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버다이빙-30 | 세상은 아직도 새로운 것이 가득 | 2012년 10
어둡고 험한 길을 와서는 일단 자고 아침에 보자는 마음으로 자고 일어나 보니 밀항(?) 비슷한 느낌으로 온 곳 치고는 너무 평온하고 근사한 곳이다.
이곳 말라파스쿠아 섬은 "환도상어 (Thresher Shark)"를 보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이렇게 자신있게 처음 와 보는 곳이라 했던 것. 그러면 그 환도상어라는 것은 어떤 생물인 걸까? 남들보다는 그래도 상어라는 생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환도상어라는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니, 궁금증이 폭발했다. "쟤가 바로 환도상어예요." Angela 강사님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리조트 식당 벽에 크게 그려진 바닷속 풍경이었다. 거기에 과연 이 섬의 자랑거리인 만큼 주인공처럼 가장 크게 그려져 있었다. 응? 하지만 이게 뭐야? 다른 생물들은 그래도 꽤나 그럴싸하게 잘 그려져 있는데, 왜 주인공인 환도상어는 이렇게 이상하게 그려져 있는 거지? 귀엽게 그리려고 한 거라 생각하기에도 다른 생물들과는 괴리가 느껴지고, 백번 양보해서 귀엽게 그리려 한 거라 생각해도 썩 귀여운 모습이라기엔 동의하기 어려운 얼굴인데?
환도상어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꽤나 정성을 들여야 한다. 환도상어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상어"의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조심성이 많아, 말하자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생물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환도상어를 보기 위해서는 환도상어가 살고 있는 서식지 근처를, 그것도 활동하는 시간에 맞춰 매우 이른 시간에 가야 한다고 한다.
환도상어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 모두들 새벽 4시 반부터 움직이기로 했다. 채비를 하러 나오니, 이것은 마치 처음 여기 도착했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의 아무런 빛이 없는 어둠이 깔린 시간이었다. 다이빙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은 플래시를 들고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보다 훨씬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했는지, 우리가 나설 때는 이미 준비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런데 스태프의 얘기를 들으니, 우리가 생각지 못한 장애물이 있었다. 오늘 날씨가 썩 좋지 않아, 평소에 나가던 해변에서는 배를 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해변의 반대쪽 해변으로 가서 배를 타야 한단다. "그러면 거기까진 어떻게 가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배달용으로도 안 쓰일 것 같은 작고 낡은 스쿠터에 한 명씩 태워서 날라 주겠단다. 으허허. 시작부터 박진감이 넘치겠구만!
한 명씩 한 명씩 작은 스쿠터를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대체 저 어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력까지 자극한다. 시간도 하염없이 긴 것 같고... 그러다 저 멀리서 "빠다다다다다당" 하는 소리가 들리며 스쿠터가 나타났다. 아까는 사람이 타고 있었던 뒷자리는 빈 채로. 아마도 역시 "처분"하고 온 것인가?! ㄷㄷㄷ
뒷자리에 올라타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이 마른 현지 스태프의 허리를 붙잡고 스쿠터가 출발하자, 거친 돌바닥의 요철이 엉덩이에 그대로 전해진다. 하늘은 밝아질 기미는 안 보이는데 날씨까지 궂어서 어디를 달리고 있는 건지도 분간이 안 간다. 그저 스쿠터가 휙휙 방향을 틀면 눈 앞으로 나뭇가지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느껴질 뿐.
그래도 배에 다다르니 앞서 온 사람들 모두 들뜬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무사히 배로 왔다. 배가 출발할 때쯤 되니 아직 궂은 하늘이지만 앞이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우리가 가는 곳은 "모나드 숄"(Monad Shoal)이라는 이름의 포인트. 환도상어들이 사는 곳이다. 역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이런 이른 시간에도 우리보다 먼저 온 배들이 보인다. 입수하기 전에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이 동네 터줏대감처럼 보이시는 할아버지 가이드의 브리핑이 있었다. 우리는 오직 환도상어를 보기 위해 여기 온 것이라 입수하자마자 바로 아래로 내려갈 거란다. 그리고 여기서 운이 좋으면 환도상어를 만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만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단다. 공기가 다 떨어질 때까지. 운이 좋게 환도상어를 만났을 때도 주의해야 한다. 이 녀석은 굉장히 조심성이 많고 예민해서 분위기가 이상하면 도망가 버린단다. 그래서 절대로 바닥에서 떨어져 떠 있다든가 환도상어를 쫓아가서는 안되고, 어둡지만 플래시 사용도 금지이고, 사진도 자연광 그대로 찍어야 한다. 흠, 그래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길래 이렇게 비싸게 구는지 보고 싶구만.
우리가 입수해서 내려가면서 보니, 이미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있는 다이버들이 내뿜는 공기방울들이 눈 앞을 가릴 지경이다. 우리도 바닥에 자리를 잡으려니 빈 틈이 안 보인다. 도대체 어디가 좋은 자리일지.
자리를 잡고 머리를 들어보니 눈에 보이는 건 별로 없다. 어렴풋이 저 앞에 거대한 돌벽이 있는 것 같고, 그 외엔 온통 뿌연 물과 다이버들의 공기방울들. 다이버들이 자리를 잡겠다고 허우적대면서 바닥의 모래들이 다 일어나 버린 탓에 시야는 좀처럼 깨끗해지지 않는다. 가만히 기다리자니 귀에는 뽀골대는 소리뿐이지, 거리감도, 공간감도, 시간감마저도 흐릿해진다.
그러던 가운데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손을 뻗어 뭔가를 가리킨다. 음? 뭐가 나온 모양이지? 하지만 시야가 좋지 않아 뒤쪽에선 보이는 게 없다. 앞사람들의 손짓은 계속되었다. 분명 뭔가 나오긴 나왔나 보다. 앗?! 내 눈에도 뭔가 길쭉하고 날렵한 것이 스쳐 보인 것 같다. 그러더니 큰 그림자가 우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환도상어? 여기 오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던 생물이 눈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잘 보이지도 않는데도 묘한 긴장감과 함께 성취감이 느껴졌다. 이왕이면 좀 더 가까이 와 주련. 그렇게 조마조마 기다린 끝에, 그 녀석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 이것이 바로 그 환도상어!! 아니?! 얼굴 생김새가 리조트 벽에 그려져 있던 그 귀여운 얼굴 그대로잖아?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그 그림이 사실은 실사 수준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커다란 눈에 소심하게 벌린 입의 표정을 보니 수줍음을 많이 탄다는 게 묘하게 어울리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환도상어의 진가는 얼굴보다 꼬리에 있다. "환도상어"라는 이름에서도 예상이 되고, 또 인터넷에서 찾아본 사진에서도 긴 꼬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눈 앞에서 직접 보는 느낌은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몸길이의 절반을 차지하는 긴 꼬리는 마치 리듬체조의 리본처럼 큰 물결을 그리며 잔상을 남기듯 너울거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재 자체도 몰랐던 그런 생물을 바로 눈 앞에서 보다니! 그리고 상상보다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구나!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보니 금방 돌아갈 시간이 되어 버렸다. 안녕, 우아하고도 귀여운 환상의 생물. 분명히 우린 다시 볼 날이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