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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Nov 02. 2016

두 번째 팔라우

자연 앞에 고개를 숙이다. 2010년 5월

꿈같은 팔라우 다이빙 여행을 다녀왔다. 세상에 이런 근사한 곳이 있다니.


그렇게 행복하면서도 아쉬움이 여운으로 남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여행사를 소개해 준 JungWon, Elly 부부를 만났다. 얼마나 팔라우가 좋았었는지 같이 얘기하고, 서로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 누가 무엇을 더 봤는지, 더 느꼈는지, 아쉬웠던 것도 얘기하고 다음에 가면 뭘 더 해 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면서 언제 다시 또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그러다 문득 JungWon이 호기롭게 말을 내뱉었다. "까짓 거 그냥 같이 한 번 더 가죠!" 이게 무슨 내기 당구 이번이 진짜 막판 몰아주기 한게임 더 어때요도 아니고.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 팔라우 여행을 그것도 커플로 그렇게 훌렁훌렁 맘대로 한 번 더 갈 수 있을 리 없을 건 또 뭔가!


빡세게 일해온 1년여의 시간이 아직 보상이 덜 되었던 것이지. 갚아야 할 빚이 좀 있긴 하지만 여행 한 번 더 간다고 대세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겠다. (어떻게든 핑곗거리를 합리화시키자.)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 갑작스런 갈등에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JungWon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만타가오리 함 봐야죠.


경제관념이 결핍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쿨한 결정 습관을 가진 나의 사랑스런 아내 Sophy는 이 얘기를 전해 듣자 티 없이 순수한 눈빛으로 "아이 좋아~"라며 당시로선 검소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개통 한 지 3년도 넘은 빨간색 크레이저(KRZR) 핸드폰의 달력 어플을 열었다. 그래, 아내가 핸드폰도 이렇게 알뜰하게 쓰니 그 돈 아껴서라도 여행 한 번 더 보내 주는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JungWon이 말을 꺼낸 그다음 날 우리는 다시 Angela강사님께 여행 일정을 문의하여 일사천리로 두 번째 팔라우 다이빙 여행 계획을 결정해 버렸다.


일정은 먼저번과 마찬가지로 주말을 이용한 4박 5일의 굵고 짧은 일정. 같은 일정으로 가는 사람들 중에는 지난번 첫 여행에서 같이 다녔던, 아기를 낳은 후 혼자 몸조리(?) 여행을 왔던 아이 엄마가 이번에는 남편과 시동생과 그 친구를 이끌고 다시 나타났다. (대단해! 그런데 아직 돌도 안 된 아기는 어쩌고...)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올 정도로 팔라우는 매력적인 곳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여행과 마찬가지로 밤을 새워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는 아주 잠깐 모자란 잠을 자고 여행의 첫날을 시작한다.


우리가 묵은 호텔. 영어로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중국어로는 무려 "해열대반점"


아쉽게도 지난번과는 달리 날씨가 흐리고, 이런 궂은 날씨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첫날의 피로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흐린 날씨의 바람과 뱃전을 때리는 바닷물을 얼굴로 맞으며 바다로 나갔다. 저 너머에서는 마치 버섯구름처럼 생긴 거대한 스콜이 퍼붓는 것도 보인다.


쏟아 붓는 비구름


첫 다이브 포인트는 저먼 채널(German Channel). 독일이 산호초를 긁어서 파 놓은 뱃길이 오늘날에는 만타가오리들이 오가는 지름길이 된 그곳. 지난번에 만타가오리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만회하려는 간절한 바람을 반영한 다이빙 일정인 것이다.


구름이 낀 날씨라 햇빛이 없는 데다 물 속은 부유물들이 많아 시야가 썩 좋지 않았다. 우리가 만타가오리를 기다리는 곳은 "클리닝 스테이션(Cleaning Station)"이라 부르는 곳으로, 물고기들이 제 몸을 청소하러 오는 곳이다.


