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님의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14
내게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한데 몰려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원래 나까지 합쳐 여덟이었는데 삼십 줄 끝 무렵에 한 친구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일곱이 모인다.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이나 물건을 얘기해보기로 했다. 나는 성격이 별로 도전적이지 못해 이럴 때마다 꼭 남이 고른 다음에야 남는 것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걸 쥐는 편이다. 그 무렵 우리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려서 보내곤 했는데 나는 흰 눈을 배경으로 사슴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사슴을 내 동물로 정하려 했는데 다른 친구가 먼저 말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친구는 워낙 얼굴이 조막만 한데다 걷는 모습도 강중강중 사슴 같았다. 하는 수 없어 나는 학을 선택했다. 어려서 시골에서 늘 백로를 보며 자랐기에 그런대로 괜찮은 선택이라고 자위했다. 동물 선택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우리들 중 키가 제일 작은, 그래서 매 학년마다 늘 반에서 1번인 친구가 작은 체격에 걸맞지 않게 자기는 거친 삼베가 좋단다. 이번에도 선수를 빼앗긴 것 같아 잠시 서운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삼베보다 더 곱고 세련된 모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날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내 모든 책 속지 첫 쪽의 오른편 상단에는 내가 직접 개발한 흘림체로 ‘학모시’라는 글귀가 적히게 되었다. 학과 모시를 이어 만든 말인데 자연스레 내 아호가 되었다.
내가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에는 작년부터 ‘개미세계탐험전’이 열리고 있다. 광택불개미나 가시개미 등 국내 개미뿐 아니라 지구 최초의 농경 개미인 잎꾼개미에 이어 최근 호주에서 푸른베짜기개미(Green weaver ant)를 들여와 전시하고 있다. 잎꾼개미는 유럽이나 북미의 자연사박물관이나 과학관에서 종종 전시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전시에 성공했다. 그런데 푸른베짜기개미의 전시는 어쩌다 보니 세계에서 우리가 최초란다. 하버드 대학 시절 내 지도교수들이었던 윌슨(Edward O. Wilson) 교수와 횔도블러(Bert Hölldobler) 교수가 오랫동안 연구했고 동영상도 워낙 많이 접했는지라 당연히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호주 정부가 전시를 목적으로 반출을 허락한 것은 이번에 우리가 처음이란다. 일전에 잎꾼개미를 가져다 준 영국 친구가 이번에도 일을 맡았는데 우리 국립생태원을 잘 소개하고 오로지 교육적인 전시를 하는 곳임을 열심히 설명해 귀한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푸른베짜기개미는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 행동은 물론 영롱한 초록색의 배마디와 늘씬하고 고혹적인 몸매 덕택에 2012년 영문으로 번역돼 나온 내 책을 비롯해 여러 개미 책의 표지를 석권한 개미계 최고의 모델이다.
베짜기개미는 에오세(Eocene)와 마이오세(Miocene) 지층에서 화석으로 15종이나 발견되었지만 지금은 단 두 종(Oecophylla longinoda, O. smaragdina)이 각각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열대지방에 서식하고 있다. 나는 아프리카 베짜기개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그리고 호주 북부 숲에서 실제로 베짜기개미를 만났다. 이 중 호주에서 만난 베짜기개미만 배마디가 녹색이었다. 개미는 워낙 협업의 동물로 유명하지만 베짜기개미의 협업은 단연 극치를 이룬다. 개미는 대개 땅이나 나무에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살지만 베짜기개미는 살아 있는 나뭇잎들을 이어 붙여 방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산다. 베짜기개미 일개미들이 나뭇잎을 끌어당기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오죽하면 개미허리라 부를까 싶은 그 가는 허리를 뒤에서 다른 일개미가 물고, 그 놈의 허리를 또 다른 일개미가 물고 하는 방식으로 사슬을 만들어 일제히 잡아당긴다. 여러 줄의 개미 사슬이 이파리를 물고 일사분란하게 다른 이파리 가까이 끌어당기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다. 더 신기한 것은 이런 작업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작업반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한 방향으로 이파리를 끌어야 하는 작업에 “하나 둘, 하나 둘, 영차, 영차” 구령이라도 부르는 누군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우리 개미학자들은 열대 현장에서 그리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실험실에서 수십 년 동안 보고 또 보고 했건만 아직까지 작업반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복잡계 연구를 주로 하는 미국 뉴멕시코 산타페연구소(Santa Fe Institute)가 개미와 흰개미의 이 같은 협업 행동을 십 년이 넘도록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로 내놓은 결론—“일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각자 알아서 한다”—은 곱씹을수록 참 허무하기 짝이 없다.
베짜기개미는 우리 인간과 더불어 아동 착취의 오명을 씻기 어려운 유일한 동물이다. 이파리들을 가까이 끌어당긴 다음 애벌레를 데려와 입에 물고 그가 고치를 틀기 위해 분비하는 실크로 이파리들을 한데 엮어 방을 만든다. 이 때 일개미의 입에 물려 양 이파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애벌레가 마치 베틀에 북이 나드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베짜기개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도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고 동남아시아 양탄자 공장에서는 지금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아동 착취의 현장을 닮았다. 그러나 베짜기개미는 우리 인간보다 사회문화적으로 훨씬 세련된 동물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미성년 공장 노동자들과 거리로 내몰려 앵벌이를 하는 아이들을 내팽개치지만 베짜기개미 제국에서는 국가사업에 동원되었던 애벌레들은 특수하게 제작된 방에서 각별한 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사회보장제도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충남 서천의 자랑거리 중에 으뜸이 한산모시다. 마을에는 멋진 한산모시전시관이 세워졌고 지금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몇몇 장인들이 직접 전통 방식으로 모시를 짠다. 강원도 강릉에서 감자바위로 태어나 서울로 이주해 초∙중∙고∙대학교를 다니고 미국에 유학해 15년을 살다 돌아와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일해온 나는 사실 충청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이 되어 3년 째 서천에 살고 있다. 진작에 내가 이렇게 서천에 와서 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예전에 ‘weaver ant’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구태여 베를 짜는 개미라 부를 게 아니라 모시를 짜는 개미라 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친구에게 베를 뺏기고 모시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갑자기 이 개미의 이름을 바꿔달라고 학계에 공식으로 요청할 요량은 아니고 해서 나는 그냥 치졸하지만 한산모시로 유명한 서천에 자리잡은 국립생태원에서 자라고 있는 베짜기개미는 ‘한산모시짜기개미’라는 별명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나의 잽싸고 얄팍한 성품은 비난을 받든 말든 지금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는 사람과 개미가 나란히 고운 모시를 짜느라 여념이 없다.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 국립생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