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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vine Kel May 31. 2024

오퀴스트 로댕 <다나이드; La Danaïd>,1889

父生我身(부생아신)母鞠吾身(모국 오신)


< 다나이드 > 로뎅

父生我身(부생아신) 하시고 母鞠吾身(모국 오신)하시니


아버지 나의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나의 몸을 기르셨으니..

웬일인지 아직도 여성의 나체를 보여주는 미술품 앞에 서면 늘 나는 사자소학의 첫 문장을 떠올리며, 서당에 앉아 있는 11살의 학생이 된다. 나체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아마도 국민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아닐까 싶다.

첫째 셋째와 다르게 학급장에 나서는 것이 불편한 둘째를 부모님은 꽤나 걱정하셨다. 당시, 어디를 가나 주목받던 수려한 외모에 성품마저 순한 첫째 아래 둘째는 판이하게 다른 기질과 평균적인 외모의 소녀였다. 나는 스스로를 나름 귀엽다고 여겼지만, 주위 어른들과 언니 친구들로부터 비교하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외모 언급이 무례하다는 것을 모르는, 지금까지도 ‘살쪘어?’라고 인사 치례로 하는 한국사회에서, 특히 자매를 맡아 수업하게 될 때 늘 부모님 상담에 넣는 하나의 큰 주제이기도 하다. 둘의 장점을 각기 부각하고 따로 보아야 하며, 어떤 부분이던 우위로 나누지 않는다는 부분을 꼭 당부한다.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과 앞으로 성장하며 그려갈 세계관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걸 그저 예민해서라고 가벼이 보는 한국 문화 속에 커왔기에.


대부를 즐겨보던 잔다르크

같은 부모 밑에 양육되어 왔는데 왜 그리 다르게 반응하는가?

그때 당시라면 거의 그랬으려나 싶다. 체벌이 조금 있던 부모님 밑에서 나는 아버지의 회초리가 결코 무섭지 않았던 땡고추 같이 매운 아이였다. 상대적으로 심약하고 잘 울던 언니는 아빠의 회초리가 보이면 황새같이 긴 다리로 방구석을 방정맞게 뛰어다니며 큰일이 난 것처럼 잘못했다고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영 폼이 나지 않던 언니의 도망가던 모습을 나에게 대입하기란 죽기보다 싫어서 ‘어차피 혼날 것 우아한 기품이 훼손되지 않게 멋지게 혼나보자.’라는 마음으로 “손바닥 대!”라고 하실 때 영화 대부( <Mario Puzo's The Godfather>,1973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영화, 옆에서 늘 새벽까지 따라 보기도 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승낙받기 위한 그날 밤도 대부를 같이 보았다.)에 나오는 멋진 조폭이 시가를 물고 총을 꺼내듯 촥 하고 아비 앞에 펼쳐 보였다.

그날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으셨다.

성인이 되고 어렴풋이 들은 정보로는 두려워하셨단다. 아버지 기준으로 잘못을 하여 그러지 않도록 겁만 주려 했는데 손바닥을 척 꺼내 들고 때려볼 테면 해보란 식으로 이리 아비를 혼란스럽게 한단 말인가? 그 일이 있은 후, 아버지는 어머니와 긴 이야기 끝에 적절할 것 같던 교육기관을 찾으신 듯했다. 마음이 불편할 때 입을 좀처럼 열지 않는 둘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읊는 것을 훈련시키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를 방학기간 동안 보내기로 결심하신다. 지리산 청학동. 그곳은 왠지 아비보다 더 무서운, 무언가가 사는 곳 같았다.


4학년 여름 방학부터 총 3회 정도 보내졌는데, 소시지 반찬 없는 훈장마을 생활이 즐거울 리 없을 것 같았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늘 길고도 스산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가는 길에 늘 소리 없이 우셨지만, 당시 승승장구해서 성공 궤도에 올랐던 젊은 혈기의 아버지는 만만치 않은 막내딸(딸 중 막내, 아래로 대를 이을 남동생이 존재한다.)을 둘째 딸 맞춤형 교육 성지로 그저 도착하기 위함이 컸다. 부모님의 말씀을 고분고분 잘 따라가던 첫째 셋째와 다른 둘째를 연구 중이셨음에 틀림없었다. 지금도 그런 듯 하지만, 다시 돌아봐도 나는 아버지에게 난이도 있는 미션을 자주 드린 느낌이다. 시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연락두절하고 사라진 날도 있었다. 지금 보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짓을 어린 나는 자주 했었다. 큰 일에는 오히려 화내시지 않고 침묵하셨다. 지금 보면 그저 자식일에는 솥뚜껑 보고 놀란 새가슴인 아버지 이셨을 뿐인데….


지루할 것 같았던 그곳에서 배운 것들은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손바닥 보다 더 큰 잠자리를 직접 보며 자연의 신비를 배웠고, 가지고 온 몇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으로 보게 되는 새로움도 발견하였다. 사자소학을 통해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어, 중국어를 부담 없이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서 진취적으로 발표를 하며, 나의 생각을 말할 줄 알게 되었다.


