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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Dec 08. 2016

보홀과의 첫 만남

나에게는 마음의 고향. 2010년 7월

어디선가 필리핀 보홀이 그렇게 좋은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스쿠버다이빙 얘기를 하다가 들은 얘기였을 테니, 스쿠버다이빙 하기에 좋은 곳이었겠다.


회사에 친한 형이 얼마 전에 보홀 다녀 왔댔는데 마침 지나가다가 마주쳐서 물어보니, "좋아."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제갈길 바쁘다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인터넷으로도 좀 찾아볼까 했는데, 없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보홀에 대한 여행기가 그다지 많지 않아 썩 만족스러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다시 Angela 강사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것저것 알아보려 했던 시간과 노력이 무색하게 내가 원하던 정보들이 바로 나와 버렸다. 그리고 금방 적당한 일정을 잡아 주신다. 나 혼자 알아서 뭔가 잘 못한다는 건 이미 밝혀졌고, 전문가가 잡아주는 일정이 아무래도 더 믿을만할 테니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번에도 JungWon, Elly 부부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지난번 엘니도 여행에서 혼쭐이 났던 것이 혼자 여행하는 데 주저하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보홀로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마닐라를 거쳐서 가야 한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여 국내선 청사로 가기 위해서 바깥으로 나오자 필리핀의 후덥지근한 공기에 숨이 답답해 올 지경이었지만, 이것이 또한 열대 기후의 나라에 왔다는 증거로는 제일 직접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마닐라 공항에서 보홀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는다. 그렇다고 공항 밖에는 딱히 갈 곳이 있지도 않아, 그냥 시원한 공항 청사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요즘이라면 스마트폰으로 놀겠지만, 뭐가 됐든 이렇게 남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무언가는 준비되어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닐라 공항의 실내. 딱히 할 일이 마땅치 않다.


이윽고 비행기 시간이 되어 필리핀 국내선을 타고 보홀로 향했다. 비행기는 국내선이니만큼 좌석도, 서비스도 특별히 기대할 건 없다. 그냥 앉아 있다가 별 탈 없이 도착지에 잘 내리면 만사 OK. 그래도 잠깐은 눈을 붙여서 쪽잠을 잤나 보다.


비행기는 보홀의 공항, 그러니까... Tagb...?? 뭐? 뭐라고 읽는 거야? 이게 공항 이름인가? 공항 이름이라고 걸려 있는 것이 Tagbilaran이었는데, 한눈에 뭐라고 읽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여기가 보홀의 주도인 "딱빌라란"이라고 한다. 아무튼 비행기는 생판 처음 들어보고 아직은 입으로 발음하기도 어색한 보홀 딱빌라란에 도착했다.


공항 이름을 오면서 몇 번은 들어 봤겠지만, 글자로 보니 읽을 수가 없다. "Mabuhay"야 "Welcome"이랑 같은 뜻일테고.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를 걸어서 청사로 이동한다. 주변은 푸른 나무와 풀들. 거대하고 현대적인 인천공항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부담 없는 것이 꼭 대학 때 한 번 이용해 봤던 포항의 작은 공항 느낌도 나서 첫인상이 좋다.


그렇게 청사를 들어왔더니, 어라? 이건 정겹다고 하기엔 신선하지만 뭔가 좀 당혹스럽네? 수하물 수취대라고 있는 것이 자그마하게 한 바퀴 돌아가는 벨트가 있고, 사람들은 여기에 서서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를 바라만 보고 있다. 공항의 직원들이 작은 카트를 몰고 다니며 비행기로부터 짐을 꺼내 실어서 수취대의 벨트에 얹는 것까지 그대로 볼 수 있다. 물론 벨트에 얹어지기 전에 카트에서 본인의 짐을 챙겨 가는 사람들도 많다. 여행을 얼마 다녀보지도 못했고, 그나마도 큰 곳만 다녀본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은 신기함이었다.


