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 소굴 1화
새집 ‘소’와 굴 ‘움’자를 사용하는 소굴(巢窟)은 나쁜 짓을 하는 도둑이나 악한 따위의 무리가 활동의 본거지로 삼고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보통 적의 소굴, 도둑의 소굴로 사용하지요. 지저분 정신과 지저분 정찰에 이어 지저분 소굴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정리되고 없어지는 우리 주변의 가까운 자연 = 지저분 소굴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식물이 우거진 곳은 서식지, 은신처 등으로 불리며 우리 주변에 얼마 남지 않은 녹지로 생물다양성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화단, 가로수, 공원, 뒷산에서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잘리고, 제거되고, 파괴되는 것은 대부분 열심히 제 모습대로 살고 있는 식물들입니다. 깔끔함만을 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곳이 모두 처리해야 하는 식물의 소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저분 소굴에서 살고 있는 식물들은 진짜 자연에서는 어떤 모습일까요?
3월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해서 이제는 식물취급도 받지 못하는 회양목(Buxus koreana (Nakai ex Rehder)) 입니다. 영어 이름이 Japanese box 또는 Korean box tree라고 하니 우리 주변에서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착잡할 뿐입니다. 대부분 학교나 공원 화단에 무릎 높이를 넘지 않게 울타리처럼 아주 반듯한 모습으로 다듬어 놓는 식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회양목은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무려 키가 5~6m까지 자라는 늘푸른 상록 키작은 나무입니다. 석회암 지역으로 유명한 북한 강원도 회양에서 많이 자라 회양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나라 전 지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석회질이 풍부한 강원도, 충청도, 경상북도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3~4월에 피는 꽃은 연두색과 비슷한 연한 노란색이어서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이른 봄에 꽃을 피워 곤충들에게는 좋은 양식이 되기도 합니다. 회양목은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목질이 균일하고 광택이 있어 도장을 만들 때 사용해서 예부터 도장나무로도 불렸습니다.
지난 1월 산림청에서는 백두대간 태백산 권역 석병산 일대에서 높이가 6m 이상의 회양목 군락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회양목은 야생에서 군락으로 자생하는 경우가 드물고 높이가 6m이상 생육하고 있는 개체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데 백두대간보호지역 지정에 따라 석회암지대의 무분별한 훼손을 방지한 결과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산 속에서 자라고 있는 회양목은 도시에서 만나는 모습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자기모습 그대로 편안히 자라고 있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 개성이 넘칩니다.
식물은 인간의 입장에서 잘리고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자연 안에서 식물은 식물의 방법대로 식물답게 살아갑니다. 사람이 선을 긋고 담을 쌓아 만든 도시의 지저분 소굴이라고 할지라도 식물들의 모습과 방법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지저분 소굴들을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