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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May 12. 2019

TV/블로그에는 안 나오는 칸쿤의  가로수길

다이빙 여행 | 칸쿤-12

지난번 처음 칸쿤에 왔을 때는 주변에 너무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심심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칸쿤" 하면 남들은 뜨는 허니문 여행지로 설레는 반면 나는 '아... 그 아무것도 없던 동네...' 하고 도대체 나는 어디를 다녀왔었던 건지 기억을 부정하고 싶었더랬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하자, 이미 먼저 와서 동네를 둘러봤던 일행들이 과장을 얼마나 보탰는지, 세상 처음 보는 거리를 보게 될 거라고 허풍을 떤다.


저녁을 먹은 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거리는 플라야 델 카르멘의 5th Avenue로,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곳이 번화한 거리의 끝 지점이다. 그래서 눈 앞으로 펼쳐진 불빛 가득한 거리가 반대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 있다.


시골 풍경만 보다가 이런 번화가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지


인상적인 점이 여러 개 있었는데, 우선 이 거리는 깨끗하고 반듯하다. 관광지라서 그런 건지, 길도 넓고 바닥이나 도로 정비도 잘 되어 있는데 깨끗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여느 번화한 상가의 거리보다 훨씬 더 깨끗하다. 게다가 차도가 아니라 보행자 도로라 걸어 다니면서 주변을 구경하기에 더없이 쾌적하다. 관광지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소매치기나 노숙인 또는 그런 비슷한 뒷골목의 느낌조차도 없어서 불안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볼거리가 많다. 물론 대부분이 음식점과 바, 기념품 가게 등 관광지에 어울리는 가게들이었지만, 장식이나 조명, 분위기가 좋다. 특히나 한국과 멕시코가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이곳의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관광지의 거리와는 사뭇 달라서 우리에겐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여기에 머무는 동안 세노테에 다이빙 하러 온 한국인들을 잠시 본 것 외에는 거리에서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도 거의 본 적이 없어 우리에겐 확실히 먼 타지에 와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다고 우리가 위축이 된다든가, 몸을 사려야 한다든가 하는 분위기도 전혀 없어서 기분은 편안하고 그렇다 보니 재미는 더 배가되는 것 같다.


나에겐 완전히 새로운 거리라 정신을 못 차리며 걷다가 "와! 여기 엄청 기네요!"라고 했더니 일행들 모두 입을 모아 아직 절반도 안 왔다고, 끝까지 갔다가는 오늘 집에 못 돌아온다고 큰소리를 친다. 하, 이거 또 촌놈 서울 구경 왔다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는 사촌 형제들 느낌이네.


깨끗함과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재밌고 편하고 안전한 플라야 델 카르멘의 5번가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이 길의 총길이는 대략 2km 정도 된다. 우리 숙소에서 2km 거리를 지나 반대편의 끝에는 고속버스 터미널과 코즈멜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페리 터미널, 그리고 큰 쇼핑몰 등이 있다.


빨간 줄로 그어둔 곳이 5번가. 구글 스트리트뷰는 개발되기 전 사진들이 많은 것 같다.
거리의 끝쯤에서 만난 페리 터미널의 풍경. 때마침 (뭔지는 모르겠는) 공연을 하고 있었다.


길의 끝까지 가 보고 돌아올 때는 다른 곳을 걸어볼까? 하여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 봤다. 오오, 이런! 여기는 지금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아까의 휘황찬란한 거리와는 너무 다르군. 가게는커녕 조명도, 사람도 드문드문한 것이, 이 거리를 보고 놀라기 전 막연히 두려워하던 멕시코의 뒷골목 느낌의 거리이다. 한두 블록을 좀 걸어가다가 걱정도 되고 재미도 없고 하여 다시 아까의 신나는 거리로 돌아왔다.


한 골목 건너의 기념품 가게. 초라한 듯 소박하지만 나름의 운치는 있다.
한 골목 건너왔다고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가...


이 거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 인터넷에는 어떻게 나와 있나 검색을 해 봤지만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요즘 뜨는 허니문 성지라고는 하지만 역시 칸쿤은 멀어서 그런지 다른 관광지에 비해서는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도 에메랄드빛의 캐리비언이 너무 예쁘다거나 (이쁘기는 제주도가 훨씬 이쁜데!) 올 인클루시브의 호텔 이야기 아니면 코코봉고(유명한 나이트클럽) 얘기들이 많을 뿐이다. 세노테나 세노테를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 관련 포스팅도 많기는 하지만, 이 매력적인 거리에 대한 얘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에는 조금씩 보이기는 하지만)


칸쿤이 보고 즐길 것이 상당히 많은 곳임에도, 우리에겐 먼 곳이라 그런지 비교적 국한된 (호텔 위주의 신혼여행) 여행 정보만 양산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에 다른 사람들이 검증한 곳을 답습하는 경향도 커서 더 그런 것 같다. 모처럼 가는 여행에 대한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이해한다고는 하더라도, 이런 매력적인 곳을 놓치고 간다는 건 크나큰 손실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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