혹시라도 내 짐이 "짐짝" 취급 받으면서 실려 오는 건 아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건 장점이려나?


더운 나라에, 위에서 얘기한 수하물 수취대는 건물 안쪽이었지만 활주로 쪽이 트여 있었기 때문에 거의 실외랑 마찬가지인 데다가 에어컨도 없어서 짐을 찾아 나오자 이미 온몸은 땀에 젖어 버렸다.


하지만 다행히 출구를 나서자마자 우리를 픽업하러 온 리조트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작은 미니버스는 무더위를 피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빵빵하게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 바람은 열대 기후의 느낌을 전해주려는 듯 축축하게 이마를 훑고 지나갔다.


딱빌라란 공항의 탑승 구역. 지금은 에어컨이 있지만 예전에는 선풍기로 더위를 식혀야 했다.


공항 앞에 대기하고 있는 "트라이시클". 매일 저녁 우리의 발이 되어 줄 교통수단이다.


필리핀의 느낌은 처음 갔던 태국이나, 두 번을 연거푸 다녀온 팔라우나, 울창한 숲들, 덥고 습한 공기, 하릴없이 어슬렁 거리는 가무잡잡한 피부의 현지 주민들의 모습들이 외지인인 내 눈에는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알록달록 화려하게 치장한 버스들이었다. 지프니라고 부르는 버스인데, 원색의 채색과 치렁치렁 달아놓은 장신구들이 소박하고 허름해 보이는 동네 분위기와는 달리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리조트 뒷마당에 있던 지프니.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공항에서 리조트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보홀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호텔이라는데, 초호화 호텔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깔끔하고 근사한 외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텔은 우리의 숙소일 뿐이고, 우리의 이번 여행을 책임질 곳은 호텔에 딸린 다이브 샵으로,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 중인 곳이다.


이 다이브 샵은 스쿠버/프리다이빙을 주제로 한 웹툰 "로그북"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


호텔에서 바다 쪽 길을 따라가다 보니 근사한 다이브 샵이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는 일본인이 운영 중인 샵이라 한다. 좀 더 가니 아까 본 샵보다는 조금... 작은... 다이브 샵이 나타났다. 아직은 열심히 성장해 가는 다이브 샵인 듯 보였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평화로운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아늑하고 편안했고, 한국인 사장님은 밝은 인상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간단히 리조트와 다이브 샵 주변, 앞으로의 스케줄을 안내받은 후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다이브 샵 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리조트 앞에 가서 트라이시클을 타고 "시내"의 "BQ mall"로 가 달라고 얘기했다.


한 대여섯 살 때쯤 동네 친구가 자기네 형이 운전하면 뒤에 타고 다니는 걸 부러워했었을 것 같은 "빠등빠등빠드드드드등~" 소리를 내는 소형 오토바이를 택시처럼 타고 다니는 것이 이 동네의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태국에서 새벽부터 타고 다녔던 "툭툭"이 트라이시클에 비하면 모범택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곳의 현대 문명은 아직 우리의 2-3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트라이시클을 타면 원하지 않아도 방황하는 청춘이 될 수 있다.


오래지 않아 도착한 시내의 중심가는 쇼핑몰도 있고 사람들도 많아서, 말하자면 "읍내" 같은 분위기이긴 했지만, 여기가 보홀이라는 결코 작지만은 않은 섬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라고 하니, 과연 우리가 시골스러운 곳에 오긴 왔구나 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전제품 상점의 TV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흘깃하고 보니, 권투 중계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예전 우리나라에서 홍수환 챔피언의 경기를 보던 모습과 판박이가 아닌가. 여기도 뭐 그런 선수가 있나 보다 하고 서둘러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발을 옮겼다.


알고 보니 필리핀 출신의 전설적인 복서 파퀴아오 선수의 권투 경기였다. 그때는 파퀴아오 선수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었다.


