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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쓰고 무엇을 건질까

스페인 미식 여행 - 14 | 무심코 떠난 여행의 큰 깨달음

by 탱강사

일주일 남짓의 여행인데, 시간과 에너지를 꽉꽉 눌러 담아 많은 곳을 부지런히 다니고, 또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정말 재밌고 알찬 여행이었어!" 라며 즐거운 여행의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이후로는 무엇이든 곱씹으면서 단물을 짜내려는 습성이 생겨버렸다. 이렇게라도 정리해 두고 다시 돌아보면 여행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는 일일 것 같다.


1. 돈을 쓰고 얻는 것들

고려해야 할 것은 시간과 기회, 경험과 희소성이다. 이제 돈은 고려대상의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경제력이 부족한 젊은 시절에 돈이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인 것은 당연했겠지만, 이제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아졌다.


여행 상품 자체도,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도 비교적 고가의 비용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도, 일행도 모두 비용 지불은 감수하기로 하고 다른 가치를 찾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자유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에도 간절했던 휴식을 마다하고, 굳이 돈이 더 들어가더라도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한 선택을 했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하면서 반복했던 후회로부터 깨달은 바였다. 다행히 나 아닌 다른 이들도 이미 이를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2. 얻는 것이 너무 많은 전문가의 도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돈보다 더 높은 가치가 필요한 사람에게 딱 맞는 선택이다. 물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지만.


선험자가 이끌어 준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면 더 값질 수도 있겠지만,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그것은 이미 20대쯤에 했어야 할 일이다.


20대에 도전이라고 불렀던 것이 이제는 불확실성과 Risk로 느껴진다. 선험자는 이 불확실성과 Risk를 엄청나게 줄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 혼자였다면 뭔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수많은 새로운 경험과 지식과 기쁨을 찾아주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최고로 만들어 주었던 가이드 이민영님


3. 세상엔 새로운 일이 너무 많다.

TV에서, 인터넷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비록 처음 보는 것들이라 해도,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느 순간에 내 눈 앞에 와 있고, 그리고 때때로 그것은 더 큰 세상을 보여준다. 세상도 변하고 내 인생도 변하니까. 다이빙에 대한 경험도 그렇게 찾아왔었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란 것은 나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이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나의 삶과 연관시킬 정도의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숙제를 스스로에게 만들어 주었다.


내일 무슨 일이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준비된 자만이 이를 기회로 잡을 수 있다. 준비는 거창한 "실력" 같은 것일 필요는 없다. 마음의 준비만이라도 충분치는 않을지는 몰라도 없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혹시 또 모르지. 이비자 클럽투어에 가게 될 날이 곧 올지도.


4. 타이밍이 있다.

이르면 돈과 감동이 낭비되고, 늦으면 시간과 기회가 사라진다. 돈이 충분하고, 똑같은 것을 보고도 다시,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러도 괜찮겠다. 하지만 과연 늦으면 되돌릴 수 있을까?


왜 좀 더 일찍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면서도, 더 젊은 나이에 경험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감동을 받았을 것 같다. 그것은 또한 그때의 감동 나름의 가치가 있었겠지만,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자신은 없다.


10년 전만 해도 '도대체 이 짠 음식을 어떻게 먹지?'라고 생각했었지.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수많은 무쓸모 정보와 아무말 속에서도 보석과 같이 기억에 남은 것은 있으니, "죽을 때가 되면 과연 무엇을 더 후회하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답이 왜 그때 일을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더 즐기고, 더 사랑하고, 더 여행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후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지만, 막상 용기 내어 그것을 실천하기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5. 객관적 가치, 주관적 가치, 그리고 권위

"미슐랭 스타"에 대해 저마다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객관적 기준을 잡아주는 역할은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객관적 기준이 주관적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음식이라면 당연히 극강의 맛과 풍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나의 감각은 어느 때보다도 예민하게 작동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감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음식이 "별로"라고 얘기할 수 있다면, 맛이라는 것이 결코 객관적인 기준에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어떨 때는 내가 미슐랭 가이드라는 권위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혹은 그런 권위에 저항해 보려는 몸부림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긴 하지만.


물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전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기는 했다. 근사한 테이블과 백화점에서나 보던 깨끗하고 영롱한 와인잔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오묘한 맛과 향의 음식들. 비록 2주 치의 식비를 한 방에 써야 했지만, 먼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누릴 수 없는 호사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일까.


그래도 단지 맛으로만 따진다면 짜파구리가 양민의 입에는 더 침이 고이게 만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 채끝 스테이크가 올라갈 필요도 없다.


이것이 처음 먹어 보는 새로운 음식인 것은 인정. 옆에서 한우 채끝을 굽고 있다면 포크와 나이프를 놓고 젓가락을 집을지도.


6. 세상엔 안 먹어본 음식이 너무 많다.


7. 하몬의 가격과 등급은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


가이드 이민영님 소개 : https://www.facebook.com/minyoung.lee.5623293
미식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 여행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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