이 곳에는 바닷속에서 청소부 역할을 하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어서 "손님" 물고기들이 오면 모두 모여 정성스럽게 온 몸에 붙은 때와 기생충들을 먹으며 청소해 주는 물고기들의 목욕탕 같은 곳이다. 그래서 청소를 받으러 오는 물고기들은 평소에 비해 차분하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예민해져서 이들을 보러 온 다이버들도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먼저 와 있던 다른 다이버들이 앉아 있는 모래밭에서 우리도 최대한 먼지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내려앉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렇게 앉아서 마냥 파란 물속만 한 20분 하염없이 보다가 떠났었는데. 이번엔 어쩌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다이버들이 가만있던 몸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 분위기는 분명 무언가 나타난 것이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더니, 파란색 물이 아닌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뭔가 나오긴 나왔다! 이정도로도 감사해야 하나?


오! 저것이 바로 다이버들이 그렇게도 바래마지 않는 만타가오리란 말인가. 누군가는 100회가 넘는 다이빙을 하는 동안에도 보지 못하고, 방송 촬영 때도 나타나지 않아서 애먹었다는 그 귀한 몸이 강림하셨다는 것인가! 저 너머에서 한 마리의 만타가오리가 너울대며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만타가오리의 우아한 날갯짓을 보고 있자니 귀에서 절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다른 만타가오리들이 더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멀고 흐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던 다이버들도 가까이 가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모양이었지만, 방문자로서의 룰을 지키느라 아쉽더라도 얌전히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이제 돌아가자고 보채는 현지 가이드 Jay. 지는 맨날 보니까 안 아쉬운갑지.


그렇게 먼발치에서나마 "나 팔라우에서 만타가오리 봤어."라고는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짧은 조우를 뒤로 하고 다이빙을 마치기 위해 일행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때 일행들이 뭔가 부산해졌다. 다이버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만타가오리가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크기가 작은 것이 아마도 어린 만타가오리인 것 같은데, 호기심에서인지 다이버들 사이로 들어온 모양이다.


이 "작은 손님"은 마치 우리에게 놀아달라는 듯이 다이버들 무리의 가운데로 들어와 맴돌았고, 다이버들은 환장한 듯 화답이라도 하듯 사진이랑 동영상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비록 한 마리의 작은 만타가오리였지만 친근하게 다가와서 우리랑 놀아주는 것이 아무 때나 가질 수는 없는 특이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돌아보니 만타가오리가 다이버들 틈 사이로 들어와 있었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그런데 만타가오리가 이렇게 작은 걸 보기도 흔치 않을텐데 그땐 그런 거 몰랐지


마치 대화라도 나눌 것만 같은 다이버와 작은 만타가오리


고가의 카메라들이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바다의 셀럽?


"귀찮은 녀석들..."


다이버와 빨판상어 둘 중에 어느 게 더 귀찮을까?


현지 가이드 Jay는 만타가오리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듯. 이제 떠날 시간


첫 다이빙이었던 저먼 채널에서의 다이빙은 날씨는 흐렸지만 우리에게 잊지 못할 근사한 추억을 안겨 주었고, 블루홀, 블루코너 역시 멋진 바다의 풍경을 보여 주었다.


블루코너의 파노라마 사진. 옛날 카메라로 찍어서는 열심히 이어붙인 노력의 산물


블루홀의  신비스런 고요의 공간


이번 여행은 지난번과는 다른 목표를 하나 잡았다. 팔라우의 다이브 포인트는 대부분 "코로르(Koror)"주에 속해 있는데, 그 보다 더 남쪽에 "페릴리우(Peleliu. "펠렐리우"가 맞는 발음이겠으나, 흔히들 "페릴리우"라고 말한다.)"라는 곳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곳은 좀 멀기도 하고 주 경계를 넘어가는 곳이라 환경세도 따로 내야 해서 일정 인원이 모이지 않으면 갈 기회가 잘 나지 않는 곳이라 한다.


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팔라우에서, 또다시 가기 어려운 곳이라 하니 더 가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지 금방 혹했다. 마치 마감 임박이 뜨는 홈쇼핑 채널을 보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처럼. 다행히 같은 보트를 탔던 다른 일행들도 페릴리우 가는 데 찬성을 해서 어렵지 않게 페릴리우로 가는 팀이 꾸려졌다.


