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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Apr 12. 2018

새우숨, 고래숨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1

 경칩도 지나고 춘분을 맞으니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가 저절로 펴지며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려 한다. 그러다 이내 화들짝 놀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짧은 숨 모드로 돌아선다. 요즘 이 땅에 사는 누가 감히 미세먼지를 양껏 들이마시는 객기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어렸을 때에는 운동장에 모여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국민체조란 걸 했다. 준비 운동으로 제자리 걷기를 조금 한 다음 숨쉬기 운동부터 시작한다. 그렇다. 숨쉬기 운동이란 게 있다. 양팔을 앞으로 위로 들어 올렸다 옆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내리는 운동이다. 숨 쉬는 걸 일부러 무슨 운동으로 하는가 싶겠지만,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체조를 하기 전에 우리 몸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국민체조는 지금 생각해도 퍽 훌륭한 운동이지만 이젠 이걸 야외에서 하기는 버거운 듯싶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나는 어느 일간지에 우리가 어느덧 ‘새우숨’을 쉬며 살고 있다는 글을 실었다. 몸을 곱송그려 새우등 자세를 취한 채 잠깐씩 눈을 붙이는 잠을 우리는 ‘새우잠’이라 한다. ‘새우숨’이란 이를 본떠 내가 새로 만든 말이다. 어깨를 쫙 펴고 가슴 깊숙이 ‘고래숨’을 들이키는 게 아니라 미세먼지 입자가 행여 허파꽈리에 들어와 박힐까 두려워 짧게 작은 숨을 몰아쉬는 걸 나는 ‘새우숨’이라 일컫는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대단한 육체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이유가 나는 ‘새우숨’으로 인해 몸이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지만 ‘새우숨’에 ‘고래숨’이 밀려났다. 


 나는 거의 10년째 걸어서 출퇴근한다. 숨이 찰 정도의 속도로 30분쯤 걷는 거리다.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남짓 걸으니 족히 1만보는 될 것이다. 나도 건강해지고 그만큼 자동차 운행을 줄이니 결과적으로 지구도 건강해질 것이라고 자부하며 즐겁게 걷고 있다. 걷다 보면 요사이 부쩍 마스크를 착용하고 걷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는 마스크를 갖고는 다니지만 좀처럼 쓰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고 걸으면 숨이 막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빨리 걸으면 숨이 차오르는데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면 턱턱 막혀 오른다. 그래서 자주 규율을 어기는 학생처럼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마스크를 주머니 속으로 구겨 넣는다. 


 그러던 어느 날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를 지낸 아주대 의대 장재연 교수의 글을 읽곤 무릎을 쳤다. 그는 지나친 마스크 착용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래 개인용 마스크는 감기에 걸려 기침을 많이 하게 될 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입자가 작은 미세먼지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 마스크보다 강력한 산업용 마스크를 찾게 된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KF94와 KF99 마스크는 원래 산업용 마스크로서 평균 0.4 마이크론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이상 걸러낼 수 있단다. 그러니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높을수록 숨쉬기가 불편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도 그래서 참다못해 벗어 던졌다. 비교적 건강한 나도 이럴진대 심폐 기능이 저조한 환자와 노약자나 임산부는 오죽하랴? 실제로 미국 흉부학회의 가이드라인은 “보호용 마스크 착용은 숨쉬기를 힘들게 만들어 육체적으로 부담을 주며, 1회 호흡량이 늘어 호흡 빈도가 줄어들고 허파꽈리 환기율이 감소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만성 호흡기 질환이나 심장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고성능 마스크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라고 권고한다. 


 최근 환경재단이 ‘미세먼지센터’를 창립했다. 미세먼지 문제를 정부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시민 사회의 결단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기후변화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것 같다. 화석 연료 사용이 원인 중의 하나라는 점으로는 통하는 바가 있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그리 강하지 않다. 미세먼지 문제에는 기후변화 문제와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 하나 있다. 화석 연료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고 다른 요인들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해도 기후변화는 한 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미 우리가 대기 중에 뿜어낸 온실기체들이 있기 때문에 한 순간에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미세먼지 문제는 원인을 제거하면 거의 곧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문제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말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 직전에 중국과학원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뜻밖의 파란 하늘과 깨끗한 공기에 놀란 적이 있다. 마중 나온 중국과학원 연구원들에게 어찌 된 영문이냐 물었더니 올림픽을 대비해 베이징 주변 모든 공장을 잠정 폐쇄하고 베이징 외부에서 내부로 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했다는 것이었다.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내게 올림픽만 끝나면 곧바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그들의 냉소가 이어졌다. 실제로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베이징 대기 오염은 또다시 연일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베이징의 공기가 거짓말처럼 다시 깨끗해졌다. 미세먼지 수치가 서울보다 낮다. 예전에 베이징 공기를 마셔본 사람에게는 가히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시진핑 주석의 강한 의지에 따라 중국 정부는 주요 오염원인 석탄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중국이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공산국가라서 정부 규제의 효과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겠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노력하면 잡을 수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놀랍게 달라진 베이징의 대기 (출처: Asia Society)


 우리 정부는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미온적이면서 미세먼지의 ‘나쁨’ 상황 기준을 한껏 낮춰 놓고 툭하면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종용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이 자칫 건강에 나쁠 수도 있다고 알려주는 외국 정부와 달리 우리 정부는 자꾸 양치기 소년 흉내만 내고 있다. 마스크의 미세먼지 차단 효과는 과연 어떻게 측정했을까? 아마 계측기계에 마스크를 밀착시켜 놓은 상태에서 일정량의 미세먼지를 통과시켰을 때 어느 정도가 걸러지는가를 쟀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마스크를 사용해보니 아무리 꼼꼼히 착용해도 마스크 가장자리로 밀려들어오는 ‘고래숨’을 막을 길이 없었다. 마스크 때문에 숨쉬기가 불편해지니 자연스레 들숨이 더 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들 어쩌면 괜히 숨쉬기만 불편할 뿐 미세먼지는 여전히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건 아닐까 싶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는 미세먼지 해소를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다른 많은 환경 문제에 비해 미세먼지 문제는 충분히 가시적인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문제인 만큼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련다. 조만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도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우숨’이 아니라 ‘고래숨’을 들이마실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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