쇼핑몰 안은 보홀에서 가장 현대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곳임에 틀림없어 보였지만, 곳곳에 걸려 있는 브랜드 간판은 혹시 한 글자가 빠진 건 아닌지,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게 맞던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이런 어색하고 세련되지 않은 일상의 모습도 한편으론 아직 정겨움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결국 저녁 식사로 택한 것은 무난한 피자가게.


보홀에서 최고로 Hip한 Place BQ Mall. 이때 이미 우리의 마음 속에 저녁 메뉴는 피자로 정해졌었던 것 같다.


보홀에서 이 이상의 휘황찬란한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보홀 가는 길


보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인기 있는 필리핀 세부의 남동쪽에 있는 동그란 섬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부속 섬 같은 느낌이지만, 면적으로 치면 제주도의 2배 정도 되는 큰 섬입니다.


세부에서 매우 가까운 섬이지만 우리나라 관광객에게는 세부가 엄청난 인기 관광지인 반면에 보홀은 아는 사람만 가는 시골 섬 같은 곳입니다.


최근에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팡라오 섬 등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리조트가 속속 들어서는 등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어 머지않아 우리나라와 직항편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세부와 보홀의 지도. 세부에서 배를 타고 보홀의 딱빌라란까지 오려면 섬을 반쯤 돌아서 와야 한다.


보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솔직한 마음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곳의 하늘과 바다를 혼자 간직하고픈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본연의 모습이 훼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입니다.


보홀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두 번의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으로,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보홀의 딱빌라란에 도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인천에서 세부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다음 여기서 배를 타고 보홀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아직 보홀로의 직항이 없기 때문에 두 방법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 6월부터 인천-보홀 직항 노선이 생겨, 이제는 직항을 이용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두 방법은 극명한 장단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비용의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비행기를 두 번 타는 쪽이 비용이 조금 더 많이 듭니다.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20-30만 원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케줄이 차이가 납니다. 비행기로 가는 방법은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보통 아침에 인천을 떠나 마닐라 공항에서 어중간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오후에 보홀행 비행기를 탑니다. 그래서 저녁밥을 먹을 즈음에 도착하게 되는데, 결국 하루를 온전히 이동에 쓴다고 봐야 합니다. 귀국할 때도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세부를 통해 배를 타고 오는 방법은 밤도깨비 같은 일정이 됩니다. 인천에서는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떠나서 세부에는 밤늦게 도착합니다. 한국 관광객들은 주로 현지의 한국인 마사지샵을 통해 픽업과 숙박, 배 티켓 구매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그러고는 늦은 저녁에 마사지샵에 도착하여 가볍게 마사지를 받거나 쪽잠을 자고 새벽 일찍 페리 여객 터미널로 가서 배를 탑니다. 그래서 보홀에 도착하면 아침이 됩니다. 즉, 조금만 서두르면 저녁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은 보홀에서 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피곤한 몸을 감수할 수 있다면 말이죠.


배를 타고 가려면 주로 한인 마사지샵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비용과 일정에 여유가 있고 몸이 좀 편안하기를 원한다면 비행기로 가는 일정을 추천합니다. 그래도 역시 돈을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면, 또는 하루라도 쥐어 짜내서 휴가를 다녀와야 하는 처지라면 어쩔 수 없이 새벽 시간을 활용해서 배를 이용하는 일정을 택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본 보홀의 독특한 지형. "초콜렛힐"이라고 불리며 대표적인 보홀의 관광지이다.


세부와 보홀을 오가는 배는 대략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됩니다. 이 배에는 비즈니스 객실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밤새 달려온 길이기 때문에 피곤한 몸인데, 일반 객실에서는 쉬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비록 돈을 아낄 요량으로 배를 택했다 하더라도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것을 강하게 권합니다. 참고로 비즈니스 객실의 에어컨은 냉동 화물칸에 들어온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강하니, 충분히 바람을 막고 보온할 수 있는 겉옷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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