페릴리우는 다른 포인트들에 비해 더 먼 곳에 있다. 그래서 좀 더 서둘러 출발을 했고, 더 오랜 시간 보트의 쌍발 엔진 소리를 들으며 파도를 헤치고 가야 한다.


페릴리우는 멀고 다른 주에 있고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 외에도 특별한 점이 또 있다. 산호초 안쪽에 있는 다른 포인트들과 달리 대양에 접한 곳이라 그런지, 지형이 원래 그런 곳인지, 조류가 상당히 강한 곳이다. 그래서 다이브 포인트 중에는 이름마저도 "페릴리우 익스프레스(Peleliu Express)"라는 곳이 있다. 물살이 너무 빨라서 바다의 고속도로라는 뜻인 것이다.


이제 겨우 초보 딱지는 뗐다고 어쭙잖은 자만심으로 '그래, 그 빠르다는 조류가 어느 정도 인지나 좀 볼까?'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우리 배에 같이 탄 다른 일행들은 경험이 많아 보이는 중년의 남녀들 무리였는데, "멋지게 한 번 타 보자구~~!"하면서 들뜬 분위기였다. 그 모습을 보니 긴장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이 부풀었다.


페릴리우는 팔라우의 남쪽 끝에 있는 꽤 먼 곳이다


페릴리우의 첫 다이브 포인트는 Yellow Wall이라는 곳이었다. 노란색 산호들이 벽을 덮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날이 흐려서인지, 시야가 좋지 않아서인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상상했던 노란색 벽은 보이지가 않았다.


작은 거북이 한 마리와 살짝 건드려 주면 "움찔!"하고 반응해 주는 대왕조개(Giant Clam) 정도를 봤을 뿐, 노란색 벽도, 거친 물살도 없는 그저 그런 바다라는 느낌? 뭐가 이렇지? 듣던 거랑은 다르잖아? 기대가 컸던지 아쉬움 역시 컸고, 별 감흥이 없었던 첫 다이빙은 새록새록 움트고 있던 기대감을 허황된 오만으로 키워버렸다.


Jay가 대왕조개를 슬쩍 건드리자, 꿈찔!하고 살아있다는 반응을 해 준다. 가이드들이 관광객을 위해 약간씩 만지긴 하지만, 웬만하면 물 속에서 무언가를 만지는 것은 삼가도록 하자


두 번째 다이빙이 바로 "페릴리우 익스프레스"! 신나게 타 보자고 했던 그 조류 포인트다.


입수를 하기 전에 여러 가지 주의 사항들을 얘기해 줬다. 조류가 강하기 때문에 수면에서 머물 수 없어서 입수를 하자마자 바닥까지 내려가서 전진해야 한다고 한다. 중간에는 조류가 갈라지는 부분이 있어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일행과 떨어져 다시 만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듣다 보니, 피어나던 자신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마치 작전에 투입되는 특수 요원이라도 된 것 같은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다.


입수 준비가 되자 경험 많아 보이던 팀부터 하나둘씩 입수를 시작했다. 나랑 Sophy는 입수 준비가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라 결국 맨 마지막으로 입수를 했다.


입수를 하고 보니 앞에 입수했던 사람들은 이미 저만치 열심히 핀 킥을 하면서 앞서 가고 있었다. 입수 전에 들은 지시대로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Sophy를 찾으러 고개를 들어 보니 Sophy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수면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지금까지 매번 Sophy를 괴롭히던 문제가 바로 하강이 안 되던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여전히 그러고 있었다. 맨 마지막에 입수한 Jessy 강사님이 Sophy가 내려올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줬지만,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앞 팀은 이미 조류를 거슬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고, 우리는 그 반대 방향의 조류를 타고 더 멀어져 버린 상태였다.


