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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Jan 24. 2017

2016 윈저성 뿌리와 새싹 리더십 프로그램 참가 후기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부천에서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생태, 평화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성민규라고 합니다. 지난 8월, 저는 생명다양성재단의 추천을 받아 영국 윈저성에서 열리는 뿌리와 새싹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했었습니다. 뿌리와 새싹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은 20여 개국의 뿌리와 새싹 리더들이 영국 윈저성에서 9일 동안 머물며 자신들의 활동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비전에 관련한 회의를 하는 행사입니다. 다른 나라 뿌리와 새싹은 어떻게 활동하는지 자세히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리더들과 직접 만나서 서로 간의 친목을 다지고 공동 프로젝트를 만들어 볼 수도 있었던 굉장한 시간이었습니다. 더욱 특별한 것은, 뿌리와 새싹의 공동 설립자이신 제인 구달 선생님께서 일정의 대부분에 함께 참여하셨다는 것이죠! 이 꿈같은 8박 9일의 일정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부족한 글이지만 이렇게 소식지에 보내 드립니다.


윈저 성에 도착하다

윈저성 성탑

 새벽에 일어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홀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기다리는 내내 설레기도 하고, 외국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내 영어실력이 괜찮을지, 준비한 발표는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나를 먼 땅으로 데려갈 비행기는 이미 게이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내내 긴장되어 다리를 무척이나 떨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비행기에 올랐다. 탑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기내는 북적거렸고 이륙하자마자 피곤이 몰려와 눈을 붙이고 한숨 자니 핀란드 헬싱키 Vantaa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목적지인 영국에 좀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다시 설렘과 긴장으로 환승편을 기다렸다. 그렇게 영국으로의 짧은 비행 후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은 오래된 터미널 느낌이었고 깔끔했던 핀란드 반타 공항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혼잡했다. 혼란 속에서 터미널 바깥으로 나가 조금 헤매다 ‘MINGYU SUNG’이라고 쓰인 화이트보드를 들고 계신 기사님을 찾았다. 기사님의 인도에 차를 타고 출발하자 창밖으로 보이는 온갖 낯선 풍경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일단 도로에서 운행 방향이 달랐다. 익숙지 않은 차들, 간판들, 주택, 상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차는 이윽고 도시 외곽의 전원 지역을 달려 윈저로 향했다. 초원들과 숲들의 초록이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빛깔이었다. 


 차를 타고 조금 달리다 깜짝 놀랄 만한 풍경을 마주했다. 매의 먹이 사냥. 차 가까이 뭔가 휙 떨어져서 가만 살펴보니 매! 무서운 맹금류인 매가 있었다. 그런데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토끼로 보이는 커다란 먹이를 움켜쥐고 뜯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황갈색 매였다. 아, 영국에 오니 영국의 동물들을 볼 수 있구나. 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무척이나 흥분되었다. 그렇게 영국에서 본 첫 야생동물(어쩌면 왕실 소유의 것일지도 모르지만)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성 안 풍경


 선물 같은 깜짝 이벤트를 뒤로 하고 어느새 차는 윈저 타운을 지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영국 국기들이 휘날리고 고풍스러운 양식의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좁은 골목길로 나오자 탁 트이는 넓은 공간이 나왔고, 그 앞에는 소설책에서나 보던 중세 유럽의 거대한 성탑이 있었다. 기사들이 철컹거리며 걸어 나올 것 같은 커다란 성문 앞에 방탄복을 입은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기사님이 목적지를 되물었다. “정말 여기 맞아?” 나는 성 안으로 보내달라고 했으나 경찰들이 제지했다. 기사님은 나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차에서 내리고 신원 확인 끝에 나 혼자만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광활한 윈저성의 Lower Yard에서 30일치 여행 짐이 담긴 가방을 혼자 끙끙거리며 안고 가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래도 여왕님이 지내는 성에 초대 받았다고 공항에서 수트로 갈아입었는데, 무거운 짐 때문에 다 구겨지고 말았다. 등에서는 땀이 뻘뻘 흘렀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렇게 Lower Yard 깊숙이 있는 St. George’s House에 도착하니 성의 관리인, 샬롯 씨가 마중 나오셨다. 샬롯 씨는 나의 몰골을 보더니 차가 안으로 들어오게 했어야 하는데 성 경비대에게 미리 연락을 못했다며 사과하셨다. 나는 땀을 훔치고 괜찮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샬롯 씨는 짤막하게 St.George’s House에 대한 소개 후에 내가 2주 가량 지낼 방을 보여주셨다. 맨 꼭대기 층의 아늑한 방이었다. 창문으로는 성 조지 대성당과 템스 강이 내려다 보였다. 그렇게 2주 간의 윈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네팔의 인상적인 활동가, 마노쉬를 만나다


