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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Sep 09. 2016

초짜 다이버의 눈으로 본 신들의 정원

좋은 곳을 오니 눈이 호강한다. 2010년 2월

팔라우 바닷속은 이전에 다녀왔던 바다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광활한 바닷속 풍경을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록 초보자의 손으로 찍은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아쉬움이 있지만.


우리가 이번 팔라우 여행에서 다닌 포인트들이다. 경험이 많은 다이버들은 팔라우의 다이브 포인트들이 숙소와 멀어 보트로 이동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아쉬워했지만, 우리는 그 시간마저도 마냥 즐겁고 새로웠다.


저먼 채널 (German Channel)

저먼 채널은 1900년대 초 팔라우가 독일의 식민지였던 때에, 독일이 배의 이동을 위해서 산호초를 "파괴"해서 만든 일종의 운하이다.


이 지역은 산호초들이 얕고 넓게 깔려 있어서 배가 다니기 어려운데, 저먼 채널은 20m 정도의 수심으로 물길이 나 있는 곳이다. 아마도 지금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세계적으로 비난이 쏟아졌을 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팔라우에서 손꼽히는 다이빙 명소가 되어 버렸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배를 이동하기 위해 뚫어 놓은 이 물길은 자연에게도 필요했던 모양인지, 수중생물들이 오가는 길이 되어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되었고, 특히 다이버들이 보고 싶어 하는 수중생물로 유명한 만타가오리(Mantaray)가 지나다니는 길이 되었다.


구글지도에서 본 저먼채널의 위성 사진. 수중생물들에게도 지름길이 될 만 하다


팔라우 다이빙에서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저먼 채널의 만타가오리 관찰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최대한 일찍 가야 이들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하여 부산하게 서둘렀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듯이 부지런한 다이버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나. 그렇다고 일찍 온 이들이 무조건 더 좋은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한껏 기대를 품고 저먼 채널로 입수했다.


저먼 채널에서의 다이빙은 다른 것이 없다. 그냥 바닥에 조용히 앉아서 이제나 저제나 만타가오리가 유유히 등장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저먼채널에서는 얌전히 끈기있게 기다리는 게 관건


저먼 채널의 물은 다른 곳에 비해서는 뿌옇게 흐린 시야를 보이고 있었고, 20m 정도의 수심에 바닥은 모래로 덮여 있어서 미숙한 우리들에게는 오래 머물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다 되도록 만타가오리는 나타나지 않았고, 입수 때의 설레던 마음 고스란히 아쉬움으로 바뀌어 결국 만타가오리를 보지 못하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Angela 강사님께 물어봤다.


탱: "만타가오리가 많이 보이는 곳이라고 맨날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지난번 TV에 나오는 것도 보니 세 번째에서야 만났다고 나오더라고요?"

Angela: "아... 그 방송? 그거 사실은 8번째에선가 만난 거래요.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8번째 만났다고 그러긴 좀 민망했던 모양이에요. ㅎㅎ"


그랬던 거구나. 만타가오리를 못 만난 것도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실망할 일은 아닌 모양. 게다가 이런 일에 나와 Sophy는 엄청나게 Cool해서


잘됐군. 팔라우를 다시 와야 될 이유가 생겼어!

라고 위안 삼았다.


블루코너 (Blue Corner)

팔라우의 "블루코너". 거의 고유 명사화되어 있는 곳이다. 팔라우가 다이버들에게 손꼽히는 인기 지역이지만, 그중에서도 블루코너는 최고의 포인트로 명성이 자자하다.


조류가 세고 깊은 물속으로부터 끌어올려지는 물과 수면의 물이 만나는 곳이라 영양분이 풍부하고 먹이사슬에 따라 작은 생물들에서부터 상어 같은 대형 물고기까지 온갖 종류의 수중생물들이 모이는 곳이라나? 이미 TV에서도 자주 보고 익히 들어왔던 명성이라 기대감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컸다.


이곳은 센 조류 때문에 "조류 걸이"라는 특별한 장비를 써야 한다. 조류 걸이는 튼튼한 로프의 한쪽 끝에 쇠로 된 갈고리와 다른 끝에 스냅 고리가 달려 있는 장비인데, 갈고리는 바닥의 바위틈에 걸고, 스냅 고리는 다이빙 장비에 걸어서 조류에 떠내려 가지 않고 머물러 있을 수 있게 하는 장비이다.


