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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Aug 20. 2019

소리 없는 아우성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5

요즘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MT(Membership Training; 수련회, 단합 모임)는 갈망정 정작 채집 여행은 가지 않는 것 같다. 채집 여 행은 본디 생물학과 학생들의 특권이었는데 언제 슬그머니 사라졌는지 못 내 아쉽다. 예전에 생물학과를 다닌 사람들은 채집 여행 모험담을 마치 군대 얘기 하듯 늘어놓았는데, 이제는 ‘생물학과’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을 유지하 고 있는 대학은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지경이고 제가끔 ‘생명과학과’ 또는 ‘생 명과학부’로 개명하더니 채집 여행도 덩달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학과 이 름을 바꾼다고 정체성도 내던져야 하는 것인지 사뭇 씁쓸하다. 


채집 여행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게 몇 가지 있다. 출발하는 날 용산역이나 청량리역 광장에서부터 둥그렇게 둘러앉아 치기 시작하는 우리들의 ‘좀도 박’은 여행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됐다. 채집지에 도착한 첫날밤 캠 프파이어에서 시작한 술추렴도 밤새 이어져 다음날 산행 때 저만치 앞서가 시는 교수님 뒷모습을 지켜보며 여기저기에서 밤새 먹은 걸 토해내 자연생 태계에 적선하던 기억도 새롭다. 


내 기억에는 특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숙소 바깥 벽 에 흰 천 한 장을 내걸고 그 뒤로 파장이 긴 자외선(흔히 ‘black light’라 부 른다) 전구를 매달면 근방에 있는 곤충들이 속절없이 날아든다. 지금도 내 뇌리에는 흰 바탕일랑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글바글 들러붙어 있던 곤충 들의 모습이 거의 초현실적 영상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설악산이 나 지리산 깊은 산 속에서도 밤새도록 기다려 본들 큰 흰 천 위로 군데군데 점 몇 개가 찍힐 뿐이다. 그 많던 곤충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여름날 차를 몰고 어느 한적한 지역에 다녀온 이튿날 아침 차 앞 유리 가득 곤충들의 장 파열 흔적이 즐비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곤충 혈흔은 적당히 물을 뿌려 닦아 본들 잘 지워지지 않는다. 제법 힘줘 솔질을 해야 겨우 닦인 다. 하지만 이 짓 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리 머지 않은 예전에는 도심에서도 여름 밤 골목 어귀 가로등에 나방과 날파리가 연신 머리를 처박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보곤 했다. 이젠 까마득한 옛날 얘기처럼 들린다. 곤충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들의 이런 일화적(逸話的) 관찰을 뒷받침하는 논문이 나왔다. 국제학 술지 Biological Conservation(생물 보전) 2019년 4월호에 따르면, 앞으 로 20~30년내로 세계 곤충 종의 40%가 사라질 것이란다. 나비와 나방, 벌 목 곤충, 그리고 쇠똥구리가 특별히 위험하단다. 물속에서는 잠자리, 강도래, 날도래, 하루살이 등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곤충의 멸종 속도는 포유 류, 조류, 파충류 등 대표 척추동물의 멸종 속도보다 무려 여덟 배나 빠르다. 그 동안 우리는 덩치가 큰 동물들이 사라지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는데 알고 보니 작은 곤충들이 더 빠르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버드대 곤 충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것들(The little things that run the world)’이 사라지고 있다. 


이번 논문은 종다양성(richness) 못지않게 풍부도(abundance) 감소에 주목 했다. 곤충의 생물량(biomass)은 인간 전체 중량에 17배나 되는데 해마다 2.5% 씩 줄어들고 있다. 연구자들은 만일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100년 안에 지구에 서 곤충이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세번째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기이한 정적이 감돌았다. 예컨대 새들,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소리가 없는 봄이 찾아왔다.” 이 글에서 새를 곤충으 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상황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다만 먹이사슬의 더 하 부 단계로 내려갔을 뿐이다. 

DDT가 50 % 함유 된 농약 / 출처 Xanthis

카슨은 DDT를 비롯한 살충제 남용을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꼽았다. 곤충을 죽이려고 뿌린 살충제가 먹이사슬을 타고 오르며 곤충 여러 마리를 잡아먹은 물고 기나 새의 조직에 축적되는 바람에 엉뚱하게 그들이 먼저 죽어나가는 현상이 벌 어진 것이다. 이른바 생물 농축(bioaccumulation)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독성이 그리 강하지 않은 살충제를 뿌릴 경우에도 미량을 섭취한 곤충은 죽지 않아도 종종 피라미드 구도의 먹이사슬 상위권으로 오를수록 다량이 농축되어 결국 치사 효과를 나타낸다. 


곤충을 둘러싼 인과관계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살충제 농축과 같은 직접적 원인뿐 아니라 다른 간접적 원인들도 작용한다. 새들이 새끼를 기를 때에는 곤 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둥지에 앉아 어미새를 기다리는 새끼들은 필수 단백질을 곤충에서 얻는다. 기후 변화로 인해 벌어지는 ‘생태 엇박자(ecological mismatch)’가 이 인과관계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예년 보다 일찍 돌아온 철새들의 새끼가 부화했을 때 그 지역 곤충들의 생활사와 시기 적으로 어긋나 대거 번식에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새들의 번식에 곤충 단백질은 대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텃새의 경우에도 곤충의 생물량 감 소는 치명적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것들(The little things that run the world)이 사라지고 있다. / 곤충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

지구의 역사에는 다섯 차례 대절멸(mass extinction) 사건이 있었다. 지금 제6 의 대절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다 끝나고 나면 역대 최대 규모일 것으로 예 측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전의 대절멸에서는 모두 특정 동물군이 사라졌던 것 에 비해 이번 대절멸은 생산자인 식물의 몰락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곤 충의 몰락이 가세하면 더 확실하고 급격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Bug-free computer’는 오작동의 원인이 되는 오류(bug)가 없어 더할 수 없이 바람직하 지만, ‘bug-free spring’은 카슨이 경고한 ‘silent spring’의 재앙을 넘어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글|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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