 윈저성을 둘러보고 하룻밤을 지낸 후, 아침에 일어나 방문자 게시판을 보니 나 말고 두 명의 손님이 더 와있었다! 네팔에서 온 마노쉬와 말레이시아에서 온 쥰이치. 드디어 2주 간 함께 지낼 뿌리와 새싹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는구나! 나는 흥분하여 방 안으로 돌아왔다. 마침 점심 쯤이었기 때문에 마노쉬와 쥰이치에게 함께 식사하는 게 어떻겠냐는 메일을 보냈다. 쥰이치는 연락이 안 되어 기다리다가 마노쉬와 만나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템즈 강

 성 근처에 있는 템스 강을 걸으며 서로 자기 소개와 함께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마노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9살부터 동네의 뱀들을 구하는 활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평생을 환경보전과 동물복지에 관한 일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활동분야는 네팔의 불법적인 동물거래와 어촌에서 이루어지는 남획과 멸종위기 동물의 사냥이며, 네팔 동물복지 네트워크의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와. 정말 멋진 사람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빛부터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해왔던 일들을 들어보니 그의 활동 또한 어마어마했다. 


 마노쉬는 대학생 때부터 자신이 살던 마을의 뱀꾼들의 뱀을 전부 구해내고, 전기충격기와 폭약으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전통적인 방식의 어업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으며, 코끼리와 마을 주민들의 충돌로 생기는 갈등을 풀어내기도 했고, 특히 네팔의 가드히마이 페스티벌의 문제점을 알리고, 실제로 한 사원에서 그 행사를 막아낸 주역이기도 했다! 마치 영웅담 같기도 한 이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마노쉬는 그저 담담하게 나에게 풀어내었다. 내가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씩 웃으며 “민규도 잘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데, 나도 따라 웃어주었지만 속으로는 전율이 일 정도로 감동했다. 


 마노쉬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내가 한국에서 했던 일들을 소개해주었다. 고등학교에서 뿌리와 새싹 동아리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환경 문제와 동물들의 생태를 공부했었던 이야기, 멸종 위기종들이 많이 서식하는 습지에 골프장이 건설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활동했던 이야기.... 그러나 안타깝게도 골프장이 건설되기로 확정됐다는 이야기.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친구들과 사라질 습지에 대해서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또 골프장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여기저기서 개발 열풍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들의 공간들이 많이 사라져 나가고 있다는 것. 흑산도 공항, 설악산 케이블카 이야기도 덧붙여서. 


 마노쉬는 “뭐 너도 멋진 일들을  하고 있잖아!”라고 웃어 보이며 내 활동들을 인상 깊게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골프장이 결국 건설된다는 사실에 많이 좌절해 있었다. 친구들과 3년 동안 함께 했던 활동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입시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피해를 준 것 같기도 해서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가장 미안한 것은 자신의 삶터를 잃을 습지의 개구리, 벌레, 물새, 고라니, 너구리 가족들이었다. 마노쉬에게 그 심정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민규가 한 얘기들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지. 자본주의가 세계를 잠식하면서, 사람들은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잊기 시작했고,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야. 개발도상국 뿐 아니라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에서도, 그리고 남한과 북한, 우리나라 네팔에서도....” 마노쉬는 무거운 표정으로 나에게 또렷히 시선을 고정시키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중요한 건, 계속 하는 거야.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어떤 실패가 있건, 안 좋은 소식이 계속 들려와도, 네가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계속 해야만 해. 그게 활동가의 숙명이야. 그리고 계속 단계를 발전시켜야 해. 네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 모아야 할 사람들을 단계별로 점검하고 이를 현실화 해야지. 이건 제인 선생님이 매번 강조하시는 이야기야. 혹시 제인 선생님 만나 본 적 있어? 없다고? 그렇다면 너에게 틀림없이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 될 거야.”


