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장기근속 휴가가 가능하여 한 달간 아내 Sophy와 함께 유럽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마도 젊은 시절 부부가 같이 이런 여행을 하는 것은 유일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사실 이때, 유럽 여행 대신 미국이나 남미 여행을 갔을 수도 있었다. 이 여행 전까지 나는 혼자 중미 지역인 코스타리카와 멕시코 칸쿤에서 다이빙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특히 남미 여행은 젊어서나 하는 거라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더 늦기 전에 둘이 함께 남미 여행을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휴가 기간의 한가운데에 하필 처남이 결혼식 날짜를 잡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거다.
결혼식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긴 해야 되는데, 그러고서는 다시 중남미로 되돌아 가는 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거지. 게다가 칸쿤에 있던 나를 그렇게 귀국하게 만든 처남은 또 신혼여행은 칸쿤을 간다네?
그래서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그냥 손해 보는 느낌이라는 구실이 조금 부족해 보였는지 구실을 하나 더 찾았다.
"그래, 나 예전부터 미요대교를 보고 싶었어. 거기는 짧은 관광 코스로 가기에는 위치가 애매하다며? 이번에 한 번 가 보자구."
이것이 사장교로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다리라는 미요대교. (출처: wikimedia.org)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 한 결정이다.
모든 계획은 Sophy가 짰다. 이미 대학 시절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고, 결혼 후에도 파리에 유학하면서 틈틈이 여행한 경험이 있다. 기껏해야 업무 출장으로 두어 번 유럽 땅을 밟아 본, 회사돈으로 좋은 비행기, 좋은 숙소만 경험해 본 나에 비하면 Sophy의 여행력이 월등히 높은 것이다. 그리고 Sophy 본인이 여행 계획 짜는 걸 무척 재밌어하기도 한다.
몇 달 전부터 여행 계획을 세우는 Sophy는 마치 논문 탈고하는 대학원생 같았다. 도시 별로 며칠을 머무를지, 숙소는 어디로, 얼마짜리로 예약을 할지, 도시 간 이동은 어떻게 할지, 어디를 꼭 가고 어디는 포기할지 등등. 나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것, 나랑 같이 가고 싶었던 곳들이 넘쳐흐르고 흘렀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과 좌절을 반복하고 있을 때 중요한 기준을 잡았다. "이번에 못 가면 다음에 가자." 그래, 다음에 갈 곳이 있으면 좋지.
그렇게 잡힌 경로는 이탈리아(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크로아티아(두브로브닉), 오스트리아(빈), 스페인(바르셀로나), 그리고 프랑스 니스로부터 파리까지이다. 각 도시들 사이사이는 반쯤 계획을 세우고 반쯤은 상황을 봐서 마음이 가는 쪽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두 명 짐의 전부. 두 명이 한 달 가는 여행짐 치고는 엄청 라이트하다. 여름이라 치더라도.
여행의 설렘에 덥썩 산 루프트한자+슈타이프 테디베어 인형
비현실적인 스펙트럼이 빛나던 몇 시인지 모를 하늘
환승으로 잠시 땅만 밟고 가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담에 오지 뭐 하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독일 갈 생각은 잘 안 들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