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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l 30. 2016

광명 찾아 역주행

해외여행이란 게 만만한 게 아니구나. 2007년 9월

내 왼 손목의 Swatch Fun Scuba는 3시가 넘어 있었지만,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2시가 아닌가!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얘졌다. 이럴 수가! 내 손목시계는 한국 시간이었고,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늦었다. 여행 초보이다 보니 시차를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거다. 


기사회생이라 해야 하나, 아니 과연 회생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컸지만 어쨌든 기적적으로(?) 우리에게 1시간이 더 생겨 버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능 시험 볼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시험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또 보고 또 보자는 심정으로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를 애매한 흥분을 안고 다시 발을 옮겼다.


그런데, 울상을 하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거리는 얼굴 하얀 어린 관광객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는지, 교통 통제를 하던 나이 지긋한 제복 입은 경비원이 우리를 불렀다. 그러더니 내가 들고 있던 모퉁이가 땀에 젖어 구겨진 리조트 바우처를 잠깐 보자는 것이다. 


물끄러미 보고 있던 그 경비원은 자기가 뭔가를 알 것 같다면서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라고 그러더니 리조트 바우처를 들고 어디론가 가더니 모퉁이를 돌아 시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딜 가려는 것일까? 그리고 리조트 바우처는 그것 하나뿐인데. 그것마저 없으면 그냥 마닐라에서 일주일을 보내다 가야 할 판이었다. 기다리는 1분 2분이 나에겐 너무 길게 느껴졌다.


다시 그 경비원이 나타났다. 성큼성큼 뛰어오는 저 발걸음이 분명 나에게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려는 모양임에 틀림없으렷다. 


그랬다. 그 경비원의 첫마디가 "내가 생각했던 게 맞다"였다. 제발 그 말이 맞기를, 암흑 속의 빛이 되기를. 그러더니 옆에 선 택시를 불러 본인보다 나이가 30살은 어려 보이는 젊은 택시 기사에게 뭔가를 설명했다. 마냥 즐겁기만 해 보이는 젊은 택시 기사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정말로 알아듣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쨌든 나이 많은, 아까보다 더 푸근하고 친절해 보이는 경비원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떠났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체로. 


우리는 여전히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택시 기사에게 어디 가는지 아느냐고 연신 물어봤고, 택시 기사는 자기가 안다고, 걱정 말라고 하며 신나게 질주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속도를 늦춰 길가에 차를 잠시 세우더니 차를 내려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물어본다. 아니, 다 안다고 그랬잖은가. 불안하게 그러지 말라고. 초조한 마음으로 택시에서 기다리기를 잠시, 택시 기사가 다시 웃으며 운전석에 앉더니 뭐라 뭐라 말을 한다. 그래서 잘 돼 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차에, 택시는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했다. 언제까지 더 불안해야 할까. 유턴을 한 반대 차선은 지금까지 온 길과는 달리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제대로 방향을 잡은 지도 의문스러운데 앞길은 온통 차들이라니. 나의 손목시계는 3시 40분. 그러니까 비행기가 뜬다는 필리핀의 오후 3시까지는 2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순간 호기로운 젊은 택시 기사는 갑자기 차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더니 비어있는 반대 차선으로 역주행을 해 버린다. 이건 뭐 드라마를 찍는 것도 아니고, 어째도 좋으니 제발 마지막 남은 희망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그리 멀리 가지 않아 택시는 좌회전을 하며 좁은 길에 들어섰다. 그러더니 택시 기사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바우처의 맨 위에 그려져 있는 리조트의 로고와 같은 그림의 간판이 보였다. 그 순간 온 세상이 환해졌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웃고 있는 택시 기사의 치아까지도 환해 보였다. 어쩌면 당연히 와 있어야 할 이곳을 우리는 어찌 그리 힘들게, 도저히 오지 못할 것처럼 헤매었는지, 우리가 여기 도착한 것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에 별로 많이 가지고 있지도 않던 필리핀 페소를 털어 두둑이 택시비를 주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리조트 간판이 걸린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는 직원에게 바우처를 주었다. 제발 더 이상의 절망이 없기를. 직원은 잠시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더니, 곧 비행기 탑승 준비를 할 테니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늦지 않게 와야 할 곳에 도착한 것이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온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그렇지만 이제는 천장에서 돌고 있는 선풍기 바람도 충분히 시원하고, 직원이 테이블로 가져다준 열대과일 주스도 더없이 상쾌하다. 이제 와서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에게 새 빛의 길을 열어주었던 인자하신 표정의 경비원과 기념사진이라도 찍었어야 했다. 반짝이는 치아를 보여준 택시 기사와도.


폭풍 같던 여행의 시작을 겨우 극복하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갈아타야 하는 비행기는 국제선이니, 국내선이니 하는 비행기가 아니고,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전용기였다. 필리핀은 섬이 많아서 그런지 사설 경비행기를 많이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겨우 찾은 이 곳은 마닐라 공항의 옆에 위치한 사설 경비행기 전용의 비행장이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에 대한 개념이란 게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제자리를 찾아왔으니, 과정은 비록 힘들었지만 재밌는 추억 거리를 만들었다고 위안해 본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우리가 탈 경비행기는 작지만 근사했다. 큰 비행기를 많이 타 본 것도 아니었지만, 몇 명만 타는 작은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활주로를 달리는 것도 큰 비행기와는 달리 노면의 작은 진동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함도 잠시,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경비행기의 가공할만한 소음이라는 게 뭔지 금세 체험할 수 있었다. 바다 위를 낮게 날며 바깥을 보고 Sophy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바로 옆에서도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경비행기의 소음은 최강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대화를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그나마 다행히도 인천에서 마닐라로 오는 비행기에서 받은 귀마개가 있어, 소음에 의한 고통은 조금 줄일 수 있었다.