 이야기를 나눈 지 한참이 되어 우리는 둘 다 배가 고파졌고,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1851년에 지어졌다는 윈저 로열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다 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근사한 테라스를 가진 식당에 앉았다. 마노쉬와 파스타를 점심으로 먹으며 네팔과 한국의 자연 환경, 정치 이야기, 환경운동에 관해 정신없이 이야기하다보니 또다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시계를 보니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어 한참 웃고, 템스 강변의 산책길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거니는 백조, 기러기, 오리류와 같은 물새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저녁식사까지 마노쉬와 함께하고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눕히니 하루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앞으로 2주간의 일정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누워서 생각하다 보니 낮에 마노쉬와 나누었던 꿈같은 이야기가 계속 가슴에 맴돌아 너무 설레었다. 그러나 내일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고 내가 발표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 두렵고 신경 쓰이는 마음도 한 켠에 있었다. 그렇게 뒤숭숭한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리더십 프로그램 기간 동안 사용한 숙소

전 세계 뿌리와 새싹 활동가들과의 첫 만남


 공식 행사 일정이 시작 되는 날, 뿌리와 새싹 각 국 대표들은 윈저성에서의 첫 저녁을 통해 함께 모이게 되었다. 새로 만나는 분들에게 간단한 소개와 함께 미리 제작한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첫 테이블에는 중국에서 온 우 선생님, 탄자니아에서 온 레이와 실비아 선생님, 이탈리아에서 온 아시아와 함께 앉아 식사했다.(역시 밥은 국적 불문 모두를 친해지게 하는 굉장한 매개체이다.) 서로들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이 현재 하는 프로젝트들을 공유하며 모두 금방 친구가 되었다. 우와 실비아는 학교 선생님으로, 우는 베이징에서 샥스핀 반대활동을 하고, 실비아는 탄자니아에서 학생들과 나무심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레이와 아시아 그리고 나는 학생으로, 레이는 환경운동 뿐 아니라 여성 청소년들에게 월경교육/생리대 보급 활동을 하고 있었고 아시아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나라에서 뿌리와 새싹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서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모두 유쾌하고 활달한 편이라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아시아는 자신의 이름으로 크게 주목받았는데, 실제 철자도 Asia여서, “이탈리아에서 온 아시아”라는 농담(?)으로 모두를 웃겼다. 농담과 진지한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밤이 무르익고, 다들 비행기에 지친 몸을 끌고 하나 둘 씩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하루 종일 발표 자료를 정리했던 터라 피곤해서, 아쉽지만 끝까지 남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8시부터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어제 함께 식사를 했던 익숙한 친구들의 얼굴도 보였고, 아침에 새로 온 분들도 보였다. 나에게 능숙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었던 젠(경기도 성남시에서 2년간 살았다고.)이 진행을 맡아 첫 회의를 열었다. 공식적인 자기소개를 위해 우리는 큰 원을 만들어 앉았고, 젠이 독수리 깃털이 달린 나무 막대기를 들고 인사를 시작했다. 캐나다 원주민들의 공동체 환영 방식인 CREE Sharing Circle 형식으로 토킹 피스(발언 막대기)를 돌아가면서 잡으며 서로의 소개를 나누었다. 내 차례가 오자 간단히 내가 일하고 있는 센터에서 하는 평화/생태 프로젝트들과 골프장 반대 보전 활동을 했던 습지도 간단히 소개했다. 그리고 이 녀석도 습지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이라고 하며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선물해주신 수원청개구리 손수건을 꺼내서 활짝 펼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기소개 시간


토론 세션; 지구를 구하는 아이디어의 힘!


 자기소개가 끝나고 젠이 다시 토킹 피스를 들며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각자의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려고, 열정과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더 나은 활동가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여기는 안전하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녀가 회의의 첫 번째 세션을 열었다. 첫 번째 세션의 주제는 ‘난민 문제(Refugees problem)’. 난민이 유럽으로 건너오는 주요 통로이자 목적지인 오스트리아에서 온 비키(Vicky Matejka)가 먼저 자국의 상황을 설명했다. 서유럽 대부분이 비슷하겠지만, 자신의 나라에서는 1년 전부터 급격히 난민이 증가했고, 아무것도 준비 되어 있는 게 없어서, 사람들의 인식과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 뿌리와 새싹이 할 수 있는/해야 하는 것은 더 넓은 인식을 사람들-특히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는 걸. 


