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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류 May 31. 2024

블라드미르 쿠쉬 <발견의 일기>

나를 떠나갈 나의 이야기들



블라드미르 쿠쉬 Vladimir Kush <발견의 일기>


담담하게 써 내려가 나를 떠나갈 나의 이야기들


기분이 묘하다.

이 그림을 보며 새벽시간 랩탑 앞에 앉은 내게 묵직한 무언가로 이내 멈춰졌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음소거된 몇 분을 누린다.

지금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들로만 보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구나.


남들과 비교해 볼 때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나, 나는 나의 인생만 살아봐서 나의 고통이 가장 큰 우물 안 개구리이다. 나는 나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10대에 보내게 되었는데, 그때 그 일들이 현재 까지도 가끔은 튀어나와 나를 힘들게 따라다닌다. 많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로 인해 가지처럼 뻗은 제2의 결핍들은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고,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가끔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는 이상한 경험을 계속해오고 있다.


30대 초반 어느 날, 이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한 나는 그 이야기들을 글로 적기 시작했다. 글을 적으며 양 볼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 며칠 밤의 공기를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가여워라… 너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울고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단 말인가… 지겹게 길고 축축한 눈물을 흘리던 나의 모습을 옆에서 보며 이제는 더 이상 지겹게 길고 축축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언니가 되었네.

30대 초반, 글을 밤새 적으며 울던 내가 앉아있던 책상

책상 정리 하시며 내 일기장을 보는 이도 없는 나의 집에서, 그 글을 나 혼자 알고 내보이지 위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게 버렸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저 화폭의 새처럼 나의 아픔과 고민을 날개 짓 하며 날려 보내던 그날의 그 밤이다.



기억 속 또 다른 기억


이 글을 적다 보니 생각나는 장면은 10대 당시 나의 고민을 남들이 볼 수 없는 필체로 적어서 녹색의 큰 쓰레기통에 버리던, 볼 수 있는 글씨체로 그냥 누군가가 나의 고민을 봐주기를 바라며, 우표 없는 편지를 우체통에 보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의 한 성인으로 커서, 직업도 가지고 살아보니, 우표 없는 그 편지를 발견하고 갸우뚱하셨을 우체부 직원께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넣어두려 할 때 치유되지 않고, 밖으로 내 보일 때 치유가 되기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의 나에게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본능인가 보다.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하는 신생아들의 행동들과 닮았다.


나의 평이하지 않은 10대의 길이 어떤 이에게 위로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또한 나의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함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마운 비평가


나는, 나 자신은 그래서,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책으로 나의 고뇌와 기쁨을 나누고,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우표 없는 편지를 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하늘의 부름에 응하기 전까지 내가 써 내려가야 할 이유가 있기에 이런 인생을 주신 게 아닐까 라는 용기 있는 마음을 작년부터 가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 시기 나를 구원해 준 도서관에 무언가를 해주기 위한 나의 계획을 올해부터 실천 중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비평가라는 선배로부터 나의 인생 이야기를 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기숙사 근처 연구실 건물 사이로 제법 작지만은 않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 벤치에 앉아 나의 이야기에 면박 줄지도 모르는 비평가 앞에서 겁 없이 조곤조곤 이야기했었다. 선배가 조용히 이야기를 끊지 않고 다 듣더니, 너는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기억난다. 나의 필력이 아니라 나의 입에서 나온 포부와 힘 있어 보이던 두 눈에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말했었다. 굳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보단 너를 위해서 써보란 말을 마음에 담고 있다. 그 선배 이름도 얼굴도 뿌옇게 기억나지 않지만, 깐깐하고 비평을 즐겨하던 사람이었기에 이미지에 맞지 않는 따듯한 한마디라 다소 놀라기도 하였고, 그래서 아직 기억하고 있나 보다.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의 말을 나눌 때 비평도 비난으로 들리지 않는 법인가 보다.



볕 들 날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찾으리


나의 책을 통해 누군가는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인생이 이런 이유로 내 삶의 이유를 늘 알고자 했는데 이것이 아니면 나의 존재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나아가 보려 한다.


잔잔한 파도 위에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나아가는 배를 보니, 나의 배는 폭풍우를 만나 심하게 휘청이다 간신히 살아남아 잔잔한 바다도 만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한 장 한 장 날개가 되어 다 날아가 버리면, 나의 고민도 고뇌도 모두 사라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나를 꿈꾸는 40대로 접어들게 한다. 가슴이 뜨거워져서 이럴 때마다 심장이 녹는듯하고 긴장감인지 모를 몇 분은 쉬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 그걸 다 이루고 나면 뭐가 있을지는 그다음으로 미룬다.


햇볕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종착지는 어느 누군가에게 한줄기의 빛과 같을 지도 모를 일이고, ‘나도 당신과 같이 그 길을 걸어왔어요. 하지만 살아남아 열심히 살아왔어요.’라는 것을 나의 언어로 내 보인다면, 그 지지만으로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지금의 나는 나의 편이 되어주는 조용한 남편과 매일 나를 용서해 주는 아들과 함께 소라를 주워 귀에 가져다 대고 바닷소리같이 들린다며 웃을 줄 아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마음이 고되 머리와 몸이 따로 있는 느낌을 자주 받던 10대의 내가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지금의 나를 꿈꾸며 지치지 않고 와주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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