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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Jul 10. 2018

플라스틱 플래닛(The Plastic Planet)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2

 내게는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부터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지금도 거의 매달 한 번씩 만난다. 우리끼리 만날 때도 있지만 종종 부부동반으로 만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보다 부인네들이 더 재잘재잘 깨가 쏟아진다. 올해 초 우리는 그 동안 매달 조금씩 모아온 돈을 털어 일곱 집 중 갑자기 독감에 걸린 한 집만 빼고 전부 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발루(Kota Kinabalu)에 다녀왔다. 


 나는 평생 열대를 드나들었지만 주로 정글로 돌아다녔을 뿐 해변에 갈 기회는 거의 없었다. 코타키나발루는 알려진 것만큼 지상 천국은 아니었다. 나를 가장 실망시킨 것은 바닷물과 해변의 상태였다. 눈이 모자라게 이어진 흰 백사장 위로 초록빛 바닷물을 향해 반쯤 누운 야자수들이 마치 수양버들처럼 흐느적거리는, 그런 꿈에 그리던 열대 바닷가는커녕 가는 곳마다 군데군데 쓰레기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다 나는 정녕 못 볼 꼴을 보고 말았다. 파도에 밀려와 쌓인 플라스틱과 쓰레기 더미가 뉴스에서 보던 대로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열대 바다에 대한 나의 환상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나만 겪는 게 아닐 것이다. 열대 지방의 많은 바닷가는 요즘 어디선가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통계 자료 포털 사이트 스태티스타(www.statista.com)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그저 35만톤 남짓이던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2002년 2억 톤을 넘기더니 2016년 현재에는 무려 3억3천500만톤에 이른다. 육지에서 버린 플라스틱과 쓰레기들은 해류를 타고 바다를 떠돌다 바닷가 여기저기에 불시착하기도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 모여 거대한 섬을 이루기도 한다. 1985년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 북태평양 한복판에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쓰레기섬이 발견돼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후 지금까지 거의 모든 대양에서 발견되고 있는 이 엽기적인 섬들은 그 크기가 손쉽게 미국 텍사스 주 면적과 맞먹는 70만 km2에서 크게는 러시아 국토 면적에 달하는 1500만 km2에 이른다. 실제로 이런 섬을 목격하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예전의 환경 문제들은 거의 대부분 국지적으로 일어났다. 예를 들면, 1950년대 중반부터 일본 미나마타현 주민들이 수은 중독으로 신경근 이상 징후의 미나마타병을 앓았던 사건이나 1991년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유출돼 대구·부산·마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 전역의 식수원을 오염시킨 사건 등은 모두 국지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전지구적인 환경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가 대표적인 예다. 2000년 8월 유엔(UN)에서 열린 밀레니엄 세계평화 정상회담(Millenium World Peace Summit)에서 에스키모 족장 앙가앙가크 라이베르트(Angaanagaq Lyberth)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연설을 했다. 

“우리 마을에 ……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저 북쪽에서 우리는 남쪽의 당신들이 매일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 북쪽에는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당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얼음을 녹일 수 있겠습니까?” 

에스키모 족장 앙가앙가크 라이베르트(Angaanagaq Lyberth) / Photo by NaturkostRapunzel on Youtube

 기후 변화는 지나친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지구 대기권의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인데 저지르는 나라 따로 있고 당하는 나라 따로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가장 많은 온실기체를 뿜어내고 있는데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엉뚱하게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Tuvalu)는 거의 확실히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국토가 사라질 형편이다. 이렇다 할 산업도 없는 투발루가 지구온난화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는데 애꿎게 가장 먼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그래서 기후 변화는 국제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태평양 쓰레기섬 형성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2011년 일본 지진이었다. 천재지변이니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짓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쓰레기가 돼버린 물건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원인 제공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쓰레기섬 문제도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들의 책임이 큰데 정작 피해를 입는 측은 대체로 청정 해변을 갖고 있던 열대 지방 국가들이다. 더 보편적으로 보면 이 같은 대규모 해양 환경오염은 지구촌 전체를 병들게 한다. 환경 문제는 왜 날이 갈수록 그 규모와 영향 권역이 훨씬 더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일까?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한해 미국에서 소비되는 플라스틱백은 1000억개에 달한다. 세계 전체로 보면 1~4조개가 사용된다. 1분에 100만장씩 사용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 부문에서는 단연 선두주자 중 하나다. 2015년 현재 216억 개를 사용했는데, 이는 한 사람이 1년에 무려 420개를 사용하는 셈이다. 나는 가게에서 장을 볼 때 되도록 플라스틱백을 받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접는 천 장바구니를 갖고 다닌다. 등에 메고 다니는 백팩 옆 주머니에 하나가 들어 있고, 백팩을 메지 않고 나가는 날을 대비해 저고리 안주머니 혹은 바지 뒷주머니에도 하나를 넣고 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깜빡한 날에는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게 아주머니들은 내게 눈을 흘기며 “교수님이 어떻게 장바구니를 안 가져오실 수 있냐?”며 짐짓 나무란다.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못지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 역시 심각하다. 물 위에 떠다니거나 바닷가로 밀려나온 플라스틱 병이나 백은 그나마 건져낼 수라도 있지만 물 속에 녹아 든 미세 플라스틱은 걸러낼 묘책이 없다. 미세 플라스틱에는 온갖 독성 화학물질이 별나게 잘 들러붙어 심각한 오염을 야기한다. 요즘 우리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미세먼지다. 일기예보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날씨의 맑고 흐림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세먼지 상태의 좋고 나쁨을 파악하기 위함이 된 지 오래다. 

자연에 쌓인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 Photo by Marine Conservation Society - Trevor Morton 


 이제 미세먼지뿐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도 걱정해야 한다. 요사이 많은 사람이 즐겨 입는 나일론, 폴리에스터, 스판덱스, 플리스 등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든 섬유다. 이들로부터 수시로 엄청난 양의 미세 입자들이 떨어져 나와 우리가 숨쉬는 공기 중에 떠다닌다. 이런 섬유 제품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미세한 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곧바로 강과 바다로 유입된다. 미세섬유는 이미 생수, 맥주, 꿀 등에서 검출되었고, 굴, 조개, 생선회 등 다양한 어패류 조직에도 속속들이 들어가 박혔다. 심지어는 천연 소금에도 미세섬유 입자가 함유되어 있는 걸로 드러났다. 결국 우리 스스로 우리 입 안에 털어 넣고 있다. 환경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강과 바다의 퇴적층에 이미 광범하게 쌓여 있단다. 가히 플라스틱 행성이다.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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