 네팔의 마노쉬도 ‘뿌리와 새싹이 해야 하는 일’에 동의하며 어떻게 우리가 난민들을 도울 수 있을지, 우리가 어떤 영향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를 얘기해보자고 제안했다.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으니 우리가 다른 단체와 차별화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와 함께. 마노쉬의 제안에 따라 우리들은 대륙별 그룹으로 흩어져서 일단 각국의 난민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아시아 그룹은 5개 나라, 중국, 말레이시아, 호주, 싱가포르, 한국이 모였다. 공통적인 내용은, 다들 난민들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것이며, 난민 수용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 역시 난민들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소극적인 국가 중 하나이며, 그들에 대한 인식/차별 문제 또한 심각하다는 상황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또, 탈북자들의 문제도 말했다. 목숨을 걸고 중국 국경을 넘어 계속 위험천만한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정착해도 생존과 북한 당국에 적발될 위기를 겪는 그들의 삶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중국에서 온 이판(Yifan Yang)도 중국 내 탈북자의 삶을 덧붙여 이야기했다.

뿌리와 새싹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각국 대표

 그룹 토의가 끝나고, 다시 모두가 모여 서로 이야기 나눈 것을 공유했다. 시리아 사태로 유입되고 있는 유럽의 난민 문제, 아프리카의 난민 캠프에서의 위생, 식량, 아동들의 노동 착취 문제, 아시아 팀에서 얘기되었던 탈북 난민의 문제들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각각의 뿌리와 새싹이 할 수 있는 실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토의와 토론을 통해 나온 계획은 다음과 같다:


<실천계획>


1. 난민 캠프에 필요한 것들을 찾기 

    - 그 나라의 언어 가르치기 

    - Food Garden(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재배지 마련)

    -스포츠, 예술 활동과 같이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마련


2. 난민 캠프와 함께 하는 뿌리와 새싹 팀 지원


3. 기금 마련, 헌 옷 등 필요한 자원 모으기 


4. 야생동물 사냥 대신 지속가능한 식량원 대책 교육(양어장 만들기 등)


  토론 세션이 끝난 후에는 각자 방에 돌아가서 휴식을 가진 후 점심시간이 있었다. 식당에서 이제 모두 친구가 된 참가자들과 오늘 회의가 어땠는지,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벨기에에서 온 크리스(Chris Michelle)는 내 옆자리에 앉아 아까 들었던 탈북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며 더 자세한 것을 알려달라고 했다. 왜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가지 않고 중국 국경을 넘는지가 궁금했었나보다. 크리스의 왕성한 궁금증 때문에 나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 최근의 연평도 폭격과 안보 문제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했다.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가득해서 설명하며 진땀이 났지만 친구들이 흥미롭게 듣는 모습에 나도 흥분하며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외국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특별하기도 하고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대부분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관한 것이어서 무거운 마음이었다.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벨기에 대표 크리스

 식사 이후에는 다시 홀로 이동해서 개인 활동 발표를 들었다. 각국 뿌리와 새싹의 리더나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는 참가자들은 각국 뿌리와 새싹 활동 소개도 함께 발표했다. 행사 전에 감동하며 들었던 마노쉬의 이야기, 열악한 환경에서 난민들을 위한 식량 해결, 위생 문제, 동물들의 재자연화 등 멋진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탄자니아, 남아프리카의 이야기, 나비와 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에서 대이동을 하는 곤충들을 위한 텃밭을 만드는 케이트(Kate Thome)의 이야기 등 본인의 열정적인 활동 뿐 아니라 감동적인 순간을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참가자들이 발표할 때에는 각국 뿌리와 새싹이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나라 뿌리와 새싹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고, 특히 우리 뿌리와 새싹 팀들도 더 다양화되어서, 난민 문제(탈북자 포함), 평화 문제, 소수자 차별의 문제도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뿌리와 새싹’ 이어서 해낼 수 있는 우리만의 힘이 있기 때문에... 


 첫째 날의 난민 문제 토론 세션이 끝나고 다음 날도 토론 세션이 이어졌다. 남은 4일간의 주제는 숲과 바다(Forests and Oceans), 평화의 날(Day of Peace), 멸종위기 동물(Endangered species), 대이동을 하는 동물들(Species Migration)로 진행되었다. 그 중 내가 가장 기대하던 세션은 평화의 날. 내가 평화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회의 중간 중간 마다 다양한 워크샵을 진행했던 것도 좋았다. 평화의 날 세션이 있는 날에는 평화의 비둘기 그리기, 몸으로 평화 표현하기라는 워크숍이 있었다. 또 주제와 아무 상관없는 태극권 배우기(중국 친구들의 지도 아래), 아이들과 할 수 있는 놀이 배우기, 댄스 테라피와 같은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워크샵도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호주에서 온 미셸(Michelle Shepherd)씨가 ‘SNS 잘 활용하기’라는 주제로 워크샵을 열었는데, 통계 자료를 근거로 ‘어떤 종류의 SNS를 어떤 시간에 어느 분량의 게시물을 올려야 홍보가 잘 된다‘ 이런 내용들을 알려 주셔서 이런 주제로도 워크샵을 열 수가 있다는게 신기했고, 실제로 유익하기도 했다.

