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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은 잠시, 마음의 양식을 찾아서

스페인 미식 여행 - 11 | 마드리드의 미술관들

by 탱강사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도시는 마드리드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걸 보려니 또 열심히 다녀야 했다.


마드리드에 꼭 와 보고 싶은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프라도(Prado) 미술관이다. 프라도 미술관이 궁금했던 이유는 어릴 적 도록에서 본 피카소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이 소장된 곳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현대 미술품들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옮겨져 있다. 하지만 프라도 미술관에는 여전히 훌륭한 유물들이 많은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유럽의 많은 국립 미술관들이 그렇듯이 프라도 미술관도 휴관일과 무료입장 시간이 있기 때문에 미리 정보를 찾아봤다. 내가 간 저녁 무료입장 시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픈 시간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다. 하지만 친절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블로그 정보에 따르면 눈앞에 보이는 곳 보다 좀 더 들어가면 줄이 훨씬 짧은 입구가 있다고 하여 그곳을 찾아갔다. 과연, 한국인의 정보 공유력이란!


IMG_6312.JPG 도심 근처에, 주변도 쾌적해서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도 좋을 만하다.
IMG_6313.JPG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무료 입장객들의 줄이 기-----일게 서 있었다. 하지만 입장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프라도 미술관의 느낌은 고전적이다. 공간도, 미술품도 그렇다. 규모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정말 그림이 나를 잡아 세우지 않으면 거의 계속 걸어 다녔다. 언젠가 마드리드를 다시 오면 좀 더 여유롭게 보려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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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317.JPG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그 앞에 몰려 있는 관람객들 (이 언니는 어쩌다 사진 모델처럼 찍혔을까...)
IMG_6322.JPG 벨라스케스 작품이 가운데에 있는 방




어찌 보면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곳은 프라도 미술관보다는 레이나 소피아(Reina Sofia) 미술관이었을 것이다. 궁금해하던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IMG_6343.JPG 레이나 소피아란 소피아 왕비라는 뜻이다. 원래 병원 건물이었다고 한다.


미술관이 숙소 바로 근처라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어둑해지는 작은 공원의 하늘을 건너갔다. 프라도에 비해 공간부터 현대적이고, 작품들도 현대작품들 위주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소장품은 역시 피카소의 게르니카. 2층에 있는 게르니카의 방을 찾아갔다.


오! 이것이 게르니카의 원본! 도록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크기에서 나오는 위압감이다. 이게 이렇게 큰 그림이었다니! 흑백의 대비가 선명하고, 미처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검은 실루엣의 아래쪽에 물감이 길게 흘러내린 자국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게르니카의 방은 촬영 금지)


guernica.jpg "Guernica" by Pablo Picasso. 출처: museoreinasofia


반면, 고전적인 작품들에서 간혹 느낄 수 있는 진품을 직접 보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요동 같은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게르니카에 대한 궁금증이 무척 컸던 만큼 그런 감정적 공백에서 오는 당혹감 역시 컸다.


또 다른 당혹감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로부터였다. 달리의 몇몇 작품들은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이 작은 공간에 그렇게 세밀한 묘사를 한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너무나 매끄러운 질감의 표면이었다. 품질 좋은 도록에서 사진을 잘라 붙였다고 해도 그렇게 믿을 것 같다. 이쯤 되니 무엇이 진품이고, 진품의 감동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마치 수력 발전으로 만든 전기로 음악을 들으면 음질이 더 좋다는 얘기만큼이나 혼란스럽다. 혹시 달리가 의도한 것이 이런 것일까?


DSC01237.JPG 살바도르 달리의 "위대한 자위행위자". 그림도 기괴하지만 이름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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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1243.JPG 뒤에 보이는 작품이 Eduardo Arroyo의 "네(4) 독재자". 앞의 아저씨는...??
DSC01247.JPG 프란시스 베이컨
DSC01251.JPG 마크 로스코
DSC01252.JPG 잘 모르는 작품이지만 미술관을 헤매는 동안 계속 마주친 이 "Bird Woman"이 날 지켜보는 것 같아서.




놀랍게도 프라도와 레이나 소피아보다 더 기억에 남는 미술관을 다녀왔다. 티센-보르네미사(Thyssen-Bornemisza) 미술관은 개인 소장품으로는 세계 2번째 규모의 미술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있다고 하여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은 훨씬 현대적이다. 프라도와 레이나 소피아보다는 작은데, 서울 시립미술관 정도 또는 그보다 조금 작은 규모일 것 같다. 분위기도 그렇다. 여기에는 근현대 미술들이 아주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작가들도 여러 나라의 유명 작가들을 망라해서,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편안하게 비교해 가며 보기에 좋은 환경이다.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실내는 하루 종일 머물러 있어도 좋을 정도로 아늑했다. 프라도와 레이나 소피아보다 작품에 집중해서 보기에는 여기가 훨씬 좋았다.


DSC01146.JPG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방" 간결하면서도 적막한 쓸쓸함이 감성을 찌르는 묘한 힘이 있다.
DSC01165.JPG "호텔방" 바로 옆에 있던 작은 호퍼의 다른 작품
DSC01174.JPG 다른 쪽 전시 공간에 있던 호퍼의 작품
DSC01166.JPG 빈센트 반 고흐
DSC01177.JPG 툴루즈 로트렉. 거칠고 강렬한 느낌이 좋다.
DSC01167.JPG 툴루즈 로트렉. 위의 그림보단 훨씬 차분한 느낌
DSC01168.JPG 에드가 드가
DSC01169.JPG 앙리 마티스
DSC01176.JPG 폴 고갱
DSC01144.JPG 르네 마그리트
DSC01133.JPG 살바도르 달리의 "잠에서 깨기 직전 석류 주변을 날아다니는 꿀벌에 의해 야기된 꿈"
IMG_6356.JPG 방송국 촬영 중인 것 같던데, 느닷없이 내게 와서 마드리드의 어떤 점이 좋은지 인터뷰를 찍어 갔다. 내가 방송에 나왔으려나?
DSC01138.JPG 여기도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방" 작품을 직접 본 것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직접 보고 받은 느낌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그의 작품 역시 너무나 현대적인 팝아트이다 보니 우리는 늘 책이나 화면을 통해서만 보고 말았었지. 그런데 그런 뻔할 것 같은 작품을 직접 보니 이건 정말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빨간색, 파란색의 점들에 새겨져 있는 붓터치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마드리드의 미술관들에서 진품을 보고 가장 놀라웠던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라고 하겠다.


DSC01139.JPG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Woman in Bath"
DSC01141.JPG 이걸 좀 더 가까이서 보았더니...


스크린샷 2020-03-23 15.53.54.png 숲을 이루는 나무 하나하나는 모두 저마다의 모양새가 있다.


가이드 이민영님 소개 : https://www.facebook.com/minyoung.lee.5623293
미식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 여행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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