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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an 04. 2017

아늑한 보홀의 바다

새 카메라 들고 신남. 2010년 7월

이번 여행에서는 지난번과 달라진 것이 있었으니, 새로운 카메라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번 팔라우 투어에서 다른 분이 가져온 동영상 촬영장비가 너무 부럽기도 하고, 앞으로도 나에게 쓸모가 있을 것 같아 하루에 12번씩 고민하다가 결국 장만한 것이다. 


최고급 전문 장비에 비하면야 보잘것없어 보이는 소소한 장비이지만, 아직 초보티를 벗지 못한 나에게는 적당한 가격과 효용성을 가진 장비라고 애써 스스로를 설득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같이 주문한 컬러 보정용 레드 필터가 아직 오지 않아 가지고 오지 못했다는 것. 그래도 새로운 장비로 동영상을 촬영한다는 기대가 보홀에서의 첫 다이빙을 더욱 설레게 했다.


큰맘 먹고 장만한 캠코더 방수 하우징. 아이좋아아이좋아아이좋아


보홀의 다이빙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좋다는 얘기를 들은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물론 이때도 여전히 이제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때라 보홀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보홀의 가장 유명한 다이브 포인트는 발리카삭 (Balicasag) 섬이다. 


보홀 본 섬의 남쪽에 작게 붙어 있는 팡라오 (Panglao) 섬 주변이 유명 다이브 포인트이고, 팡라오 섬 남쪽에 또 작게 붙은 섬이 발리카삭 섬인데, 이 주변의 포인트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다이브 포인트이다. 그래서 많은 다이브 샵들이 팡라오 섬에 있는데, 우리가 이용하는 다이브 샵은 보홀 본 섬의 딱빌라란에 있어서 팡라오 섬이나 발리카삭 섬까지 가려면 배를 타고 30분 정도를 가야 한다.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을 꼽는다면, 팡라오 섬에서 출발하는 다이빙은 보통 그 주변만 도는데, (굳이 다른 데 갈 필요가 없다!) 딱빌라란의 다이브 샵에서는 팡라오 섬에서는 잘 오지 않는 주변의 바다를 가 볼 수 있다는 점? 하지만 그런 장점을 깨닫기에는 우린 너무 경험도 일천하고, 그냥 그곳이 어디든 바닷속만 구경하는 것으로 다 좋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딱빌라란 주변의 Cabilao나 팡라오 섬 북쪽의 Napaling 이런 곳들은 팡라오 섬에서 출발하는 경우에는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보홀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다이빙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묵는 곳이 현지의 "최고급" 호텔임을 실감할 수 있게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먹는다. 깨끗하고 여유로운 아침의 풍경과 공기를 느끼며 럭셔리한 느낌의 아침을 먹을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한 가지 복병이 있었으니, 명색이 호텔 직원인데 서비스가 영 매끄럽지가 않다.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라곤 거의 우리 밖에 없었는데 서빙도 잘 안 오고, 뭔가 우리가 주문을 해도 몇 번을 되물으러 온다. 되물었으면 그만한 보람이 있어야 할 것을, 우리의 인내심이 바닥날 지경이 되도록 음식은 나오지 않고, 다시 직원을 불러 물어보면 그제서야 주방에 가서 주문을 넣고 나와야 할 것을 가져오는 식이다. 


참자 참아, 부들부들... 우리가 일찍 나왔으니 그렇게 급하게 굴 필욘 없지. 우린 여유 있는 여행자에 걸맞은 품격을 지키려고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 했지만, 결국에는 "이리 게으르고 일을 못해서야 어찌 장사를 하려고 그러냐~" 하는 한탄이 나오고야 말았다. 대충 뉘앙스가 전달은 됐겠지만, 과연 더 나아졌을지는 의문이다.


호텔 직원들보다 참새들이 더 부지런해 보인다.


다이빙의 하루는 항상 "브리핑"이라고 부르는 일정과 지역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다이브 포인트의 이름부터 지역적 특성, 눈여겨볼 만한 수중 생물이나 환경, 날씨, 조류,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려준다. 우리의 다이빙은 "다리우스"라는 이름의 강인해 보이는 인상의 다이브 마스터가 안내를 해 주기로 하였다.


