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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류 May 31. 2024

박숙현 <Spring>

Spring과 a spring

Spring과 a spring

 

Happiness in your recollection doesn’t disappear.
It becomes a spring, a stream and the sea.
As it was in the beginning, is now and will be tomorrow.
_Lucy Montgomery 캐나다 소설가

기억 속에 남은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쁨은 샘이었다가 시내가 되고 바다가 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내일도 그럴 것이다.


Spring 박숙현 (55x55cm)2017 한지,안료,먹                                

Spring은 봄이다. Lucy Montgomery의 아름다운 명언 속에서의 spring은 a를 데리고 ‘샘’이다.

그림을 그리던 내성적인 소녀의 취미는 미술대회를 알리는 신문을 오려 붙여 두고 엄마 아빠에게 함께 갈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조용한 사람들의 묵직한 한마디는 청중으로 하여금 그 일이 큰 무엇이란 것을 일깨우는 화법이다. 나는 어린 시절 그 화법을 써 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러한 화법은 일상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10년 넘게 하고 있는 강의와 강연을 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강약을 활용한 음의 높낮이 소리의 크기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부모님께 중시 여기셨던 것들이 가족 여행과 독서, 미술관에 함께 가는 것이었다. 늘 삼 남매와 함께 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날 미술대회는 웬일인지 아버지와 나의 둘만의 시간이었다. 어색함이 계속되어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께 말을 많이 걸지 않았을까 예상해 보지만 그때의 나는 내성적이라 말을 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원래 그런 아이라 편했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때를 존중받던 시절도 있었다. 조용히 화구를 챙겨 이젤을 펼치고 대회에 참가한 몇 시간을 아버지는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미술대회에 심사위원분과 아시던 사이라며 인사한 기억, 이야기 나누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걸 그리는 건 어떠니 저건 어떠니 소리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내 생각의 그림과 일치하지 못해 속상함을 가졌지만 그때의 내성적인 나는 그 이야기를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다.


대회를 마치고 아버지는 밝은 황토색과 노르스름한 조명이 있던 일식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요리사 분이 접시에 한점 한점 올려 주시던 초밥. 어릴 때부터 입이 짧던 내가 남기지 않고 잘 먹던 음식이어서 데리고 가신 걸까? 격식이 갖춰진 곳이었고, 언니 동생을 두고 외동처럼 혼자 먹는 비밀 식사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시간을 선물해 주실 줄 아는 '멋'이 있는 분이다.

교토에 방문할 때마다 12만 6천 명의 코와 귀가 잘린 조선 백성의 아픈 귀무덤을 말없이 둘러보시며 마음속으로 '한국의 물건을 한국으로 가지고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멋'을 지닌 사람.

 

조선 백성 12만6천여명의 코와 귀의 귀무덤 Mimizuka, 교토

강연을 위한 자료 속에 Lucy Montgomery의 위 글귀가 있었는데, 영어 강연 하루 전날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아버지는 나를 그림을 그린 작가와의 식사자리로 대우해 주신 것이란 걸 듣게 되었다. 나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수십 년이 지나 알게 된 아버지의 마음을 듣고 엉엉 울었다.

아빠와 처음 단둘이 그림대회를 나간날의 사진. 아버지는 카메라를 늘 소지하고 다니시던 분이셨다.

다소 어색했지만 행복했던 나와 아버지의 '처음의 시간'이었다. 그 처음의 시간은 Lucy Montgomery의 ‘It becomes a spring, a stream and the sea. 그 기쁨은 샘이었다가 시내가 되고 바다가 된다.’ 그 샘의 ‘a spring’이었다. 학부모님들 상담에서 늘 1:1 한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강조한다. (아이가 둘 일경우, 양육자 1A: 아이 1A, 양육자 1B:아이 1B 이렇게 따로 시간을 보내고 전체 가족시간을 갖는다. 양육자가 1명일 경우도 꼭 따로 A, B 아이와 1:1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중산층 지인 부부의 교육에서 한 양육자 대 한 아이의 시간을 주 1회 최저 3시간으로 따로 가지의 긍정적인 교육 효과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꿈이 없다는 10대 학생들의 대답을 들을 때에는 내 눈 옆으로 물음표와 느낌표가 백 개 떠오른다. 꿈과 목표가 없는 삶이 얼마나 재미가 없을지, ‘그저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3개월의 번아웃에서 나도 체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매해 늘 그렇듯 봄이 되면 개나리의 청량한 노란색을 기다리며 기쁨을 만끽한다. 나의 인생에 있어 10대 중반부터 말미까지 6년의 세월을 지나고 나서 다시 나의 미래 직업을 위해서 과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나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언가를 채워 나갔다.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이 설령 ‘허튼짓’이라고 냉대받더라도 나는 그것을 가치 있는 시간으로 대한다.


나는 늘 그림과 그 외 예술 분야를 사랑하고, 어른이 되어 홀로 전시회를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며, 나의 커리어를 남편을 따라간 어느 장소 든 상관 않고 다른 새로운 길로 파생해 나가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나보다 더 큰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인문학을 사랑하고 다국어 하는 영어 교육자’라는 나에 대한 정의를 확립해 나갔고, 이 화폭의 봄처럼 나의 겨울을 즐겁게 보내는 중이다. 나의 또 다른 봄을 위해서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계속된다. 놀며 쉬며 나를 공부해 나가는 시간. 이 얼마나 행복 한 가. 고통을 즐겨라 라는 슬로건은 이제 나에게 행복을 제대로 즐겨라 라는 말로 대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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