멸종위기 동물을 지키기 위한 토론 후 코뿔소를 따라하는 참가자들


제인 구달 선생님을 만나다


 네 번째 세션인 멸종위기 동물 세션을 하는 날 아침부터 나는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아침 식당 테이블에 도착하니 참가자들 모두 격앙된 표정이었다. 다들 테이블의 얘기 주제가 똑같았다; “오늘 선생님이 오신다며?!” 그랬다. 그날부터 우리의 보스(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가 함께 하시기로 했다. 멀리 일본에서 날아오신다고 했다. 그날의 세션이 끝나고 점심시간의 분위기도 최고였다. 구달 선생님이 공항에 도착한 사진을 메리(Mary Lewis, 제인 구달 선생님의 비서이시다.) 선생님이 보여주자 모두들 환호를 터뜨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들 식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작고 하얀 차 한 대가 성 앞 주차장에 나타났다. 문이 열리더니 짙은 선글라스를 쓴, 흰 백발의 우아한 노인 한 분께서 손가방을 들고 걸어 나오셨다. 나와 레이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뛰어나갔다. 처음 선생님을 뵈었을 때는, 정말 신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터질 듯한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제인 선생님과 환영의 포옹을 나누었다. 

 선생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들어오자 다들 일어서서 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A-weema-weh, a-weema-weh, a-weema-weh, a-weema-weh” 라이언 킹의 OST, ‘Lion sleeps tonight’였다.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그 광경이 너무나 장관이어서 다들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구달 선생님도 한참을 웃으시며 인사하시고 모두를 안아 주셨다. 그때부터 그녀는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 있는 모두는 다 친구였다.


 그 다음 날부터는 세션에 구달 선생님도 함께 참여하셨다. 세션 다음에는 역시 개인 활동 발표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오신 날 운 좋게도 나의 발표 차례였다. 물론 굉장히 떨렸다. 이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한 대 학자이자 ‘인류’에게 존경받는 스승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다니. 나의 발표 내용을 소개하자면, 나의 성장 과정, 절망적인 한국의 교육 환경(대학을 향한 무한 경쟁과 녹색이라고는 접할 수 없는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친구들에게, 지역 사회에서 말하고자 활동한 ‘녹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최근 하고 있는 평화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발음도 무척이나 떨렸고 손도 마이크를 놓칠 정도로 떨렸다. 수십 번도 더 연습했지만, 이렇게 최악의 발표를 보여주다니... 나는 겨우 발표를 끝마쳤다. ‘정말 최악이다.’ 속으로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는데, 갑자기 모두가 일어서서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몇몇 친구들은 안아 주었고, 언젠가 한국 DMZ에서 평화의 날 행사를 하게 되면(나의 꿈에 대해서 말하며, 평화의 날 비둘기 연 날리기 행사를 DMZ에서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가겠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특히 발표가 끝나고 식사 시간에, 마노쉬가 일어나서 모두를 집중 시키더니 “여러분 오늘 민규 발표 잘 들으셨나요? 사실 성에 하루 전 먼저 도착해서 민규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매일매일 발표 준비하느라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감동적인 발표 해준 민규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서 또 다시 박수를 받았다. 나의 노력을 이해해준 친구 마노쉬에게,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배려해 주었던 모든 참가자들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친구들이 다가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조언해주어서 더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제인 구달 박사님과 한국의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지막 세션은 제인 구달 선생님과의 대화였다. 단, 사무국장 자격으로 오신 참가자들은 따로 회의를 하고, 학생들만 모여서 구달 선생님과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선생님 앞에서 우리를 다시 한 번 소개하고, 궁금한 것들을 여쭈어보는 시간이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셨다.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가, 뿌리와 새싹 활동은 어떤 일을 했나, 힘든 것은 없나 등등...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선생님과 눈이 자주 마주쳤는데, 그녀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진실된 눈빛. 지금까지 몇 번 본 적이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정말 진실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전 생애를 통틀어서 녹아 나오는, 그렇게밖에 나올 수 없는 눈빛.


