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4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Marc Bekoff)의 새 책 ‘Canine Confidential’이 우리말로 번역돼 곧 나올 예정이다. 베코프와 나는 제인 구달 선생님을 통해 한 다리 건너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어쩌다 보니 한 번도 실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는 내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이상임 교수와 함께 번역한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의 공저자이며, 제인구달연구소의 대사로서 구달 박사와 함께 2000년 ‘윤리적 동물 관리를 위한 동물행동학자들(Ethologists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이라는 시민운동단체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참여형 학자다.
곧 출판될 이 책에는 ‘개가 우리를 반려인으로 삼았다’라는 제목의 내 추천의 글이 실릴 텐데 이 글은 그 추천사에서 일부를 빌려와 쓴 글임을 미리 밝혀둔다. 나는 베코프와 마찬가지로 동물행동학자다. 지금은 어느덧 다섯으로 줄었지만 나는 한때 개를 열 마리나 길렀다. 나보다 개에 대해 훨씬 많이 알며 훨씬 더 사랑하는 아내는 내가 우리 개들을 대상으로 섣부른 연구를 실시할까 염려해 일찌감치 단호하게 연구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동물행동학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른바 침습성 실험(invasive experiment)을 하지 않고도 너끈히 연구할 수 있는 분야다.
엄마와 아빠 개가 다섯 마리씩 두 번에 걸쳐 낳은 새끼들 중 겨우 두 마리만 입양시키고 여덟을 끌어안는 바람에 모두 열 마리의 대가족이 되었다. 등은 까맣고 배는 갈색인 닥스훈트 열 마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도대체 어떻게 구별하느냐고 묻지만 아내와 내게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얼굴과 몸매가 다른 건 물론이고 성격도 모두 확연히 다르다. 개성을 영어로 ‘personality’라고 하는 데에는 인간(person)만 개성을 지닌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 동물행동학에서 가장 뜨거운 연구 주제는 단연 동물의 개성 연구다. 침팬지의 개성은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는 곤충의 개성에 관한 논문도 나온다. 책을 읽으며 배우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가 바로 “이 세상 모든 개는 다 다르다”이다.
최근 개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영장류를 연구했던 학자들 중 상당수가 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도 본격적으로 개 연구를 시작했고 듀크대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 교수도 요즘 개를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 인간과 유전자를 거의 99% 가까이 공유하는 침팬지가 일반적인 지능으로 볼 때 인간과 가장 유사한 게 사실이지만 인간과 공감하는 능력은 개가 단연 월등하다. 오랜 세월 인간 곁에서 함께 살며 우리 마음을 읽는 능력이 발달한 것이다. 아니면 원래 그런 공감 능력이 탁월했던 늑대들이 개가 되었거나.
개와 인간의 공감은 각별하다. 손가락질(finger pointing) 행동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누군가가 손가락질을 하면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다. 다른 사람들이 주시하는 방향을 따라 보기도 한다. 개들은 대체로 우리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쳐다보거나 달려간다. 침팬지는 그저 우리 손가락 끝만 바라볼 뿐이다.
지능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점차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개가 우리의 시선을 따른다고 해서 다짜고짜 침팬지보다 더 똑똑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더 이상 개가 침팬지보다 덜 똑똑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아주 크게 뭉뚱그려 얘기하면 IQ는 침팬지가 더 높지만 EQ는 개가 더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바로 이 점이 상당수의 ‘진지한’ 동물행동학자들과 신경생물학자들이 최근 개 연구에 뛰어들기 시작한 연유다.
우리나라도 어느덧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즉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에 달하는 시대를 맞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강형욱 개 훈련사일 것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개통령’일까? 아내는 하루 종일 개들을 돌본 다음 TV를 켜고 강형욱 훈련사가 개들을 다루는 모습을 지켜본다. 물론 우리는 TV에서 잘 편집된 결과를 보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가 개들의 습성을 바꿔가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개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는 최근 우리가 개를 데려다 길들인 게 아니라 개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 것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힘을 얻고 있다. 늑대들 중에서 특별히 살가운, 즉 공감 능력이 뛰어난 개체들이 먼저 인간이 사는 곳으로 접근해 함께 살게 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개를 반려견으로 만든 게 아니라 개들이 우리를 반려인으로 삼은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 둘이 서로를 반려동물로 선택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강형욱 훈련사는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훈련시킬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지내길 원하는지를 가늠하려 한다. 바람직한 반려인의 자세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반려인 1000만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여전히 해마다 말복이면 개고기를 먹고 더위를 이겨낼 체력을 기른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잡식성 동물인 인간이 육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건강은 물론 지구의 건강을 위해 육식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유전자 분석 연구로 인해 개의 기원 시기와 장소에 대한 논란이 활발해졌지만 소, 돼지, 염소, 양보다 훨씬 먼저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개는 식용 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개가 우리의 마음을 읽으며 우리의 벗이 돼준 것이지 우리가 잡아먹을 목적으로 개를 잡아 가둔 게 아니다.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 몇 곳에서 졸지에 친구를 밥상 위에 올리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 이제 조상님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바로잡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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