웨슬리 스나입스보다 잘생긴 우리의 가이드 다리우스. 오늘의 다이빙을 설명 중.


필리핀의 배는 "방카"라고 부르는데, 배 양쪽으로 날개처럼 지지대가 나와 있다. 그래서 거친 바다나 태풍에도 배가 뒤집히지 않고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꼭 어릴 때 타는 네발 자전거 같다고나 할까? 


다이브 포인트까지 배가 움직일 때는 배의 큰  몸통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엔진의 소음 때문에 얘기를 나누기도 어렵고 잠이 들기도 쉽지 않은데 방카의 날개 지지대가 물을 가르는 모습이라도 멍하니 바라볼 거리가 되어 준다.


필리핀의 전형적인 보트인 "방카". 다리우스는 선글래스를 쓰니 더 웨슬리 스나입스 닮았다.


좋다는 말만 들어보고 기대 만발한 보홀의 바다 속은 어떤 모습일까? 첫날의 다이빙이기 때문인지 엄청난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깨끗하고 아름답고 또 포근하다고 해야 할까? 불편하거나 어색함도 없이 마치 늘 있어왔던 곳이었던 것처럼 아늑한 느낌의 바다다. 


그 와중에도 처음 들고 온 카메라를 이것저것 만져보느라 번잡스럽긴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찍힌 사진을 보니 편안하고 포근하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 뿐, 여전히 카메라 만지느라 이것저것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어쩌리, 새로 장만한 HD 캠코더로 수중 동영상을 찍는 건데 어찌 아니 기쁘겠는가! (그때는 HD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캠코더가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할 시기였다.)


모래 바닥에서 오물조물거리던 Velvet Sea Slug. 손가락 만 한데 저 파란 줄무늬가 아주 예쁘다.


Bubble Coral과 Orangutan Crab. Crab(게)이 잘 안 보인다구? 아래 사진을 보자.


털이 부숭부숭한 손톱 크기의 Orangutan Crab. 가이드가 찾아주지 않으면 도무지 볼 수 없다.


흔해 보이지만 언제나 귀여운 니모(Clownfish. 정확히는 False Clownfish)


화려함 속에 날카로운 무기를 숨긴 Lionfish. 건드리면 큰일 난다.


보홀 앞바다에서 언제나 볼 수 있다는 거대한 거북 (Green Turtle)과 위에 붙은 빨판 상어.


다이빙을 마치고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오니 다이브 샵에서 근사한 저녁을 차려줬다. 옆의 일본인 다이브 샵 보다는 작고 덜 세련됐지만, 우리가 이용하는 다이브 샵은 오히려 작아서 아담하고, 정겹다고 해야 할까? 


다이브 샵 한 켠의 주방에서는 수줍은 듯이 어색한 미소를 보이는 필리핀 직원들이 어둑해진 주방문으로 드나들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허기진 위장을 채워 줄 음식들이 나오고 있었다. 음식들이 소박하지만 부담 없고 맛있다. 


나는 외국을 나가면 현지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맛깔난 한국 음식을 필리핀 사람들이 만들어 주면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침의 호텔 조식에서 겪었던 답답함까지 비교하면 이렇게 먹는 저녁은 그야말로 환대라고 할 수 있겠다.