 너무나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고 제인 구달 선생님과의 대화도 끝났다. 끝난 뒤 홍차와 커피를 나누는 티타임이 있었는데 발표의 긴장감이 해소되니 시원한 공기가 필요해 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구달 선생님께서 홀로 계단 난간에 기대어 차를 드시고 계셨다. 나는 차를 들고 선생님 곁에 앉아 선생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발표 잘 들었다고 말해주시며 말문을 여셨다. “어디든 그렇지만 한국도 참 어려운 문제들이 많네.” 어려운 문제들이란 아까 내가 발표했던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 녹지의 부족, 환경파괴 문제들이었다. 특히 한국의 교육과 청소년, 청년들의 힘든 삶의 얘기에 크게 슬퍼하시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를 느끼는 건데... 그걸 잊어버려선 안 돼”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녀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고 “민규가 할 일이 많겠네.”... “어려움도 많겠지, 그렇지만 절대 포기해서는 안돼. 내가 늘 하는 말이야.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냉소주의에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마 민규는 잘 할 거야” 미소 지으며 말해 주셨다.


  아아. 이제 마노쉬가 했던 말이 이해됐다. 그녀의 힘은 이런 열정에서 나오는구나.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힘든 소식들을 끊임없이 보면서 이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는 정말 강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녀의 그런 강인함은 눈빛으로도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주게 만드는 구나.

제인구달 박사님과 각국의 뿌리와 새싹 학생들

 그 날 저녁도 선생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활발한 성격의 케이트의 배려로. “야, 너 선생님과 얘기 많이 못 나눴지? 여기 앉아” 저녁 자리에서는 선생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구달 선생님은 김산하 박사님과 최재천 교수님의 안부를 물어보셨고 나는 뿌리와 새싹 일정 전에 일본에서 선생님과 만나신 마츠자와(Tetsuro Matsuzawa) 교수님과 침팬지들의 안부를 여쭤보았다. 작년에 국립 생태원에 자기 이름을 딴 길이 생겼다며 자랑도 하셨다. 거기 전시되어 있는 장비들이 예전에 곰베 국립공원에서 연구하실 때 썼던 장비들과 아주 똑 닮았다며 칭찬해 주셨다. 식사가 나오고 선생님께서 함께 나온 와인을 따라 주셨다. 그날 긴장했다 풀린 것도 있고 피곤함도 있어서 선생님께서 따라주신 와인에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놀리며 웃고 나도 유쾌한 기분으로 마지막 밤을 한참 즐겼다. 


다음을 기약하며... 


 일정 내내 영어권 국가에 온 것, 이렇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만나는 것, 영어로 이렇게 격한 토론을 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고, 잘못 말하면 어떨까 늘 긴장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이어지는 토론에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가면 거의 통나무처럼 늘어져 자곤 했다. 힘들었다. 그러나 일정이 진행되는 모든 시간에 나는 오히려 깨어 있었다. 온 세계의 다양한 발음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이들의 열정으로 가득 찬 눈빛과 튀어 오르는 생각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에. 이 열정으로 가득찬, 감동적인 순간을 한국에 돌아가 뿌리와 새싹 친구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열정을 타오르게 하는, 그 순간이 주는 힘을 최대한 느끼기 위해서.


 참가자들 모두 서로에게서 아마 그런 힘을 느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모두 포옹과 함께 서로를 떠나보내며 두 가지를 절대 지키기로 했다. 1. 계속 연락하기, 2. 다음에 또 보기. 그 중 특히 친해졌던 쥰이치와 스페인에서 온 바렌드(Barend Bueno)는 참가자 모두가 떠난 이후에도 함께 윈저 성 근처의 공원에서 미니 골프와 맥주 한잔을 한 뒤에야 서로를 떠나보낼 수가 있었다. 쥰이치와 킹스 크로스 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지난 8일을 회상하며 나눴던 대화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환상적인 날들이었어. 온 세계의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활동과 삶을 공유하고, 구달 선생님을 만나고, 세계를 바꿀 아이디어를 나누었어.”


 나도 쥰이치가 느낀 그 감동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꿈을 다시 가슴에 품고 돌아갔다.

뿌리와 새싹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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