마닐라에서 엘니도로 가는 경비행기. 소음이 어마무시하다


경비행기가 도착한 곳은 리조트가 아니고, 그전에 착륙이 가능한 작은 섬이었다. 리조트는 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섬 주민들(?)의 반가우면서도 머쓱한 환영 노래를 들으며 배를 타는 선착장으로 다시 갔다. 


이 곳 역시 범용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닌 리조트 전용으로 만들어진 곳 같았다. 우리가 주스를 마시면서 잠시 머무른 라운지 옆에 조그만 강 같은 곳이 있었고, 여기로 작은 배가 들어왔다. 이 배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인 리조트로 가는 것이었다.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원주민(?) 아낙네들. 고맙다기 보다는 살짝 민망한 느낌


배가 리조트에 가까워지면서 멀리 섬의 풍경이 보이자, 진땀을 흘리며 눈앞이 하얘졌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 눈앞에 펼쳐진 절경은 여기 오길 잘했다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엘니도가 수려한 풍경으로 유명하다고 하더니, 단 한눈에 그 얘기가 어떤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섬 하나에 리조트가 딱 하나 있었고, 다른 것은 없었다. 게다가 리조트 뒤쪽으로는 수직 절벽이 서 있고, 그 위로 파릇한 녹색의 나무들이 늘어져 있어서 여행사 광고지에서나 보던 풍경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셈이었다. 리조트의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한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규모가 크지는 않았고, 숙소로 보이는 방갈로들은 통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리조트 자체는 작은 대신에 주위를 절벽과 나무, 바다가 완전히 둘러싸 있어서, 자연 속에서 휴양하는 느낌이 극대화되는 구조였다. 


반면에, 좀 더 냉정한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 "휴양"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보였다.


리조트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소박한 듯한 리조트 규모와 친절히 맞이해 주는 직원, 인공적인 것들이 최소화되어 빛도 소리도 자연들로부터 오는 것 밖에 없는 환경이 너무도 평화로웠다.




초보 해외여행자를 위한 길잡이


해외여행의 정보와 경험담이 넘쳐나는 시대에 해외여행 길잡이라는 것을 쓰려니 얼마나 대단한 얘기를 쓰려는지 저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모든 이들에게는 "처음"이라는 설레기도 하면서도 두려운 경험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제가 겪었던 난처했던, 또는 다행히 무사히 극복했던 경험들을 회상하며 그중 유익한 정보를 풀어볼까 합니다.


여행의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를 머리 속에 그려보고, 정확한 정보를 얻어두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입니다. 저의 경험처럼 그냥 가보면 알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미아가 되거나 여행을 망칠 수도 있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공항의 정보는 공항 홈페이지를 확인하여 터미널, 게이트, 셔틀버스 정류장과 시간표를 확인해야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단지 본인의 여행 일정에만 필요한 정보 외에 전체적인 정보를 저장하거나 프린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공항에서는 마지막 탑승 게이트를 지나기 전까지 모든 것을 재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행기 일정이 지연될 수도 있고, 예고 없이 탑승구가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항상 안내스크린을 확인해야 하며, 가능한 한 여러 직원에게 물어보며 재확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환승이 필요한 경우 항공사마다, 공항마다 환승 경로가 다르고 부치는 짐을 취급하는 규칙도 달라서 사전에 티켓팅을 할 때도 확인하고, 내리면서도 승무원이나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기를 권장합니다. 


환승에 필요한 시간은 넉넉히 잡아둬야 합니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좋겠지만, 여행 계획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비행기 일정 지연이나 돌발 상황은 1-2시간 잡아먹는 건 예사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환승에 충분하겠지...'라는 생각을 한 번쯤 더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권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여권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외국 입국은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입국 심사 시에는 주로 무슨 목적으로 입국하여 언제 떠날 것인지를 묻는데, 머무는 곳, 떠나는 날짜를 알고 있는 것이 좋으며, 귀국하는 e-ticket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니, 꼭 이를 각자가 소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입국신고서에 머무는 곳 주소를 써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호텔명이나 주소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입국 시 세관원들의 횡포(?)를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규정에 근거한 것 같지는 않은데, 특히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면세품을 많이 사 들고 들어가는 경우 이에 대해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합니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필리핀에 갈 때는 가급적 면세품 구입을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도네시아 입국 시에는 비자를 사야 하기 때문에 현금이 필요합니다. 대략 $20 또는 250,000 IDR 정도인데,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관광 진흥을 위해 무비자 입국을 시행하고 있어서 비자 구입이 필요치 않습니다.


공항 이외의 장소를 이동하는 경우에는 가능한 경우라면 Google 지도 등을 이용해서 경로를 확인하고, Google Street에서 실제 거리의 풍경을 미리 확인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스쿠버다이빙 여행이라면 리조트나 다이브 샵에 픽업 서비스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무료 또는 적은 비용으로 픽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항에 내려서 픽업 직원만 만나면 그 이후의 이동은 만사 OK이지만, 혹시 비행기 도착 시간이 지연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전화나 메신저 등의 연락 방법은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해외에 도착했을 때 본인의 핸드폰을 로밍하는 것은 간편하지만, 현지 USIM을 구입하면 더 저렴하고 자유롭게 전화나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항에서 일정 기간 동안 무제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USIM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놀고 있는 USIM 장착이 가능한 핸드폰이 있다면 이를 활용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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