장비 사용법 설명을 듣고 한 명씩 조류 걸이를 "배급" 받아 개인 장비 주머니에 넣었다. TV로만 보던 블루코너를 직접 들어가 본다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니 그냥 기대는 적당히 접고 들어가야 하나. 입수 지점까지 가는 동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순간의 행복이 영원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배의 엔진 소리가 낮아지면서 이미 와 있는 다이빙 배들이 보인다. 과연 명성에 걸맞게 많은 배들이 모여 있다.


"조류가 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조차도 은근히 기대가 됐다. 조류가 세지 않은 곳에서 입수하여 블루코너라고 말하는 그곳으로 전진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아! 이것이 조류구나!' 조류가 얼굴을 때리고 다이버들이 내뿜는 버블들이 45도 각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모두들 조류 걸이를 꺼내서 바닥에 걸 준비를 했다.


다이브 마스터들이 조류 걸이를 걸어도 튼튼한 바위틈을 알려주면, 여기다 조류 걸이를 걸었다. 그리고 다이브 마스터가 다시 확인까지 해 줬다. 초보 다이버가 멋모르고 아무 데나 걸었다가 조류에 날아가면 큰일이지 않겠는가. BCD(부력 조끼)에 공기를 조금 넣으니, 나는 마치 태풍에 흔들리는 풍선처럼 수중에서 휘청거리며 떠 있었다.


다이버들은 바닥에 줄을 연결하고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고 풍경을 즐긴다


눈 앞으로는 작은 먼지들(아마도 미생물 들이었겠지)이 빠르게 내 뒤쪽으로 사라지고 있어서 마치 내가 앞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앞에 엄청난 수의 물고기들이 허공에 떠서 나와 같은 곳을 보고 있다.


스쿠버다이빙도 즐겁지만 이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구나! 내가 마치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거대 물고기 행렬의 가운데에 와 있는 것 같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해저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변을 유유히 떠도는 수많은 상어들. 나는 분명 꼬따오의 어두운 바닥에서 살짝 떨리는 기분으로 만났던 상어였는데, 여기서는 고개를 돌리는 모든 곳에 상어들이 떠 있다. 그리고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약간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여기서 상어를 처음 보는 이들은 나의 이 미묘한 감정을 모를 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 있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이브 마스터의 신호에 따라 모두들 조류 걸이를 바닥에서 빼자, '슈웅~' 하고 조류에 날아갔다. 하지만 블루코너에서 조금만 떨어지자 조류는 잦아들어 다 같이 모여 다이빙을 마칠 수 있었다.



블루코너를 뒤덮고 있는 상어들. 지느러미 끝이 하얘서 이름이 White Tip Reef Shark


블루홀 (Blue Hole)

블루홀은 일반 명사인데, 산호초 지대에서 산호가 붕괴되면서 수직으로 깊게 동굴처럼 뚫린 곳을 일컫는 용어이다. 세계 여러 곳에도 각자의 이름을 가진 블루홀들이 있다.


팔라우에는 블루코너 옆에 블루홀이 있다. 이곳은 수면에서 아래로 들어가는 입구도 있지만, 벽 쪽으로도 큰 구멍이 있어서 옆으로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얕은 물에 산호초가 깔려 있는 입구는 그것만으로도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얕게 펼쳐진 산호들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마치 우물처럼 아래로 뻗어 있었다.


블루홀의 입구. 먼저 내려간 다이버들이 뿜는 공기 방울이 무수히 올라온다
줄줄이 이어지는 다이버들의 공기 방울


그렇게 좁은 곳은 아니었지만, 많은 다이버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다 보니 블루홀의 입구는 마치 광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우물인 양 바닥에서부터 한가득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정도 내려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내려온 곳을 돌아보니, 다이버들이 햇살을 배경으로 한가득 버블을 뿜으며 줄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거품 속을 벗어나자 바로 어둠과 적막이었다. 블루홀 안은 거대한 동굴 같았는데, 그 많은 다이버들이 다니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우리 팀의 가이드가 우리를 좁은 곳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플래시로 어딘가를 비추고 있었는데, 거기는 빨갛게 벽에 박혀 삐죽삐죽 촉수 같은 것을 흔들고 있는 조개가 있었고, 조개의 입은 네온사인처럼 하얀빛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이 전기 조개! 직접 보니 적잖이 신기했다. 정말로 전기로 불빛을 내는 것일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내 뒤로 수많은 다이버들이 전기 조개를 눈앞에서 보기 위해서 줄을 서 있었다. 좁은 곳을 다이버들을 헤치고 나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전기 조개는 전기가 아니라 빛의 반사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블루홀의 커다란 홀에서 옆에 뚫린 벽을 보고 있으니 많은 그림자 다이버들이 오고 간다. 숨 쉬는 소리가 계속 귓전을 때리고는 있었지만, 그림자뿐인 그 풍경은 "고요"했다.


