외국인 지원자. 그들과 나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옆 자리 지원자의 화려한 언변에 기가 죽어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온 날에는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멀리 도쿄까지 왔는데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한다며 자신을 어르고 달랬다. 


면접을 보고, 돌아와서 피드백을 하고, 다시 다음 날의 면접을 준비하는 여정. 한 달 동안 이 생활을 견디게 해 준 것은 고쿠분지 하우스의 가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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