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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Nov 02. 2020

내가 이걸 보려고 지금껏 잘 살아 있구나(남부투어 2)

1달 간의 유럽 부부 여행 - 12. 포지타노, 아말피

다음으로 만난 곳은 소렌토. 이제야 기대하던 모습에 가까운 이탈리아의 바다 풍경이 나오기 시작한다. 소렌토도 나폴리처럼 멀리서 풍경만 보고 가는 게 아쉽지만, 다음 가는 곳이 그만큼 좋은 곳이니 재촉하는 것이겠지?


스쳐 지나가기만 한 소렌토. 소렌토로 돌아오라는 노래가 괜히 생긴 게 아니려나...


버스에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고객들이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류 가이드님이 한 7분 정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길이라고 얘기를 해 준다.


아무것도 안 나올 거라고 얘기한 다음에 나오는 풍경
뭐... 뭔가 나오기는 하는데, 어쨌든 이 풍경들은 그냥 아무것도 아님


그동안 또 열심히 만담을 하시더니, 이제 시간이 되었다며 음악을 듣자고 하신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Time to say goodbye"의 도입부가 나오더니, 버스는 오른쪽이 수직의 낭떠러지인 길을 왼쪽의 수직 절벽을 끼고 왼쪽으로 틀었다. "Time to~~~" 부분이 시작됨과 동시에 극장의 장막이 걷히듯 절벽에 가려졌던 아말피 해안의 눈부신 풍경이 눈 아래에 펼쳐졌다.


뭔가 근사한 풍경이 나올까 차창이 깨질 정도로 노려봤지만 해안 풍경은 아직 이 정도가 전부
저 절벽을 넘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풍경이 이렇게 바뀐다고? 갑자기? 버스 안 모든 곳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졌다.


류 가이드님이 만담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들 풍경에 정신이 팔려 뭘 들을 겨를도 없을 테니까.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해서 맨 앞자리에 탄 보람이 있다.


우리가 어느 길을 온 거야? 하고 뒤돌아본 풍경. 와, 정말 드라마틱하게 변하긴 한 거구나.


버스가 선 곳은 포지타노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최근에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지고 인기가 높은 곳이다. 와~ 이게 바로 그 풍경이구나.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 함께 있는 풍경으로는 지금껏 봐 온 풍경 중 최고일 것 같다.


포지타노의 시그니처 풍경. 지금껏 봐 온 마을 풍경 중 최고


여기서 꼭 먹어야 된다는 1유로짜리 레모네이드를 한 잔씩 마셨다. 이 지역은 햇살이 좋아 품질 좋은 레몬으로 유명한데, 그런 레몬을 바로 짠 주스이니 다른 어디서 사 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게 당연할 듯.


레모네이드 가격은 쌌지만 그 맛과 풍경과 기분은 지금은 돈을 주고도 못 살 그런 것


여기서는 걸어 내려가는 코스. 여유롭게 포지타노 동네 구경도 하고 가게에서 쇼핑도 하면서 잠깐이나마 휴양의 느낌을 가져 본다.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해서...
꽤 좁고 가파른 길을 한 동안 내려가야 했다.
중간중간에 고양이들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다. ㅎㅎㅎ
넓은 길이 나오면서 길가에 예쁜 상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햇살이 좋은 곳에는 알록달록한 것들이 가득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하면 다 이뻐 보인다.
전망이 좋은 곳엔 식당과 카페.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수도 있을 듯?
앙증맞게도 대문에 곰돌이 친구가 걸려 있는 집도 있고.
다른 데서도 보던 것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배경이 달라지니 모양도 돋보이는 듯.
기분이 좋아지면 물건도 막 사게 될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우린 그냥 패스.
그렇게 내려와서 올려다본 포지타노 마을 풍경
뭐야, 왼쪽으로 가면 뭐든 다 있는 거야?


류 가이드님이 여기 오면 꼭 먹어 보라는 레몬 슬러시. 포지타노 풍경이 아무리 멋지고 낭만적이라도, 한여름의 햇빛 아래에서는 낭만이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일단, 카페의 그늘에 들어서자 금방 시원해졌고, 이제야 다시 극적인 명암대비를 보여주는 바깥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자랑이라는 햇빛이 가득 담긴 레몬으로 만든 슬러시는, 지금껏 먹어왔던 모든 레몬 어쩌구 하는 음식들의 기억을 날려 버렸다. 분명 생레몬으로 만든 것들을 처음 먹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의 슬러시 맛은 뭔가 다르다. (혹시 기분 탓?)


얼려진 레몬 통째로 나온 레몬 그라니따
이것이 이탈리아 휴양지 바닷가의 풍경!
그저 동네 어린애들일 테지만, 우리에겐 색다른 분위기로군.
이렇게 뛰어노는 게 당연한데, 웬 동네 어르신이 나타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애들이 더 이상 못 놀게 되었다. 에효...-ㅅ-;ㅋ




다음 스케줄은 배를 타는 것. 배를 타고 어디를 간다는데, 사실 그때까지도 어디를 가는지, 왜 가는지에 대해서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투어 상품이니 분명 검증된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배에 탑승. 관광객들도 많았는데, 그중에 역시 한국 관광객들이 제일 많다. 축복같이 내리쬐는 지중해의 태양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여전히 햇빛은 곧 자외선. 잠깐 양산을 폈다가도 다른 사람들의 경치 구경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접고 만다.


배가 달리기 시작하자, 바람이 얼굴을 때리면서 더위가 조금 가신다. 그리고 내가 내려온 그 언덕길의 포지타노를 바다에서 바라보니, 이제야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말피 해안의 절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인데. 사실 사진은 실제의 1/10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듯.


절벽을 휘둘러 도로가 산을 타고 있고, 계곡을 넘는 다리도 운치가 있다. 어떤 집들은 바닷가까지 내려오는 지그재그의 계단도 보인다. 와, 내가 언젠가 저런 곳에서 한가한 오후를 쉬는 날도 오게 될까? 눈이 부실 정도로 햇빛을 반사하는 하얀 집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에게는 오늘의 기쁨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와! 멋지다!" 하다가도. '올라가기 힘들어서 안 내려올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흔한 현실주의자
여기가 바로 그 "아말피(Amalfi)"라는 동네다.


1시간여를 달리면서 풍경을 봤지만 지겹기는 커녕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하면 만나는 모두에게 여기를 추천할 것이다. 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오라고. 그러면 분명 그 사람들도 내가 이런 풍경을 보려고 너와 같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거구나 생각하게 될 거라고.




그렇게 보고 있던 풍경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내려야 할 곳이 온 듯.


평탄해 보이는 도시가 나타났고.
우리는 옆으로 가지 않고 점점 다가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살레르노. 이 배의 종착지.


여기는 살레르노. 배의 목적지이다. 이전에 지나쳐온 곳들에 비해 훨씬 평탄한 지형과 많은 건물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만큼 덜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배에서 내리는 아쉬움은 있지만, 금방 또 새로운 기쁨이 있는 것을 알았다. 단체 관광에서 잡아 둔 식당이 얼마나 맛있겠냐 하는 마음으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투박하게 생긴 피자들은 꽤 맛있었다. 역시 로마만 아니면 웬만한 이탈리아의 음식점은 다 맛있는가 보군.


투박해 보이는 비주얼의 식당과 음식이었지만, 맛만큼은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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