블루홀 벽에 붙어 있는 전기 조개. 부디 오래오래 살기를
블루홀에서 바깥을 바라본 그림자 뿐인 고요한 풍경
카메라를 든 초보다이버(나)의 실상. 가이드가 떠오르는 걸 잡아주지만 정작 본인은 사진 찍는 데 정신이 팔려 그런 것도 모른다




"누구와" 다이빙을 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와" 무엇을 한다는 것. 크게는 누구와 인생을 함께 할 것인지의 문제부터, 누구와 함께 조별 과제를 할지,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함께 할 지의 문제 역시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들입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누구와 함께 여행을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느낌이나 기억이 달라지죠.


스쿠버다이빙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의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많은 분들이 누구와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는지, 또는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다니는지에 따라서 스쿠버다이빙을 바라보는 관점과 여행의 즐거움이 크게 차이가 나는가 하면, 저 역시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받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느껴서입니다.


그런데,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그런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강사가 되기까지의 저의 경험과 강사로서 바라본 느낌을 토대로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저의 팔라우의 첫 다이빙에서 보트를 함께 탄 가족은 누구와 함께 다이빙을 하는가에 대한 극단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즐거워야 할 다이빙 여행을 그렇게 불같은 야단과 호통을 들으며 시작했으니, 여행도 스쿠버다이빙도 악몽으로 기억되지 않을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다음날부터는 보이지 않더군요. 아마 아이들에게는 앞으로도 스쿠버다이빙의 놀라운 경험을 멀리하게 되는 트라우마로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저의 동료 강사도 처음 스쿠버다이빙 시작을 이상한(?) 사람과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스쿠버다이빙으로부터 영영 멀어질 뻔했다는군요.


처음 오픈워터 다이버 강습부터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반강제로 장비를 사게 하고 심지어 가격도 비싸게 받아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시절에는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무방비로 당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뭔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 정상적인(?) 다이브 샵을 찾아서 지금의 강사까지 될 수 있었다네요.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이 공인된 강사로부터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문제는 강사와 교육생의 관계가 전통적인 한국의 사고방식에 따라 상하 관계가 생기는 경우입니다.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사람은 정보가 부족하고 환경이 익숙지 않은 탓에 강사의 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강사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체로 일방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면 교육생으로서는 잘 알지도 못한 체 따라가거나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첫 단추는 이후의 즐거움을 향한 여행에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강사와 교육생의 관계는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다이빙 경험에서 더 중요한 시기는 처음 배울 때보다 조금씩 재미를 붙이는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때 기초적인 것을 많이 배우지만, 이때 배우는 것은 표면적인 다이빙 기술이 대부분입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갈 때 필요한 것은 기술뿐만 아니라 태도와 철학 등의 무형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막 경험을 쌓아가는 다이버들에게는 함께 다니는 선배나 강사가 본보기가 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따라 하고, 그 기저에 쌓여 있는 기본 철학까지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누구와 함께 다이빙을 하느냐에 따라서 본인의 다이빙 역사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나아갈지가 은연중에 정해집니다.


다이빙 여행에서는 단순한 즐거움 외에도 여러 가지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한 데 어울려 노는 문화적인 배움의 기회를 갖기도 하고,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이빙의 안전과 모험, 즐거움의 미묘한 경계에 대한 고민 역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여행 산업이라는 거시적인 경제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현지인들의 생활 패턴이나 환경 파괴, 부의 불평등, 행복의 기준 등 그야말로 "철학"적인 물음에 혼란해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즐거워야 할 다이빙 여행에서 이런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이러한 질문에 누군가 길잡이가 되어주고 생각의 방향을 잡아준다면 본인 나름의 철학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다행히도 저에게는 항상 큰 가르침을 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어서 가끔씩 잘못된 유혹(?)으로 빠지려는 때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자연,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은 아주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원칙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이를 단단한 자신의 기준으로 만들기까지는 적지 않은 경험과 시간과 생각의 되새김을 필요로 합니다. 이럴 때 좋은 분들의 본보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면 누군가 바로잡아줘야 한다. 못배워서 그런 경우가 많다


거창하게 "철학"이라는 주제를 얘기했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우리 모두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해 생각해 볼 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분들이 이렇게 심각한 고민을 해 보시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즐겁고 안전한 스쿠버다이빙을 위해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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