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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에서 저녁 식사

스페인 미식 여행 - 10 | Restaurante Especia

by 탱강사

또다시 새벽부터의 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때문에 원래 오픈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열어준 호텔 식당이 고마웠지만, 비몽사몽에 먹은 아침 식사는 바르셀로나 숙소 식당이 얼마나 훌륭했었는지를 되새겨 줬다.


반달이 떠 있는 짙푸른 하늘을 보면서 그라나다행 버스를 탔다. 어라? 왜 우리 자리는 이렇게 한 자리씩 떨어져 있지? 여자 일행들은 둘씩 옆자리로 앉았는데, 둘 뿐인 나와 남자 일행은 어째서인지 자리가 떨어져 있네? 뭐, 이상하지만 정해진대로 자리를 앉지. 아직 시동도 걸지 않은 버스에 앉아 그라나다 정보를 보고 있으려니, 옆에 누군가 멈춰 선 것이 느껴졌다. ?? 여행객인지 모르겠지만, 젊은 유럽인 여자 둘이 나와 나의 남자 일행에게 자기네 자리가 각각 우리 옆자리이니, 서로 자리를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우리 일행은 그러마고 했고, 우리 남자 두 명은 옆자리로 앉았다.


아까 보던 그라나다 얘기를 다시 보려 핸드폰을 열었더니 카톡이 와 있다. 우리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 일행의 메시지. "바보 ㅋㅋㅋ" 그냥 버티고 앉아서 이국의 언니들이랑 로맨스라도 만들어 보지 그랬냐라는 얘기지. 뭐, 우리가 말도 잘 안 통하는 언니들이랑 나란히 앉아서 뭘 할 수 있겠어? 그런 건 영화에서나 생기는 일이라구. 그런데 가는 내내 그 두 언니들이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가자니, 그냥 자리 바꿔주지 말 걸 그랬나 생각도 들더라.


이번에도 이동 중의 바깥 풍경은 썩 눈길을 끌만한 것이 없다.




그라나다에 도착하자마자 맘이 급한 우리는 짐만 던져두고 나왔다. 아쉬웠던 아침 식사를 보상받으려 찾은 곳은 츄로스 카페. 그래, 츄로스라면 스페인이지. 핫쵸코를 시켜서 츄로스를 찍어 먹는 것이 오리지널이라던가? 그렇게 주문해서 나온 츄로스. 오오... 이것이 스페인의 츄로스. 핫쵸코에 찍어서...


본토의 츄로스라는 것인데, 이 비주얼 무엇?


본토의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를 제외한다면 사실 오리지널이 진짜로 맛있는 건 항상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라나다에서의 메인 이벤트는 알함브라 투어이다. 투어 시간 전에 급히 먹어야 하는 점심은 가는 길에 있는 "블로그 맛집"이다. 한국 여행객들의 블로그에 많이 등장하는 레스토랑답게도, 여서일곱 테이블 있는 중에 한 테이블 빼고는 한국인 여행객들인 것 같다.


"블로그 맛집" 분명 맛있는 집이었을 거다.
가지 튀김은 맛있었지만, 나머지는 그다지...


역시 사람 감각이라는게 좋아지는 건 몰라도 좀 떨어지면 금방 눈치챈다던가. 고급 음식 좀 먹었다고 입맛이 업그레이드된 건지, 음식들이 좀처럼 입맛을 당기지 않는다. 그렇게 느낀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음식이 별로이거나, 정말로 다들 혀가 고급화되었다는 얘긴데. 이제는 블로그 맛집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얘기네?


동네 사람들의 수다가 가득한 동네 버스를 타고 언덕을 오르니 알함브라 성이 나왔다. ("알함브라 궁전"이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Castel"이기 때문에 궁전이 아닌 성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한다.) 알함브라 성은 비수기가 없고 성수기와 극성수기 밖에 없어서 입장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온 때는 해도 높지 않고, 더워서 목이 타지는 않는 성수기.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인가?


그동안 자주 들었던 알함브라의 화려함이 상상과는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원래의 모습에 비해 지금의 모습은 20%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아쉬움에 궁금증까지 더해진다.


까를로스 5세의 궁전. 외관에 비해 내부는 별로 볼 건 없다고 한다.
형상화가 금지된 이슬람 규율 때문에 기하학 문양 위주로 새겨진 벽
무함마드 꿈에서 알라의 계시를 받은 동굴의 종유석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푸른 염료가 그렇게 비싼 거라고.
물이 곧 힘이었던 당시에 외교관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
이슬람에서는 드물게 동물을 형상화한 12 사자상. 기와가 떨어지는 사고 때문에 우린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고양이들이 많아서 좋았다. 냐옹.
알함브라에서 가장 예쁘다는 나사리 궁. 당시 기준으로 이런 분수는 사치의 극한이었다고 한다.
알함브라에서 내려다 보이는 알바이신. 이슬람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나무 아래에서 역모(또는 불륜)가 들키자, 자리를 마련해줬다고 말려 죽임을 당한 나무. 나무가 무슨 죄가 있을까...
무어인(무슬림)들이 만든 "Al Hambra"가 스페인에 넘어가면서 "La Alhambra"가 된 것으로 이곳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라나다에서 꼭 봐야 한다는 알함브라의 야경을 보러 갔다. 그라나다에서 바라볼 때 하얀 집들이 많이 있어서 예뻤던 곳이지만, 소매치기가 많아 조심해야 하는 곳이라 하여 돌아다닐 용기는 나지 않았던 알바이신을 훑듯이 지나 언덕에 올랐다. 이미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알함브라 배경이 잘 나오도록 자리를 잡았다. 잘 나온 사진을 건지기 전까진 이 자리 잘 버티고 있어야 할 텐데...


알함브라 맞은편 언덕에서 누구나 걸터앉아 풍경을 볼 수 있는 건 매력적이었다.




그라나다에 오면서 제일 궁금하던 이벤트는 저녁 시간이다. 알함브라 성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 이민영 가이드의 말로는 미슐랭 1 스타를 받은 적이 있지만, 알함브라에서 식사를 한다는 상징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을 거란다.


원래 스페인의 많은 고성들이 파라도르(Parador)라고 하여, 국영 호텔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 상징성 때문인지 그렇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숙박은 못하지만 레스토랑이라도 갈 수 있다는 걸로 기대감이 높아 있었다.


레스토랑 내부는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원래는 야외의 테이블에서 밤의 알함브라 성벽 사이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는데, 오늘은 날이 추워 야외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음식의 비주얼 역시 고전적이다. 그리고 맛도... 고전적인 것인가? 국가 운영이라서 현상 유지의 느낌이 좀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알함브라의 상징성에 의미를 두라고 하던 이민영 가이드의 얘기가 이거였나 싶기도 하고... 오늘 몸이 좀 으슬으슬하더니 그래서 입맛이 없었던 것인가... 부풀었던 기대가 힘없이 꺼지고 나니 추억으로 남길 거리가 사라진 게 더욱 아쉽다.


Restaurante Especia의 메뉴판. 가격이 쌌구나. (어쩐지...)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컸던 식사라 사진은 이것만.
아쉬운 김에 파라도르 내부를 잠시 구경.
파라도르에 붙어 있던 예배당


가이드 이민영님 소개 : https://www.facebook.com/minyoung.lee.5623293
미식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 여행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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