말로만 듣던 "익스프레스 급" 조류는 엄청났다. 어렵게 바닥에 내려와 나와 Sophy, Jessy 강사님 셋은 떠내려 가지 않도록 바닥의 돌을 붙잡고 있어야 했고, 우리가 내뿜는 공기 방울이나 머리카락은 마치 뉴스에서 보던 초특급 태풍에 휘청거리는 나무처럼 거의 수평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일행이 갔던 방향으로 움직여 보기 위해서 잡고 있던 손을 뻗어 마치 암벽 등반이라도 하듯 바닥의 돌을 잡아가며 전진을 시도해 봤지만, 조류는 그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거셌고, 그런 조류 때문인지 평평한 바닥에는 더 이상 잡을 바위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머물러 고민하기를... 얼마였을까? 그리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Jessy 강사님은 손과 눈으로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조류를 타고 떠내려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모두들 동시에 손을 떼고 조류에 몸을 맡겼다. 내가 타고 떠내려 갔던 그 조류가 진짜 페릴리우 익스프레스의 진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감인지 자만인지 알 수 없는 초짜의 그 어쭙잖은 마음이 얼마나 하찮고 부질없던 것이었는지 깨닫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으론 무서웠지만 그래도 Jessy 강사님이 옆에 있으면 괜찮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어서 안심도 되었다.


나의 한 손은 여기서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Sophy를 꼭 붙잡고 있었고, 한 손으로는 이 순간이 또 아까워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몰디브에서 폭풍우를 동영상으로 찍었던 그 마음처럼 이번에도 조류를 타고 떠내려 가면서 페릴리우 바닷속의 황량한 풍경과 거센 조류의 느낌을 동영상으로 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Jessy 강사님은 우리를 얼마나 철없는 사람들로 봤을지!


떠내려가는 와중에 찍은 조류타기. 옛날에 찍은 거라 화질도 색깔도 앵글도 시원찮다


Jessy 강사님은 상승을 위해 SMB(Surface Marker Buoy. "소시지"라고도 불리는 빨간색 또는 노란색의 안전 표지용 부표)를 수면으로 띄웠고, 그렇게 떠내려 가다가 수분만에 우리는 수면으로 떠 올랐다.


물밖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세차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수면의 파도 역시 거칠었다. Jessy 강사님이 SMB를 세워 들고 배가 우리를 발견해 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SMB를 들어 배를 부르는 Jessy 강사님. 그때 강사님 마음이 어땠을지 지금은 대충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이런 애송이들을 데리고 이런 데를...'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배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비바람과 파도는 잦아들지 않았다.


이쯤 되니 정말 두려움이 밀려왔다. 설마 배가 우리를 못 찾는 건 아니겠지? 바다가 더 거칠어지면 배가 못 오는 건 아닐까? 여기는 배들도 잘 안 다니는 먼 바다인 것 같은데...


마침내 세찬 빗줄기 너머로 어렴풋이 무언가 보이더니 우리 앞에 구세주와 같은 배가 나타났다. 희한하게도 배에 올라타자마자 안도감이 들어야 했을 텐데, 구토부터 나왔다. 아침에 먹었던 방울토마토 껍질들이 그대로 나와 거친 페릴리우 바다를 떠내려 갔다. 솔직히 페릴리우로 오기 전부터 아침 먹은 게 소화되지 않아 계속 불편했었던 건데, 페릴리우 조류에 휩쓸리고 폭풍우에 출렁거리고 나니 버티지 못하고 나온 모양이다.


하아... 궁금해하면서도 모험심을 북돋아 주었던 페릴리우의 다이빙은 그렇게 끝났다. 오후에도 한 번의 다이빙을 더 했었지만, 별다른 기억이 없다. 경험 많아 보이는 다른 그룹을 따라갔던 JungWon, Elly 부부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열심히 헤엄쳐 갔지만, 거친 조류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한다.


