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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Oct 17. 2016

국립공원 50년

최재천 교수님의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15


 금년에는 불황 탓에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달력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 고급스러운 달력들이 사라진 판국에 우리 국립생태원 달력이 뜻밖의 인기를 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디자인에 깊숙이 관여했는데 은근히 튀어보려는 속셈으로 세로로 좁고 긴 달력을 만들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무슨 달력이 체통 없이 길쭉하냐고 힐난하는가 하면 색다르고 실용적이라는 평도 제법 많았다. 이런 와중에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만드는 달력을 정말 좋아한다. 가로로 상당히 긴 지면 가득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야말로 ‘breathtaking’ 즉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이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인정받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설립된 지 44년 후인 1916년 8월 25일 미국 정부에 국립공원 관리청(National Parks Service)이 세워졌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일이다. 이보다는 많이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내년이면 국립공원 50주년, 국립공원관리공단 30주년을 맞는다. 지난 8월 22일 새롭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백산국립공원까지 합하면 이제 우리나라에는 모두 22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국토 면적이 작은 나라치곤 적지 않은 숫자의 국립공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토는 좁고 인구 밀도는 워낙 높은 나라이다 보니 국립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는 물론 때로는 경내에서조차 보전과 개발의 힘겨루기가 심심찮다. 


 나는 박사 학위 연구를 열대 우림에서 진행한 열대생물학자이다. 아마 우리나라 학자 중에서는 열대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1세대일 것이다. 내가 처음 열대에 간 것은 1984년 여름 OTS(Organization for Tropical Studies)에서 개설한 열대생물학 수업을 수강하기 위해 중미의 나라 코스타리카(Costa Rica)를 방문했을 때였다. 세계 여러 대학에서 선발된 20명의 대학원생들이 10주 동안 코스타리카의 여러 다양한 생태 서식처를 방문하여 대표적인 열대 생태계를 체험하며 그곳의 생물과 생태에 대해 현장학습을 하는 수업이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코스타리카는 거의 세계 최빈국이었다. 거리에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들 가운데 우리 현대 미니 트럭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런 가운데 왠지 경찰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세계 각국으로부터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당시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세계 순방을 했는데 우리 정부는 현금 대신 군복과 미니 트럭을 현물로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던 나라가 지금은 국민소득이 $15,000 정도로 라틴아메리카에서 4번째로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자연 보전에 기반한 생태관광이 주요 소득원이 되었다. 

코스타리카의 열대우림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 오스카 아리아스(Oscar Arias Sanchez)

 코스타리카가 이처럼 안정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한 배경에는 한 탁월한 정치인의 혜안이 있었다. 1986년에서 1990년, 그리고 2006년에서 2010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직을 수행한 오스카 아리아스(Oscar Arias Sanchez)는 찢어지게 가난한 코스타리카 국민을 설득해 쓸데없는 개발을 자제하고 자연 환경을 보전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개념의 지속 가능한 발전 패러다임을 수립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1984년 열대생물학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박사 학위 연구를 하기 위해 OTS에 머물던 1986년 어느 날 수수한 점퍼 차림의 아리아스 대통령이 달랑 수행원 한 명과 함께 우리를 찾아와 한참 동안 왜 자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였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만 해도 그는 생태학에 대해 그다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배우고자 하는 태도만큼은 정말 진지했다. 나를 포함해 주로 미국에서 온 예닐곱의 생태학자들은 그에게 보다 많은 생태학 지식과 개념을 전달하려 최선을 다했다. 그는 훗날 니카라과를 비롯한 중미 국가 지도자들을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 모으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198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나는 그에게 인간과 자연간의 평화를 이룩한 공로를 인정해 또 하나의 노벨평화상을 수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찾아와 대화를 나눈 지 그리 머지않아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이자 열대생물학의 대가인 댄 잰슨(Dan Janzen) 박사를 가정교사처럼 모시며 자연보호지역을 확장해나가는 작업에 착수했다. 잰슨 교수는 1980년대 초반 우리 생태학자들이 각자 연구에만 몰두해 있는 동안 우리의 연구 대상인 열대 동식물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스스로 더 이상 논문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논문을 쓰는 시간도 아껴 자연을 보전하는 일에만 매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의 결정은 과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젊은 생태학도들을 보전생물학 분야로 이끌었다. 거의 같은 무렵 제인 구달 선생님도 연구에서 보전으로 방향 전환을 단행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구달 선생님은 1986년 시카고에서 열린 침팬지 관련 학술대회에서 연구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지난 30년 동안 매년 300일 이상 세계 각지를 돌며 자연 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다. 

댄 잰슨 (Dan Janzen) 박사

 잰슨 교수는 아리아스 대통령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코스타리카 서쪽 해안가 과나카스테(Guanacaste) 지역의 건조림을 국립공원으로 만드는 데 이어 코스타리카 전역에 엄청난 면적의 자연보호구역을 지정하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 코스타리카는 가장 깨끗한 자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관광 사업을 중심으로 주로 환경친화적인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머지않은 장래에 동물원이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표함으로써 다시 한 번 가장 앞서가는 환경국가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한 정치인의 혜안이 국가의 미래를 이처럼 멋지게 바꿀 수 있다는 걸 나는 아리아스 대통령을 보고 확실히 배웠다. 


코스타리카 과나카스테 국립공원 (Guanacaste National Park)

 어느덧 환경이 밥 먹여주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초대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국립생태원이 갯벌을 메워 공장을 짓는 계획을 포기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성취하자는 목표를 향해 착실히 달려가고 있다. 개원한 후 2년 동안 해마다 1백만 명 가량의 관람객을 유치하는 쾌거를 이루며 지속 가능한 생태문화의 실현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 국립생태원은 이 땅의 국립공원들이 지켜낸 소중한 자연 환경의 생태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검토해갈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코스타리카가 될 수 있도록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되고 DMZ가 온대 최고의 자연보전지역으로 우뚝 서게 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어느덧 50주년을 맞이한 국립공원을 지키고 있는 서른 살 성인이 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이 땅의 자연지킴이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가리라 믿는다.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 국립생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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