저녁 먹기 전에 찍은 포근한 색감의 보홀의 석양




수중촬영을 생각해 보자


물속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물속 풍경을 직접 찍는 즐거움과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찍는다는 즐거움을 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 후에도 기억을 간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행 사진만으로도, 물놀이 사진만으로도 친구들한테 자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껀수인데 스쿠버다이빙하는 사진이라뇨! 이건 엄청난 자랑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물속에서 촬영을 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물 밖에서 사진을 찍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갔으면 합니다. 챙겨야 하는 장비도 다르고, 사진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을 찍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주의사항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동안에는 주변 상황을 인식하기 어렵고, 수심 조절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칫하다간 위험 생물을 건드리거나 생각지도 않게 깊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수중촬영은 "수중사진가 (Underwater Digital Photographer)"라는 이름으로 스쿠버다이빙 교육 과정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수중촬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좋은 사진을 더 안전하게 찍을 수 있는 많은 지식과 기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육 이수의 여부를 떠나서라도 수중촬영이 지금까지의 물 밖에서의 촬영과는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하고, 항상 안전을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초보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일의 상위를 차지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초보 시절에는 자기 한 몸 가누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다"라는 짧은 말 속에는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메라의 전원을 확인하고 피사체와 구도를 정하고 위치를 잡고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를 터뜨리고 찍은 결과물을 확인하고 카메라 기능을 조작하고 다시 시도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방수 하우징에 들어가 있는 카메라를 조작하는 것은 항상 생각처럼 되지는 않으며, 여러 가지 오동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때는 카메라를 만지느라 많은 시간과 움직임과 공기를 소모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수심 유지를 하지 못해서 가라앉거나 떠 오를 수도 있고, 산호나 바위 위로 떨어진다든지, 잠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꽤 긴 시간) 카메라에 신경을 뺏기고 있는 동안 동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보 다이버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수중촬영은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팔라우에서 카메라를 들고 설치던(?) 내 모습. 가이드가 떠오르지 않게 잡아 주지만 정작 본인은 사진 찍느라 본인이 어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멋있고 재밌는 장면을 많이 놓치게 됩니다. 많은 것을 보고 즐겨야 하는 초보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세요. 게다가 초보 시절에 찍은 사진은 나중에 보면 왜 찍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사진만 잔뜩 만들게 됩니다. 함께 간 다이브 마스터가 사진을 많이 찍어 줄 것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일단은 만족하고, 좀 더 경험과 실력을 쌓은 후 사진에 입문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계륵같은 사진들. 나중에 보면 뭘 찍은 건지 모르거나, 알아도 썩 감동적이지 않은 사진들이 양산된다.


그래도 사진을 찍고 싶다면 누가 더 말릴 수 있겠습니까. 초보라도 경험을 쌓으면서 커 가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항변한다면 굳이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수중 촬영을 생각할 때 시작부터 갈림길이 생깁니다. 사진이냐 아니면 동영상이냐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소위 똑딱이라고 하는 콤팩트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우 대부분 동영상보다는 사진을 찍습니다. 간혹 동영상을 찍는 경우도 있으나, 모드를 바꿔가며 동영상을 찍는 일은 좀 번거로운 일입니다. 


한편 최근에는 고프로와 같은 액션캠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아예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본인이 사진을 주로 찍을지, 동영상을 주로 찍을지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은 간편하다는 것입니다. 찍기도 간편하고 보기도 간편합니다. 어떤 한순간에 사진을 찍고,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하나의 장면에 여러 번 셔터를 누를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을 보기에도 한눈에 쉽게 볼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프린트를 해서 특별한 기념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반면, 동영상은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전후의 시간적인 상황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사진에 비해서 훨씬 더 역동적이고 화려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물고기 무리의 유영이라든가, 일렁이는 말미잘의 움직임, 같이 다이빙을 한 친구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동영상으로 찍는 것은 사진의 순간 포착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고화질의 사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동영상으로부터 정확한 타이밍을 추출해서 사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사진을 찍는 것에 비해서 큰 장점입니다.


단, 동영상은 고려해 봐야 할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사진과는 반대로 간편하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찍을 때도 흔들림 없는 촬영을 위해 몸을 가눠야 되고, 찍는 동안은 계속 화면을 주시하게 됩니다. 


찍은 후에 보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완전히 중요한 부분을 찍은 것이 아니라면 실제 다이빙 시간에 맞먹는 시간을 다시 동영상을 보는 데 할애해야 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 주며 만족스러운 리액션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좋은 동영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정리하고 추출하고 또다시 정리하는 등의 편집의 수고가 더해져야 합니다. 고화질일수록 더 많은 저장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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