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대학생 옥세린입니다. 저는 작년 7월 말, 제 생에 가장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각국의 뿌리와 새싹 대표들이 모여 영국 윈저성에서 열리는 국제 청년 리더십 이벤트에 참가한 것입니다. 이 행사는 세계 다양한 나라의 활동가들이 모여 서로의 활동에 대해 공유하고 머리를 맞대어 세계의 평화를 위한 해결책을 같이 모색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열심히 활동한 결과 생명다양성재단의 추천을 받아 감사하게도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고 뿌리와 새싹의 설립자이시자 저의 롤모델이신 제인구달 박사님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일주일 동안 보고 느낀 것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자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성인이 되어 홀로 떠나는 첫 여행이고, 그것도 비행기를 11시간이나 타고 아는 사람도 없는 타지로 간다는 것에 이상하게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는 제인구달 박사님의 ‘희망의 이유’를 다시 읽고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 ‘옥자’를 보았다. 유전자 조작 거대 돼지 옥자와 여자아이 미자의 우정, 또 인간의 탐욕을 그린 이 영화를 보며 식량부족, 기근, 육식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윈저성에서 할 활동들에 앞서 가질 태도를 다시 되짚었다. 기내식을 먹고 잠을 자다 깨니 영국 땅에 도착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고 입국 심사줄이 길어지는 바람에 9시가 넘어서 히드로 공항을 나오게 되었다. 늦은 시간이라 깜깜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밖은 짙은 하늘색으로 생각보다 환해서 놀랐다. 이렇게 나의 런던의 첫인상은 밤하늘 만큼이나 꽤 밝았다. 택시를 타니 기분 좋게 흘러나오는 Bruno Mars 의 ‘That’s what I like’ remix 를 들으며 30분 가량 이동하여 윈저성에 도착했다. 성 앞에 서 있는 가드들을 통과하고 마중나온 사람은 이 행사의 기획단 중 한 명이신 캐나다의 젠(Jen)이었다. 한국에서 2년 동안 교육업에 종사한 적인 있는 젠은 나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어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녀는 우리가 일주일동안 머물게 될 St. George’s House 로 나를 인도하여 나의 방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짐을 풀고 라운지로 내려오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리 도착해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고 모두와 가벼운 인사를 한 뒤 방으로 돌아와 긴 시간의 비행으로 피로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다음 날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8시에 식당에 모여 다 같이 식사를 하였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10분 정도 일찍 내려갔더니 식당에는 나 말고 아직 한 명 뿐이었다. 홍콩에서 온 알피(Alfie)였다. 알피는 동물과 환경에 관심이 많아 동물원에서도 일을 했었고 지금은 홍콩의 제인구달기관(Jane Goodall Institute HK)에서 학생들을 위한 환경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해변정화 활동으로 주운 쓰레기들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등 아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창의적인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알피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의 생명다양성재단에서 힘써주시는 여러 선생님들 생각도 많이 났다. 학생들을 상대하는 알피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가 했던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산 속에서 통유리로 된 학교 건물구조 때문에 끊임없이 새가 유리창에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에 문제점을 느끼고 친구들과 함께 뿌리와 새싹 소모임을 만들어 학교에 건의하고 보호필름을 붙인 것이었다. 알피는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더니 버드 스트라이크 또한 홍콩에서 심각한 문제라서 우리가 했던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자신의 학생들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머지 친구들도 식당에 모여 아침을 먹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중 저쪽 문으로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오고 있었다. 제인구달 박사님이셨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쯤에야 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방비상태에서 이렇게 갑자기! 제인구달 박사님께서 프로그램 내내 같이 하신다는 사실을 나는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쁨을 감주치 못하고 입을 틀어막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덤덤하게 그냥 제인구달 박사님께 아침인사를 건넸다.