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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Nov 26. 2018

동물도 애도한다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3

 올 여름 폭염이 우리를 옥죄기 시작할 무렵 또 다른 뉴스 하나가 내 마음을 붙들었다. 미국 시애틀 앞 바다에서 ‘탈레쿠아(Tahlequah)’라는 이름의 범고래가 죽은 새끼를 연신 물 위로 떠받치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이 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과학자들의 연구 노트에는 J35로 적혀 있는 탈레쿠아는 1998년 J-집안의 ‘앤젤라인 공주(Princess Angeline)’라는 이름의 암컷 J17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2010년 아들 J47(이름: 낫치Notch)를 낳은 후 한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2016년부터는 자매인 J28(이름: 폴라리스Polaris)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두 조카를 돌보기도 했다. 


 탈레쿠아는 2018년 7월 24일 둘째를 낳았지만 아기는 반 시간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그 후 17일 동안 죽은 아기를 주둥이 위에 얹은 채 무려 1600km의 거리를 헤엄쳐 다녔다. 때로 동료들이 대신 떠받치고 있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그의 애도와 모성애에 많은 사람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죽은 새끼를 들어올리고 있는 범고래 탈레쿠아(Tahlequah)


 동물도 슬퍼한다. 동물도 애도한다. 애도(哀悼)의 사전적 뜻풀이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고 되어 있지만 꼭 죽음을 슬퍼하는 것만 애도한다고 해야할까 싶다. ‘슬플 애(哀)’와 ‘슬퍼할 도(悼)’를 묶으면 그저 슬퍼하는 것뿐이지 꼭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기운이 없어 보이거나 우울해 보이는 동물의 모습 역시 흔히 관찰되지만 아무래도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이 가장 극적이어서 제일 자주 기록으로 남는 것 같다. 그래서 사망학의 분과인 동물사망학(Animal Thanatology) 또는 비교사망학(Comparative Thanatology)에는 제법 많은 관찰 기록들이 축적되었다. 


 아프리카 기니(Guinea)의 보수(Bossou) 지역에서 오랫동안 야생 침팬지를 연구해온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 테츠로 마츠자와(Tetsuro Matsuzawa) 교수는 2003년 유행성 호흡기 질환으로 죽은 새끼 두 마리를 각각 68일과 19일 동안 들고 다닌 침팬지 어미의 행동을 학계에 보고해 주목을 받았다. 죽은 자식의 사체를 끌고 다니는 행동은 침팬지 외에 고릴라와 비비에서도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죽은 지 오래된 아이의 사체를 들고 다니는 어미 침팬지


 영장류가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은 1879년 브라운(Arthur E. Brown)의 보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수컷 침팬지가 암컷을 잃은 후 괴성을 지르며 힘들어하는 행동을 묘사했다. 그는 이틀 후 비교적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침팬지를 보며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영구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곰비의 침팬지들(The Chimpanzees of Gombe: Patterns of Behavior, 1986)’에서 제인 구달은 죽음으로 인한 침팬지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가장 유명한 침팬지 엄마 플로(Flo)는 평생 자식 다섯을 낳았다. 막내 플레임(Flame)이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죽자 미처 젖을 떼지 못한 플린트(Flint)는 점점 더 엄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2년에 드디어 플로가 세상을 떠나자 플린트는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한 달도 채 못 돼 여덟 살 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엄마 침팬지 플로(Flo)와 아이 침팬지 플린트(Flint)


 나이 든 침팬지는 대개 홀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어른 침팬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은 그리 많이 관찰되지 않았지만 마치 장례 예식처럼 보이는 단체 행동이 관찰됐다. 2008년 겨울 스코틀랜드의 블레어 드러먼드 공원(Blair Drummond Safari & Adventure Park)에 살던 쉰 살의 침팬지 팬지(Pansy)가 숨을 거두는 과정에서 보인 다른 침팬지들의 행동은 특별했다. 팬지의 숨이 가빠지자 스무 살 먹은 팬지의 딸 로지(Rosie)가 밤새도록 옆에 앉아 가슴을 쓰다듬고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다음날 사육사들이 팬지의 사체를 옮기는 동안 함께 살던 세 마리의 침팬지들은 전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마치 엄숙한 장례를 치르듯이. 침팬지들은 팬지가 숨을 거둔 방에 5일 동안이나 들어가기를 꺼리다 결국 로지가 먼저 들어가 밤을 보낸 다음에야 다시 그 방을 쓰기 시작했다. 


 동료의 죽음을 단체로 애도하는 모습은 코끼리에서 가장 자주 관찰되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최근 코끼리들이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2018년 9월 10일 아프리카 코끼리 수컷 한 마리가 옆구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 내장이 몸 밖으로 빠져나온 채 나무 옆에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동영상은 그가 끝내 숨을 거둔 후 동료들이 다가와 애도하는 행동을 상세히 보여준다. 코끼리가 애도하는 행동에는 앞발과 상체를 시체 위에 얹고 코로 동료의 사체를 쓰다듬는 행위와 뒷걸음치며 접근해 종종 뒷발로 사체를 건드리는 동작이 포함된다. 케냐의 삼부루 국립공원(Samburu National Park)에서는 으뜸암컷(Alpha female) 코끼리가 사망했을 때 근처에 사는 다섯 가족의 코끼리들이 몰려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다.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코끼리 모습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은 두뇌 용량이 큰 영장류, 코끼리, 고래에서만 관찰된 게 아니다. 바다사자, 늑대, 개, 고양이는 물론, 새들도 죽음을 애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찍이 콘라트 로렌츠는 거위도 친구가 죽으면 “퀭한 눈으로 머리를 떨군 채 축 처져 있다”고 적었다. 2006년 미국 뉴욕 주의 한 농장에서 하퍼(Harper)와 콜(Kohl)이라는 이름의 청둥오리가 단짝으로 지내다 콜이 먼저 죽자 하퍼가 주검 위에 자신의 머리를 묻은 채 오랫동안 슬퍼했다. 그 후 종종 함께 쉬던 연못가를 맴돌던 하퍼는 두 달 후 끝내 친구의 뒤를 따랐다. 

농장 보호소의 하퍼와 콜, 버튼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새로 가장 빈번하게 관찰된 새는 흥미롭게도 까치다. 1997년부터 시작해 어느덧 20년 넘게 까치를 연구한 덕에 우리 연구실이 이제 까치 연구에 관한 한 명실공히 세계 제일이건만 나는 한 번도 까치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유튜브에는 세계 각지에서 까치들이 동료의 주검에 모여들어 포유동물이 하듯 흔들어 깨우려하기도 하고 한참 동안 자리를 지키기는 동영상이 떠 있다. 훨씬 덜 빈번하지만 까마귀에서도 애도 행동이 관찰된 걸 보면 흔히 ‘조류 영장류’로 불리는 앵무새와 까마귀, 까치의 사망학 연구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간의 행동은 진화적 적응 현상으로 이해한다. 천수를 다하고 마친 삶은 별개지만, 실수 또는 사고로 죽은 경우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우리 인간을 성공적인 동물로 만들어주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나치게 애도하며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끝내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는 결코 적응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 인간 사회에는 구달 선생님이 관찰한 플로 같은 어머니들이 수두룩하다. 아직 돌봐야 할 자식들이 곁에 있건만 잃어버린 자식 하나를 잊지 못해 결국 삶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자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 애쓰다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면 비록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겠지만 툴툴 털고 무리로 돌아가는 어미 영양을 보며 솔직히 인간보다 현명하다고 느끼는 나는 아무래도 냉혈한인 모양이다.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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