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야 아는 것

광목 이불 사랑

by 유승희

광목 이불


신혼살림을 막 시작했을 때 일이다. 엄마는 백화점 한 이불 매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엄마는 광목 침구를 권했다. 누룽지같이 누런색의 이불을 보여주면서 써보니 너무 좋다고 했다. 직접 사용해 보면 안단다. 해본 사람만이 안다는 그것. 극찬의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광목에 대한 애정이 없던 당시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텔에서 쓰는 침구, 화려한 색상이 들어간 침구가 갖고 싶었나 보다. 9년 동안 살림을 해보니 결국 쓰임이 편하고 질 좋은 것만 남더라. 광목이 그중 하나다.


광목 이불은 예상보다 가격대가 높았다. 선한 우리 엄마가 사기당하는 건 아닐까. 매장 사장님이 광목을 사용해 본 사람은 계속 찾는다고 하셨다. 강매하시는 건 아닐까. 만감이 교차했다. '엄마! 너무 비싼데?'라는 얼굴로 엄마를 보니 엄마가 웃었다. "엄마가 사줄께. 너도 써보면 좋다고 할 거야."


친정엄마 앞에서 자식의 "괜찮아. 안 사줘도 돼"는 힘이 없다. 며칠 뒤, 광목 이불이 신혼집에 도착했다. 다시 봐도 누룽지 색깔의 다소 촌스러운 이불이었다. "오. 광목 이불이네." 예쁘고 광택 있는 이불이 올려져 있어야 할 것만 같다. 환상이 가득한 신혼 침대에 누런 광목 이불이라니. 표정이 밝지 않자, 남편은 좋은 거라며 장모님 말을 거듭 거들었다.


‘형광, 표백 등의 처리를 하지 않은 자연 가공한 원단입니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짠 후 삶는 작업을 반복한 원단입니다. 엷은 누런색을 띠는 것이 특징입니다. 흡수성과 보온성이 풍부하고 천연섬유이기 때문에, 몸에 닿는 느낌 역시 좋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목(쇼핑 용어사전)에서 발췌


첫인상


첫인상에 모든 걸 알 수 있을까. 광목 이불을 처음 만난 날도 진가를 알지 못해 외면했던 순간도 인생은 반전의 묘미가 재밌다. 때때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첫인상과 다르다고 말하곤 한다. 차갑고 다가가기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또한 나였지만 남을 의식했던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조금은 더 조급했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라고 되묻고 싶지만, 학생들을 관리하며 수업을 끌어 나가는 일을 하면서 원래의 성격을 직업에서의 성격이 뒤덮은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성품이 좋아 보여 친하게 지내고프다가 배려심 없는 행동과 말을 들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몇 번이나 이해하려 애써본다. 애쓰는 것이 버거워질 때면 거리 두는 것이 옳다고 결론짓는다. 다름은 받아들이겠지만 배려 없는 건 못 견디겠다. 세상살이 버거운 일 천지인데 사람 관계에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 그 시간에 공부하고 책 읽고 운동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취향


조금씩 돈을 모아 침구를 광목으로 바꾸었다. 광목을 이곳저곳에서 사보기도 했다. 조금 더 저렴한 곳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품질은 달랐다. 돌아 돌아 광목 이불을 접했던 곳에서 사게 되었다. 방직 기술이 다른 건지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드는 건지는 자세히 비교할 순 없어도 이미 신뢰를 받은 곳의 품질은 역시 다르다. 브랜드의 가치는 직접 써보고 자신에게 잘 맞아야 한다. 옷을 입고 세탁하고 다시 입었을 때 변함없는 건 바로 원단의 차이였다. 침구도 마찬가지다. 조금 값을 더 주고서라도 몇 년을 쓴다고 생각하면 좋은 값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세 곳에서만 옷을 사 입는다. 그중 한 브랜드는 줄곧 시즌마다 옷을 살 정도로 좋아한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크게 성장해서 해외 여러 곳에서 잘 팔리고 있다. 옷을 이곳저곳에서 매입해 파는 곳이 아니라 직접 디자인하고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사장 덕분에 좋은 옷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조물이 끝없이 줄지어 나오는 것도 신기하다. 비슷한 취향이기 때문에 선택하고픈 옷도 많다. 10대 20대까지는 오히려 옷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 엄마가 되고 나를 위한 시간이 고파질 때쯤이었을까. 옷에 관심이 갔다. 남들 눈이 아닌 내 눈에 이쁜 내가 좋았다. 아이를 모유 수유를 해서 키웠고 늘 아이 맞춤형 옷을 입다가 옷을 사 입으니 기분 전환이 되었다. 입고픈 옷인데 어울리지 않아도 나는 계속 시도해 본다. 계속 입어보다 보면 어느새 그 옷과 닮아간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은 주위의 영향을 받는 유기체다. 얼마나 신기한지. 나는 나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본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때론 이기적으로 보일 이 문장이 요즘은 달라 보인다. 멋진 당당함이 누군가에게는 잘난 척이라며 조롱받을 수도 있고, 상대를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도 답답하다며 멸시받을 수 있다. 결국 타인을 의식하며 살다 되면 ‘나다움’을 포기하게 되고, 타인의 생각에 좌지우지된다. 나인 채로 살아도 나를 알아주는 소중한 이들이 모인다. 광목이 누런 누룽지 같은 색깔이라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내가 내 모든 잠옷이 광목이 될 줄이야. 나조차도 몰랐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는 좋은 것은 결국 알아봐 주는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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