JungWon, Elly 부부가 다녀온 원래의 목적지. 그냥 이러고 있다가 왔단다. 폭풍 속에 내던져진 느낌이었을 듯


우리는 모두들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스쿠버다이빙이 힘들 수도 있다는 데 동의했고, (그동안 너무 좋은 데서만 다이빙 했었으니) 이렇게까지 힘든 다이빙을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얘기까지도 했더랬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JungWon이 얘기했다. "우리 100회 다이빙 기념으로 한 번 더 옵시다. 그때는 지금보다는 좀 나아져서 오겠지." 이것 참 솔깃한 얘기로군!


훗날 100회도 훨씬 넘은 실력으로 많은 베테랑 다이버들과 함께 다시 찾은 페릴리우는 여전히 자연의 거대한 위력에 비하면 제 아무리 경험 많은 다이버라도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때가 참 철없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줬을 뿐.

한편, 국내 최고 수준의 관록을 자랑하시는 분은 본인이 갔었던 페릴리우가 세계 최고의 다이브 포인트라고 얘기하신다. 전해 듣기로는 아주 가끔 페릴리우에 엄청난 이벤트가 벌어지는 때가 있다고 하는데, 그 경험 많은 분이 도대체 무얼 보고 오셨길래 그렇게 얘기하시는 건지 궁금증만 커질 뿐,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아직 듣지는 못했다.


페릴리우를 다녀온 김에 페릴리우가 어떤 곳인지를 찾아봤다. 인터넷에서 "Peleliu"라고 검색하면 Peleliu보다 위에 뜨는 검색 결과가 "Battle of Peleliu"라고 나온다.


페릴리우는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로, 섬 자체보다 전투가 더 유명할 정도로 커다란 상흔을 가지고 있는 섬이었다. 페릴리우 섬을 두고 일본과 미국이 2달 동안 공방을 펼치면서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과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우리야 그냥 바다에 떠서 다이빙 하고 도시락을 먹으며 평화로운 망중한을 즐기다 왔지만, 그렇게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가 끔찍한 전장으로 변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조류 다이빙을 알아보자


조류 다이빙이란 조류를 타는 다이빙으로, drift diving이라고도 합니다. 팔라우에서 배를 같이 탔던 경험자 그룹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바닷속을 구경하는 것보다 조류를 타는 것 자체를 더 즐기려고 하는 다이빙입니다.


일반적인 다이빙에서 조류를 만나면 약한 조류의 경우는 거슬러 헤엄쳐 갈 수도 있지만, 조금만 강한 조류라도 사람의 힘으로 이를 거슬러 가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조류 다이빙은 아예 조류가 센 곳을 찾아서 다이빙을 하는 것으로, 온전히 조류의 힘에 의지해서 다이빙을 합니다. 그래서 입수를 한 지점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수를 하며, 배가 다이버들이 올라올 곳을 알고 데리러 와야 합니다.


거센 조류를 탄다는 사실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조류 다이빙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경험과 실력, 장비, 환경 그리고 안전한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팔라우의 페릴리우에서 계획된 곳으로 가지 못하고 일행과 떨어져 조류에 떠내려 갔고, 설상가상으로 물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다행히 이 다이빙을 계획한 다이브 샵은 충분히 경험이 많고, 일행과 떨어진 다이버들이 어느 방향으로 떠내려가서 물 위로 나올지 대충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만일 경험 많은 강사님이 같이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와 Sophy는 큰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릅니다. SMB를 물 위로 띄우고 조류를 따라 천천히 상승할 수 있었던 것도 강사님의 경험과 침착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조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다이버들의 컨디션도 바뀌기 때문에 무리와 떨어지는 상황도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무리와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전에 공유도 잘 되어야 하고, 또 다이버 역시 이를 잘 이행할 정도의 경험과 실력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먼 바다에서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GPS가 딸린 송신기를 휴대하기도 합니다.


스쿠버다이빙용 GPS 송신기. 먼거리의 배에까지 내 위치를 전송할 수 있다


조류 다이빙은 분명 위험 요소를 많이 가지고는 있지만, 다이버들에게 흥분을 안겨줄 만큼 짜릿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광활한 대양 속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은 아무나 겪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경험일 뿐만 아니라, 대자연을 고스란히 내 몸으로 느끼는 경외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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