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 정찰 1화
지저분정신(코드명: ‘ㅈㅈㅈ’)‘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잘리고, 제거되고,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항변입니다. 별 이유도 없이 난도질당하는 자연을 보며 ‘꼭 이래야 하나?’라고 생각해본 적 아마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항의를 해서 자초지종을 물으면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이 한 마디로 귀결될 때가 많습니다. “지저분하니까!”
그래서 반대로 외칩니다. 오히려 자연은 지저분해야 한다고! 아니, 실은 그것은 조금도 지저분하지 않다고. 인간의 단순한 미감이야말로 촌스럽고 또 폭력적이라고 말이다. 인간 본위대로 자연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손대지 말라고 외칩니다.
지난해 말에 첫 선을 보인 ‘지저분정신’은 오늘 ‘지저분 정찰’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저분정찰’은 지저분정신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사례를 조사해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제 1회 정찰 소식, 다음과 같습니다.
1) 도시에 야생의 자연을
Kowarik, I., 2018. Urban wilderness: Supply, demand, and access. Urban Forestry & Urban Greening, 29, pp.336-347.
그동안 야생의 자연은 문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도심 내에 야생의 자연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1번 논문이 이를 잘 보여주는 연구입니다. 여전히 많은 자연 면적이 개발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도시에선 야생이 주요 정책 의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흥미로운 것은 도시 거주민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그 자연에 대한 많은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도시 내의 자연은 일종의 ‘사회생태학적 체계(socio-ecological system)*’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따라 무엇이 야생인지도 다른 것이죠. 가령 누군가에겐 ‘식물이 울창해야’ 야생이고, 누군가에겐 ‘사람의 영향력이 닿지 않아야’ 야생이기도 하답니다.
*사회생태학적 체계(socio-ecological system): 도시 내 자연(뒷산이나 화단 등의 조경)은 인간의 결정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인간과 도심 자연은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2) 지저분함에 대한 인식 변화
Threlfall, C.G. and Kendal, D., 2018. The distinct ecological and social roles that wild spaces play in urban ecosystems. Urban Forestry & Urban Greening, 29, pp.348-356.
도시에서 야생 공간이 어떤 생태적, 사회적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령 2번 논문의 경우 도시의 일반적인 녹지 공간과 비교했을 때 보다 야생적인 공간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다른 동물을 위한 서식처를 제공하고, 사람들의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에 기여한다는 다소 예상 가능한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보다 흥미로운 것은 미학적 기준과 선호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쓰러진 나무나 빽빽한 덤불과 같은 자연 요소를 점점 더 사회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좀 더 야생적인 공간을 일반 녹지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기존 조경경관이 가지는 일종의 예측가능성보다 야생공간의 예측 불가능성이 오히려 새로운 미학적 매력을 자아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3) 싱가포르의 사례
Hwang, Y.H., Yue, Z.E.J., Ling, S.K. and Tan, H.H.V., 2019. It’s ok to be wilder: Preference for natural growth in urban green spaces in a tropical city. Urban Forestry & Urban Greening, 38, pp.165-176.
다 좋은데 그건 다 서양 사회의 얘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점을 가진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실제로 이렇게 도시 내에서 야생의 자연을 고려하는 대부분의 도시들은 미국이나 유럽권에 있는 곳들이지요. 하지만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싱가포르가 그 좋은 사례입니다.
도시의 자연을 ‘깔끔하게’ 하려는 의지 때문에 야생의 자연이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주거지, 옥상, 공원, 보도블록 등 다양한 도시 공간요소에서 ‘야생의 정도’를 달리하여 사람들의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예상과는 달리 가장 깔끔한 옵션을 늘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적당히 ‘지저분한’ 자연을 선호한다는 다소 희망적인 결과를 아시아 대도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겠습니다.
4. 지저분함과 깔끔함 사이
Zheng, B., Zhang, Y. and Chen, J., 2011. Preference to home landscape: wildness or neatness?. Landscape and Urban planning, 99(1), pp.1-8.
위의 예와 맥을 같이 하는 연구가 또 있습니다. 미국 앨라배마의 농업생명과학대학 소속 대학생 360명을 대상으로 주택이 있는 경관에 자연이 있는 정도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연구를 소개합니다.
건물은 똑같은 상황에서 ‘깔끔하게’ 관리된 잔디만 그 주위에 있는 옵션에서부터 울창한 숲과 나무와 덤불로 둘러싸인 옵션까지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고 선호도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농경제, 원예, 사회학을 전공한 학생과 대도시 출신은 ‘깔끔한’ 옵션을 선호한 반면, 야생동물학을 전공하고 부모가 대학원 이상의 교육수준을 갖는 학생의 경우 보다 ‘지저분한’ 옵션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자는 후자의 결과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학생들은 아마 지저분함이 좋다(messy is good)라는 것에 대해 더 잘 아는 학생들이었을 것이다.’
지저분함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눈을 뜨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존의 미감과 기준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지저분정찰’이 보고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