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제 일찍 도착해 저녁식사를 하며 구달박사님과 인사를 미리 나누었던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나도 용기를 내어서 구달박사님께 아침 인사를 건네고 빨리 구달 박사님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식사가 끝난 후에는 St. George’s House 옆에 위치한 Vicar’s Hall 에 모두 모여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이 곳은 셰익스피어가 예전에 글을 쓰던 곳으로 앞으로 우리의 모든 회의가 이루어질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둥글게 모여앉아 젠의 진행으로 캐나다 원주민의 환영 방식인 CREE Sharing Circle 을 통해 Talking Piece 막대기를 들고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소개에서도 말할 것이 정해져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소개하는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최근에 본 가장 아름다웠던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이름을 소개하며 구슬 옥(玉), 해 세(歲), 옥빛 린(璘)의 한자 뜻을 함께 소개했다. 또, 내 영어 이름과 한글 이름이 같길 바라셨던 어머니께서 당시 Celine Dion 이 부른 Titanic 의 OST 를 감명 깊게 들으셔서 Celine 이 되었다고 말했더니 어머님의 센스가 좋으시다며 많은 사람들이 칭찬했다. 두 번째로 최근에 본 아름다운 장면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본 영화 ‘옥자’의 한 장면을 꼽았다. 옥자가 미란도(Mirando)사에 잡혀갈 때 ‘동물해방전선ALF(Animal Liberation Front)’이 구해주는 장면에서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이야기 했는데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영화 ‘옥자’를 매우 감명 깊게 봤다고 공감을 해주었다. 그 중 미국 대표 아만다(Amanda)는 육식 반대 운동 모임을 주도하여 ‘옥자’가 모임 회원들이 필수적으로 봐야할 영화였다고 말하여 우리나라의 영화가 이렇게 세계적으로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느꼈다.
본격적인 토론 세션을 시작하기 전 구달박사님의 말씀이 있으셨다. “우리는 지구를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잠깐 빌리고 있는 것인데 마치 빼앗은 것 마냥 행동하는 인간들을 볼 때면 마음이 항상 아픕니다. 세상은 항상 살기 힘들었지만 문제 의식을 가지고 개선해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계가 발전해올 수 있었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해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말씀을 들은 후 구달 박사님께서 2014년에 한국에 방문하셨을 때 처음 뵀을 때처럼 주책맞게 눈물이 차올라 참느라고 혼이 났다. 하지만 이내 진행된 토론세션에 집중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룹을 지어 진행된 토론세션(Think Tank)의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KNOWLEDGE)
둘째,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가? 왜 우리가 신경 써야 하나? (COMPASSION)
셋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ACTION)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 평화, 환경보전, 기후변화 등과 같은 대 주제를 하루에 하나씩 나흘에 걸쳐 토론했다. 조별로 나누어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자의 나라에서 그 주제에 대한 어떠한 문제들이 존재하고 해결을 위한 방법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모색했다. 또,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어느 정도 마련된 나라가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토론세션을 통해 윈저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에는 모두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실천할 계획들(Action Plan)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여러 주제로 진행된 세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세션은 평화에 대한 세션이었다. 독일에서 온 미노바(Minowa) 난민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녹인 발표를 진행했다. 독일은 2013년부터 메르켈 총리가 난민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인종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미노바는 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친구들과 아랍어 캠프를 갔는데 거기에는 시리아 난민들도 있었다. 처음에 캠프에서 그들은 낯을 가리고 미노바가 먼저 다가가 챙겨주려고 했을 때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계속적인 대화를 통해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리아 인이 현재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되었다고 한다!(웃음) 이를 통해 난민에 대해서 미노바는 따로 신경써주며 부담을 주는 것 보다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발표를 마칠 즈음 글썽이는 미노바의 이야기를 듣고 나 또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머지 않은 통일을 준비하며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따로 미노바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환경보전 세션에서는 드디어 나도 준비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환경과 멸종위기 동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부터 제인구달 박사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 뿌리와 새싹 소모임을 만들어 고등학생 때는 고3이라는 입시를 앞둔 불안전안 상황과 학교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버드스트라이크를 막기 위해 결국엔 보호필름을 학교 유리창에 붙일 수 있게 된 것 까지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 자 한 자 말을 이어나갔다. 