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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Aug 10. 2020

Romantic하지 않은 로마행

1달 간의 유럽 부부 여행 - 7. 베네치아 > 로마

베네치아에서 기차를 타고 로마로 간다. 그런데 이번에 탄 기차는 전혀 Romantic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앉을 자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좌석과 마주 앉는 자리였다. 맞은편 자리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노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앉으려고 짐을 정리할 때부터 할머니가 우리에게 이태리 말로 뭔가를 계속 말하는 것이다. 썩 기분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어차피 말이 통하지도 않는 데다가, 우리는 주변을 신경 쓰며 마냥 조용히만 있었기 때문에 그 할머니가 뭐라 한들 우리가 거기에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근데 반응하지 않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언짢은 티를 내는 것이 아닌가? 우리 부부는 도대체 영문도 모른 체 몇십 분을 시달리며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소음을 백색 소음인 듯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신문만 보고 있었다. 흠, 이 할매 처음 이러는 게 아닌가봐? 


저 뒤에 서 있는 할매가 우리를 그리 해코지 하던... 그 와중에 가방 예쁘네...


그 요란한 텃세가 그친 건 검표원이 우리 표를 검사하고 지나간 뒤부터였다. 뭐야? 이 할매는 우리가 우리 자리도 아니면서 앉았을 거라고 생각한 거였어?


요란한 로마행은 이뿐이 아니었다. 웬 어린 남자애가 소리를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며 온 주위에 민폐를 끼치며 돌아다녔다.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훈계한다고 잡아서는, ... 소리를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쓴다. 돌아다니지만 않을 뿐이지 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위 아저씨들이 계속 눈치를 줬지만, 아이도, 엄마도 누가 이기나 보잔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뭐, 이들이 워낙 도드라져서, 객차 안이 온통 엉망진창에 시장통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건 배경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로마 도착. 이제야 평화~


떼르미니 역에서 버스를 탔다. 짐도 많지 않으니 손에 쥐고 있는 것만 잘 간수하면 아무리 악명 높은 로마라도 별 문제는 없을 거다.


우리의 숙소는 바티칸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호텔이다. 그런데 Sophy가 꺼내 든 숙박 예약 바우처와 구글맵을 아무리 번갈아 보며 찾아봐도 호텔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공대 출신 부부답게 목표의 양 끝에서부터 좁혀가며 찾았다.


그렇게 찾은 호텔 문. 헛, 알고 봐도 이게 호텔 문인지 모르겠네.


하얀 티셔츠 입은 남자가 서서 바라보는 곳이 바로 우리 숙소의 입구였다.


작은 건물에 걸맞게 좁고 가파른 나선 계단 위로 방들이 있다. 간편히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이 민박 같은 정겨움을 준다.


막 멋있고 그런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로마의 야트막한 옥상이 정겨웠다.


방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저녁이다. 기차에서 시달린 탓인지 다른 일 없이 쉬고 싶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에도 조금 늦은 시간이라, 숙소 바로 앞 바티칸 근처 길가에 테이블을 깔고 영업 중인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어두워지는 하늘과 한적한 거리, 게다가 바로 옆이 바티칸이라니, 이런 길 위에서 저녁을 먹는 것도 꽤나 Romantic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음식 맛은 전혀 Romantic하지 않구나?


분위기는 로맨틱한 듯했으나... 피자도 빠에야도 내가 알던 본토의 맛에는 너무 못 미치잖은가...
아쉬운 저녁 식사에, 아직 문 닫지 않은 아랍인 상점에서 산 체리. 베네치아에 이어 로마에서도 체리만큼은 진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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