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님의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13
내가 잎꾼개미를 처음 만난 곳은 하버드대 윌슨(Edward O. Wilson)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10평 남짓한 실험실 가득 구두 상자만한 플라스틱 박스 수십 개가 고무 튜브로 연결된 채 어른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 맨 앞 박스에 달려 있는 고무 튜브를 통해 높이 10cm 정도의 플라스틱 벽으로 둘러싸인 테이블 위로 걸어 나온 개미들은 테이블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채소와 나뭇잎들을 잘게 썬 다음 그걸 입에 물고 다시 튜브를 통해 박스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박스 안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스폰지 모양의 흰 물체가 들어 있었다. 그 개미가 바로 식물의 잎을 물어다 그걸 거름으로 삼아 버섯을 길러 먹는 지구 최초의 농사꾼 잎꾼개미였고 흰 물체는 그들이 기르는 버섯 덩어리였다.
이렇듯 실험실에서 처음 만난 잎꾼개미를 실제로 야생에서 다시 본 것은 1984년 여름 OTS(Organization for Tropical Studies)가 개설한 열대생물학을 수강하기 위해 중미의 나라 코스타리카를 찾았을 때였다. 원시의 열대우림이 잘 보전되어 있는 ‘라셀바생물학연구소(La Selva Biological Station)’는 어릴 적 타잔 영화를 보며 언젠가 꼭 가보리라 꿈꿨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중남미 열대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 중의 하나인 잎꾼개미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숲에 들어선 지 불과 십여 분만에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잎꾼개미의 행렬을 만났다. 오솔길을 가로질러 숲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행렬을 족히 100여 미터는 따라가서야 그들의 둥지가 나타났다. 일개미들이 지하에서 퍼 올린 흙알갱이 둔덕의 폭이 족히 내 양팔간격보다 넓었다. 그 개미 둔덕 곁에서 저 멀리 이파리를 물고 오는 개미들을 보노라니 개미는 보이지 않고 이파리들만 찰랑거렸다. 몸 색깔이 갈색인 개미들은 흙을 배경으로 거의 보이지 않고 제가끔 다양한 모양으로 잘린 이파리들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오고 있었다.
지구생태계에서 농사를 지을 줄 아는 동물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셋뿐이다. 흰개미, 개미, 그리고 인간이다. 개미나 흰개미가 농사를 짓는다 한들 어디 우리 인간에 비할까 하겠지만 사실 농사에 관한 우리의 대선배들이다. 우리는 농업이 우리 삶의 근본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하지만 현생인류가 지구에서 살아온 25만년 중 농경을 하며 산 기간은 최근 1만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의 역사에서 5%도 채 되지 않는 기간이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약 1만1500년 전 나일강에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비옥한 삼각지대(Fertile crescent)’와 이란의 골란(Chogha Golan)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이전의 24만년 동안에는 침팬지와 다름없이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중남미 열대에서 식물의 잎을 뜯어다 버섯을 길러먹는 잎꾼개미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 잎꾼개미가 기르는 버섯의 DNA를 추출해 얼마나 오랫동안 개미 농장에서 경작되었는지 생물시계 측정법으로 역산해 보았더니 무려 5500만년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각종 자연 다큐멘터리는 물론 ‘정글의 법칙’에도 소개된 바 있는 잎꾼개미는 국내에서는 원래 ‘가위개미’로 불렸다. 이들이 나뭇잎을 자를 때 아래턱뼈를 마치 가위처럼 사용하는 줄 알고 붙인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톱질을 하듯 자른다. 그래서 나는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사람을 나무꾼이라 부르니 이들을 ‘잎꾼’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영어 이름도 ‘이파리를 자르는 개미(leaf-cutter ant)’이므로 직역하면 말 그대로 ‘잎꾼개미’이다.
북미와 유럽의 몇몇 자연사박물관은 여러 해 전부터 잎꾼개미를 전시해 관람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서양의 잎꾼개미 전시를 모두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직접 가본 곳들은 모두 잎꾼의 행렬이 기껏해야 양팔간격 남짓하다. 지금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에는 남미의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채집해온 잎꾼개미가 전시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성공한 전시이다. 기왕에 아시아 최초인 마당에 욕심을 좀 부렸다. 우리 국립생태원의 잎꾼들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잎을 물고 장장 10미터가 넘는 길을 행군한다. 한쪽 구석에서 개미들이 열심히 이파리를 자르면 작은 잎꾼들이 그걸 입에 물고 단숨에 집으로 내달린다. 집에는 더 작은 개미들이 그 이파리들을 잘게 부순 다음 그걸 거름 삼아 버섯을 경작한다. 이 전 과정을 바로 코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다. 나는 요즘 대놓고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산다. 작은 개미들이 이파리를 자르고 그걸 입에 물어 나르는 걸 보고도 재미없다 하는 사람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겠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평생 어디에서도 이보다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전시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잎꾼개미 전시를 보며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그들이 어떤 식물을 먹느냐는 것이다. 남미 열대우림에서 살던 개미들인데 온대 지방인 우리나라에 와서 낯선 온대 식물을 잘 먹느냐는 질문이다. 다행히 잎꾼개미들은 이렇다 할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는 웬만한 우리나라 식물을 다 잘 먹는다. 아마 개미가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집으로 물고간 이파리는 대부분 버섯이 먹는다. 버섯의 입맛이 까다롭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다. 여러 종류의 식물을 줘봤는데 사철나무와 참나무 이파리를 특별히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나무는 건드리지 않는다. 마침 에버랜드 동물원에 중국에서 판다가 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판다처럼 우리 잎꾼개미도 대나무 잎을 물어가려나 해서 실험해봤는데 신기할 정도로 그야말로 손도 대지 않는 걸 발견했다. 대나무 잎이라고 해서 버섯의 거름이 되지 못할 까닭은 없어 보이는데. 이 경우는 버섯의 입이 까다로운 게 아니라 개미가 까칠한 게 아닐까 싶다. 이 또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일 듯싶어 세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국립생태원을 방문해 잎꾼개미의 행렬을 지켜보는 관람객 중 특별히 눈이 밝은 분은 얌체 개미를 발견하고 의아해한다. 동료 일개미가 힘겹게 입에 물고 가는 이파리에 올라타고 가는 개미들이 있다. 협업의 대명사로 알려진 개미 사회에 이런 뻔뻔한 얌체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면 과연 이들은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 것일까? 내가 1980년대 중반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열대에서 연구하던 시절 바로 이 질문은 우리 모두를 괴롭히던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다. 잎꾼개미의 행렬을 따라 별나게 붕붕거리며 날던 파리들이 원인이었다. 이 기생파리들은 잎꾼개미의 몸에 알을 낳으려 하지만 개미의 딱딱한 외골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파리를 나르는 잎꾼개미들의 노출된 목의 얇은 막 부위를 이 파리들이 노린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짐 위에 올라타 더 무겁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개미들은 흔들거리는 이파리 위에 서서 동료의 목을 노리는 파리들을 쫓는 특별한 임무를 지닌 개미들이다. 그런데 우리 국립생태원에는 기생파리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