불도저

 

태어나 처음으로 대자연의 무서움을 지리산 청학동을 가는 길에 보았다.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커다란 녹색 쓰레기통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시작으로, 나무가 뿌리 채 뽑혀 지리산 중턱 도로길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비는 불도저같이 모두 뚫고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날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실 때마다, 나는 마치 즐겁게 다녀온 듯 맞장구쳐 드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아비 앞에서 절대 울지 않고 강한 아비에게 굴복되고 싶지 않은 강직한 잔다르크로 남고픈 마음에서다.

나의 형제자매는 늘 “도대체 뭘 위해서 그런 거? 신기해. 지혜로울 순 없어?”라고 해왔으니. 그러게 뭘 위해서 그렇게 강한 아비를 내 방식대로 이겨먹어 보겠다고 한 걸까. 나라는 인간의 나름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던 것 걸로 포장해 본다.


아버지의 산은 나에게 정말 높아 현기증이 자주 났다. 아무리 유명하고 한마디면 나를 제압할만한 대단한 그 누군가의 앞에서도 긴장하거나 나의 이야기를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 높은 산과 같은 아비가 나를 혼낼 때, 나는 좀처럼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내 온 정신이 멘틀 저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첫 회사였던 미국계 대기업에서 매주 월요일 미국인 부사장, 외국 임원 분들 앞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그들의 모국어인 영어로 발표하는 시간에도 나는 별로 떨지 않았다. 물론 자료나 디자인팀의 관리 능력을 대표해서 지적받는 것만 신경이 온통 갈 뿐이었다. 엄청나게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이 오히려 나는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현재는 나이도 차고 사회화가 되었으므로 면전에서 180도로 뒤로 꺾이며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일은 늘 장담하면 안 되는 법이다.


여성 나체를 아름다움으로 보는 미술에 대한 불편함


잔다르크는 어린 시절부터 억압된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찾아가는 척도와도 같았다. 마녀로 몰려 화형이 치러지며 생을 마감한 잔다르크의 형상이 눈앞에서 자꾸만 어른거리고 했고, 같은 여성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처절하게 분노하였다.

언젠가 여인의 나체를 그린 1호짜리 화폭을 보며, 부모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왜 여성의 누드화가 미술의 주제가 되는 것인지. 좀처럼 말이 없던 그 시절의 내가 ‘나체, 누드화’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물어볼 수 있었던 큰 용기도 필요했겠으나, 적대적인 감정이 더 중요하였던 듯하다. 여성의 몸이야 말로 아름다운 미술의 시각일 수 있다 하셨던가. 그런 답변을 받고도 나쁜 감정이 해소되진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인이 된 지금, 소방관 선생님들의 근육질 몸을 화보로 썼다는 사진을 보면서 감탄한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로뎅은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한 예술가이나, 그의 불편한 진실 속에서 자신을 공부해갈 시간도 갖지 못한 나이, 열아홉이란 나이로 처절하고 비정상적으로 매료하고 매료 당해 이별 이후 자의식까지 소멸시켜 버린 까미유를 이 작품에서 느꼈고 분노감에 휩싸였다. 차가운 생모로 인해 원초적인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로뎅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한 부분이 같은 여성으로서 딸아이에게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였는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모성애를 제대로 주었더라면 그녀는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선택을 할 확률이 적었을 것 같다. 그런 엄마를 두더라도 왜 까미유 자신을 한 단계 멀찍이 올라가 바라보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였을까. 그녀가 아까워 미칠 지경이다. 사후에 그녀를 인터뷰할 때, 로뎅의 뮤즈로 행복했다고 한다면 나는 이 글을 후회하며 사과하고 불 태울 테지만….


다시 보는 生我身(부생아신) 母鞠吾身(모국 오신)


지리산 청학동에서 배웠던 사자소학(四字少學: 아이가 배워야 할 생활규범과 어른공경 법 등 모든 귀절이 넉자로 정리된 글)의 첫 문장이다.

‘아버지 나의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나의 몸을 기르셨으니….’

기르는 시간에 비하자면 낳는 건 찰나의 고통이다.

이 얼마나 힘든 것을 어머니가 행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나의 이러한 성향이 한국 남자와의 결혼에서 많이 부딪혔던 신혼 때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그저 물에 물 타고 술에 술 탄 듯 살아감이 편안하다는 이유로 살아가는 듯 하지만 가끔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화가 목구멍을 태우고 분출되어 내 머리 뚜껑이 폭발해, 마치 2015년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The Secret Service> 마지막 장면과 같이 음악에 맞춰 팡팡 터져버리는 머리통들처럼 블랙코미디 하는 장면을 그려낸다.


괜찮다! 더 잘살아 버리면 그만이다. 너를 던지면서 까지 이루려는 사랑은 정상적이지 않아. 이건 남녀가 뒤바뀌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너의 재능을 더 내어놓지 못하게 되어, 통탄스럽다. <성숙의 시대> 1899년 작품이 아무리 유명한 들 작품세계를 뻗어 나가 성숙되고 치유받았더라면 하고 마음속으로 통곡해 본다. 가슴으로 운 나에게 그녀는 훝날 어떤 답변을 건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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