며칠간 대단한 업적을 이룬 활동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한 일들은 너무 작은 일들이 아닌가 의기소침해 있기도 했었지만 발표를 마친 후 악당들(Bad guys-반대했던 선생님들)과 싸워서 결국엔 이겨서 대단하다고 제인구달 박사님께서 던지신 유머와 버드세이버를 학교 창문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자신의 나라 소모임에게도 지도해야겠다고 말한 코디네이터들 덕에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고 가는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진 발표는 공교롭게도 벨기에의 조류 전문가 마틴의 칼새 프로젝트였다. 그녀는 멸종위기 종인 칼새를 너무도 사랑해서 철새인 칼새가 머무는 전세계의 경로를 따라다니며 그들을 보호하는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윈저성에 모인 국가들도 참여를 하도록 도모하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바로 앞서 새들을 보호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했던 나로서는 꼭 참여하겠다고 약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별명이 칼새 여인(Swift Lady)였던 그녀는 칼새에 대해 설명할 때 표정이 정말 해맑은 아이와 같아서 칼새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모든 토론 세션이 끝난 후 마지막 세션에서는 개인으로서, 혹은 의견이 비슷했던 사람들끼리 모여 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각자 나라로 돌아가 실천할 계획, 액션플랜(Action Plan)을 구성하고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대만의 리오, 캐나다의 사브리나, 아부다비의 케이트와 함께 버림 없는 11월(No Waste November)를 기획했다. 이미 ‘플라스틱 없는 7월’ 행사를 학우들과 같이 진행했던 케이트의 프로젝트를 확대하여 SNS를 활용한 전세계 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캠페인을 구상한 것이다. 우리의 이 프로젝트 외에도 여성 난민의 통합을 돕는 프로젝트, 플라스틱 쓰레기를 미술대학과 협력하여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켜 전시회를 여는 프로젝트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와 모두가 서로에게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모든 세션이 끝나고 나니 상투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뿌리와 새싹 활동가들과 함께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하지만 기분 좋은 믿음이 생겼고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이야기들을 보면 하루 종일 토론만 하는 것처럼 보여 지겨울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토론 세션은 하루에 약 세 시간 정도씩만 진행되고 중간에 티타임도 계속 있어서 여유롭게 이야기 하는 시간들이었다. 토론 세션이 끝나면 일반 관광객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성 내부 투어, 근위병 교대식부터 성 조지 예배당에서 예배에 매일 밤 성 앞 펍에서의 가벼운 맥주 한잔까지 지구촌의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인 자리라는 것을 잊을 만큼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날 밤에는 모두가 예쁘게 차려입고 뿌리와 새싹 관계자들과 후원자들 모두와 함께 Vicar’s Hall 에서 와인을 마시며 만찬을 즐겼다. 라운지에 돌아와서는 와인을 더 마시며 친구들과 다음 날 헤어지기 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 구달 박사님과 둥글게 앉아서 박사님께 궁금한 점, 혹은 프로그램을 마치며 얻은 것, 느낀 점 등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이때 두 나라로 갈라서있는 우리민족에 뿌리와 새싹의 평화의 정신을 전파하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나의 말에 박사님께서 북한에도 뿌리와 새싹 소모임이 존재하고 실제로 직접 지도하러 두 번이나 가보셨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남한의 대표와 북한의 대표가 윈저성 캠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이 프로그램 동안에는 구달박사님과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았는데 책에서만 늘 보던 박사님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은 아직까지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전에는 그저 딱딱한 과학자일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식당에서 소란스럽게 구는 사람들에게는 머리에 물을 뿌려서 벌을 주겠다는 장난을 하시고(실제로 다음 날 아침에는 모두가 샤워캡을 쓰고 나와 구달 박사님께서 머리에 물을 부어주셨다!) 굉장히 유머러스하셔서 박사님의 친근한 면모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제인구달 박사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장 크게 하고 왔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값졌던 것은 다양한 나라의 뿌리와 새싹 활동가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것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일주일 동안의 워크샵을 통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세상을 이롭게 할 프로젝트를 실현할 것, 또, 이 만남을 통해 생성된 네트워크를 이어갈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외쳤다. 뿌리와 새싹, 함께이기에 할 수 있습니다!(Roots N Shoots, together we can!)
옥세린(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