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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과 감흥 사이 어딘가

스페인 미식 여행 - 12 | 마드리드의 레스토랑들

by 탱강사

마드리드라면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나? 라는 의문을 품던 우리가 제일 먼저 간 식당은 보틴(Botin)이다.


Sobrino de Botin 또는 La Bodega de Botin, 보틴 레스토랑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유명 식당으로, 어떤 가이드북에도 마드리드의 필수 방문 코스로 소개되는 곳이다.


그렇게 유명한 곳이라면 방문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바쁜 시간대가 아니라 그런지 자리를 잡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IMG_6297.JPG 오래된 역사만큼 매우 고전적인 인테리어와 분위기의 레스토랑 내부


과연,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외관은 물론, 식당 내부 구조나 벽과 바닥, 테이블 등 모두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이 식당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새끼돼지 구이인 Cochinillo Asado와 오징어와 그 오징어 먹물로 만든 오징어 덮밥(Chipirones en su Tinta)을 시켰다.


하, "오징어와 그 자신의 먹물로 만든"이라니. 이런 이름의 요리가 사 먹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돈을 내는 것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는지 조금 의문스럽긴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수제버거니, 수제돈까스니 하는 것의 원류라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부자(父子) 덮밥(ㅠㅠ)이라는 오야코동의 느낌도 좀 들고. 먹을 때 오징어와 먹물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면서 먹어야 되려나?


IMG_6296.JPG 자기 몸에서 나온 먹물에 뒹굴고 있는 오징어. 그 유명하다는 새끼 돼지 구이는 사진도 안 찍었었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먹물에 버무려진 오징어도, 그 유명하다는 새끼 돼지 구이도, 맛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가이드 이민영님의 얘기대로,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식당에서 밥 먹었어!"라는 자랑거리 이상의 특이점이 없었다.


IMG_6299.JPG 레스토랑 쇼윈도에 진열된 레스토랑 내부의 미니어처. 음식보다 이게 더 끌리네.




"마드리드의 청담동"이라고 부를만한 동네에 있는 레스토랑인 Lúa.


미슐랭 1 스타를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이다. 스페인의 수도, 미슐랭 1 스타, 이래 저래 바르셀로나의 레스토랑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려나?


숨겨진 듯한 아담한 문을 들어서, 은은한 조명의 작고 조용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평화로운 분위기에다가, 미슐랭 1 스타인 걸 감안하면 가성비가 좋을 거라는 이민영 가이드의 귀띔에 사뭇 기대와 호기심이 일어났다.


DSC01184.JPG "Olive"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모양만 그렇고 다른 맛의 젤리
DSC01188.JPG 푸아그라, 퀴노아, 치즈, 요거트 등을 섞은 크림. 고소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느낌 좋은 시작.
DSC01198.JPG 버섯 크림의 카푸치노. 이것도 따끈하고 구수하고 부드러워 아늑한 기분을 느끼기에 좋았다.
DSC01199.JPG 새우 까르파초. 샐러리 크림, 마늘 마요네즈, 패션프룻 등이 곁들여져 있는데, 새우에 상큼 달달한 맛이 섞여서 이것도 나름 맛있었다.
DSC01196.JPG 문어살 위에 딸기 소스와 사과 소스가 얹어져 나왔는데 이게...


이때쯤 되자, 일행들 사이에서 "지나치게 창의적이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DSC01207.JPG 가장 안타까웠던 마늘 수프. 우리 어머니가 드셨다면 이렇게 얘기하셨겠지. "니맛도 내맛도 아이다."
DSC01210.JPG 이베리코 소스를 곁들인 가오리 구이. 너무 담백한데 양도 많게 느껴져 전체적인 식사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
DSC01223.JPG 새끼 돼지 구이. 껍질이 바삭해서 맛있고, 양도 적은 게 더 낫다. Botin에서의 새끼 돼지 구이를 잊게 만들었다.
DSC01226.JPG 황도 젤리. 질감은 이게 좋지만 맛은 병문안 가서 먹는 황도캔이 더...
DSC01227.JPG 트러플을 그득 올린 아이스크림. 요리에서 맡던 그 오묘한 향이 트러플 향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DSC01229.JPG 고전적이고 너무 평범했던 디저트. 마지막 기억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창의적"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을 지나며 다소 신선한 느낌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고전적인"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미슐랭 1 스타의 한계" 운운하는, 이제 갓 미식에 눈뜬 사람치곤 주제넘은(?) 평가까지 하게 된다.


이것이 절대적인 맛에 대한 평가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감각이 "미슐랭 가이드"라는 권위에 휘둘린 것인지는 누구도 단정하긴 어렵다.




마드리드의 청담동이라는 동네에 좀 더 캐주얼하면서도 힙한(?)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Los tortillas de gabino"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미슐랭 가이드에 빕구르망급(가성비가 좋은 곳)으로 소개된 곳인데, 오너의 자존심으로 입구에 스티커를 붙여 두거나, 굳이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DSC01254.JPG 스타터로 먹은 Razor clam(Navaja, 맛조개) 그라탕. 여기는 맛조개 요리가 많이 보이더라.
DSC01264.JPG 소의 "골수"를 구운 다음 긁어서 빵에 얹어 먹는 요리
DSC01271.JPG 스푼으로 뜨면 익은 것처럼 보이는 표면 아래 그로테스크한 골수가 그대로 드러난다. 으으이익~~
DSC01274.JPG '비주얼이 좀 그런데?'라는 생각은 빵을 한 입 베어 먹고 나서는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버렸다.
DSC01279.JPG 스페인에서의 또르띠야(tortilla)는 오믈렛 비슷한 요리이다. 부재료가 많이 들어간 계란찜이라고 보면 되겠다.
DSC01282.JPG 문어를 올린 또르띠야. 아... 양이 너무 많아...
DSC01286.JPG 꼭 먹어보라는 aroz con leche(직역하자면 타락죽?)와 아이스크림. 디저트라고 해도 너무 달고 양도 많더라.


배가 덜 고파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을 망정, 오히려 사전 정보 없이 와서 자유로운 분위기에 먹어서 그런지, 이전 레스토랑들에 비해서 훨씬 새롭고 재밌는 저녁 식사가 되었다.


계산하며 나오는 길에도 레스토랑의 오너는 음식, 레스토랑의 경영 철학, 요리, 다른 여행지 얘기 등을 해 가며 우리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 것이 인지상정.


가이드 이민영님 소개 : https://www.facebook.com/minyoung.lee.5623293
미식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 여행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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