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응결핵 1화 <박정우>편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권력이나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것 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실제 변화들은 개개인한테서 일어나고, 개인들의 하루하루의 행동, 말, 주변 사람과 하는 대화가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큰 의미가 있나? 나 하나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변화를 만듭니다. 실천할 때 우리는 아무 입자가 아닌, 응결핵이 됩니다. 저희는 사회 속에서 응결핵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발굴해 조명하고자 합니다. 당신이 변화의 주역이라는 것을, 개인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합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이 월간 응결핵을 통해 자신이 응결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주변에 있었던 응결핵을 떠올리고, 더욱 힘을 실어주고, 동참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커지도록 독려하기 위해 월간 응결핵을 기획했습니다.
월간 응결핵은 생명다양성재단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연재됩니다.
생명다양성재단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he_biodiversity_foundation/
하늘다람쥐에서 소개하는 첫 번째 응결핵은 박정우 학생입니다. 자연과 생물에 관심있는 학생으로 만나던 박정우는 어느새 재단과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늘 관찰하고 기록하는 그는 과학적인 근거로 주변의 환경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리고 있는데요, 이미 몇 차례나 활발한 보전활동의 불씨가 되어 왔습니다. 김포공항습지, 안양천의 양서류와 철새보호구역의 보전활동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럼,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저희가 아는 귀한 청년 박정우의 모습을 여러분께도 전하자고 합니다.
Q. 가장 먼저, 활동을 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왜 이렇게 사나요?(웃음)
좀 더 멋진 말이 들어가야될 것 같은데... 그건 저도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이쪽(생태학) 공부를 계속 하다가, 그런 일이 났는데 이걸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데이터를 쭉 모으기만 하고 있으면 되는건데, 데이터에 단절이 되기도 하고, 이것들을 좀 쓸 데가 이거다라는 생각도 들고 이러니까요.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또. 서식지를 보전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런 말 자체가 개발이나 공사가 있으면 바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데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대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잘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Q. 자연과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거기서 어떤 매력을 느끼나요?
초등학생 때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연, 생태쪽에 입문하게 됐어요. 그 때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전공을 정해야겠다는 것도 빠른 시기에 생각하게 됐어요. 숲 해설로 나가면 계속 변하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관찰을 하고 기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만난 숲해설 선생님이 되게 좋았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다가 고학년 가서 선생님이 강조한 게 같은 꽃이더라도 잎만 보고 동정할 때랑 다른 시기랑 또 다르잖아요. 그럴 때 보이는 곤충상도 다 달라지는 거고. 이렇게 변하는 게 재밌었어요.
사실 자연을 보는 데는 예술, 문학, 보전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건데, 그때 최재천 교수님 책을 읽으면서 영향을 좀 받아서 과학적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자연을 야생에서 관찰을 할 때는 뭔가 다 조각조각으로 단편적으로 보게 되잖아요. 어떤 시기에 보고, 저 시기에 보고,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변화하는 모습. 이렇게 보이는데 그걸 되게 간단한 원리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이건 그때 독서록이 말해주고 있죠.
Q. 우와, 그 독서록 아직도 보관하고 계십니까?
네, 어머니가 모아놓고 계셔서요. 그 다음에 리차드 도킨스 이런 책을 보면서 진화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Q. 탐조 활동을 주로 하시는데, 왜 새들에게 매력을 느끼셨나요? 가장 좋아하는 새는?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분류군을 관찰했어요. 양서류도 보고, 식물도 보고. 그러다가 점차 길을 좁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그중에서도 재밌는 조류, 새를 중심으로 보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새는 오리류나 물새예요. 안양천에서 오래 관찰을 하다보니까. 산새들도 엄청 귀엽기는 하지만 덤불로 들어가면 관찰하기 힘드니까, 행동도 보기 힘들고… 오리류는 관찰하기 쉽고, 행동도 잘 보이고, 연구도 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어요.
Q. 활동 중에서 가장 뿌듯했던 일은?
김포공항습지, 안양천 양서류 모니터링 활동, 지금 하고 있는 안양천 철새보호구역의 모니터링 활동이에요. 조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여기 나오는 물새들이 많아졌거나 적어졌다, 이런 게 가장 중요한 자료이긴 한데, 그 외에, ‘어, 안양천에 이런 친구들까지 오네?’라고 하는 것도 되게 재밌었던 경험이었어요. 매나 큰기러기 등 예상을 못한 종류들도 나왔고, 어제 조사에서는 흰목물떼새도 나왔고요.
그런 새들을 보면 놀라운 마음이 제일 커요. 반갑기도 하고. 이런 환경에서도 이 새가 찾아오고 쉬었다 갈 수 있구나. 안양천에 모래톱이 만들어지니까 이 친구도 오네. 그럼 모래톱이 더 만들어지고 환경이 잘 보전되면 이 친구가 나중에 더 오거나 번식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Q. 활동 중에서 가장 난처한 순간은?
음... 내가 다 못 셌는데 새들이 날았을 때?(일동 웃음). 새를 할 때는 물리적으로 난처해본 적은 없는데 물고기 조사를 따라갔을 때 힘들었죠...
Q. 관찰 기록했던 지역에서 대규모 공사 등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었을 때의 느낌?
특히 안양천 철새보호구역의 경우… 그래도 여기는 안 건드리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충격이었어요. 도시에서 생태적 역할을 하고 있는 곳들인데, 이런 곳들이 생태적 기능을 잃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Q. 박정우의 가장 큰 고민은?
이런 것들이 제가 바꿀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무력감이나 허무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상대편(개발업자)쪽은 엄청난 대산업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되는 방향쪽으로 뭔가 됐다라든지,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로 어느 생태 공간이 망가지게 되었다든지. 이런 기사들 볼 때 좀 허무감 같은 것이 들어요.
우리 세대의 생태적 감수성의 부재도 문제에요. 교과서에서만 배웠으니까 우리는 생태계가 어느 정도 훼손된 지금이 표준인 줄 알아요. 생태적 건망증으로 표현을 하는 교수님도 있던데,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생태에 대해 실존적인 경험이 없이 낮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게 대다수에요. 예컨대 지금 김포공항습지에 친구들을 데리고 가면 예전 습지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 없고 골프장이 있잖아요? 그런 게 표준이 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거죠.
환경운동, 비거니즘 운동 같은 것도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바뀌거나 해야 하는 문제니까… 이런 운동이 전체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주류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과연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 저도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안따라주고… 타성에 젖은 걸 수도 있고요. 그런 괴리감을 느끼면서 부끄럽고 반성을 해요. (사무국: 그런 괴리감을 느끼면서 부끄럽고 반성을 한다는 것도 의미있죠. 반성을 안할 수도 있잖아요.) 하긴 김산하 박사님이 일관된 비생태주의자보다 비일관된 생태주의자가 낫다고 했죠.
박정우는 앞으로 생태 연구자의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생태계를 보전하는 활동도 함께 하고 싶다고요. 비록 지금은 무력감과 허무감을 느끼기도 하고, 타성에 젖은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지만, 그는 안양천의 철새 서식지가 파괴되는 걸 목격하자마자 재단에 “큰일났어요”라며 다급히 전화를 걸고, 서울시와 양천구청 등 여기저기 민원을 제기하고,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을 조직하고 불러 모은 우리의 ‘응결핵’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자신이 회색주의에 빠진 것 같다며 반성하는 인터뷰 응답 끝에 박정우는 다시 말합니다. “목동교 넘어서 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거기 한 번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