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강사 Apr 15. 2018

어딘지도 모르고 가는 "묻지마 투어"

스쿠버다이빙-29 | 좋은 데만 데려다 주세요 | 2012년 10월

길지 않은 시간에 같이 여행을 몇 번 다녀오다 보니 Angela 강사님에게 우리는 충성 고객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Angela 강사님을 믿고 따를 뿐만 아니라 아예 의지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Angela 강사님이 좋은 곳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하신다. 하지만 거기가 어디인지는 비밀이라고. 이른바 "묻지마 투어"이다. 인솔자를 100% 신뢰하고 군말 없이 가는 대신, 가는 곳은 분명히 처음 가 보는 곳이리라 장담한다고. 그리고 남들보다 먼저 가 보는, 아주 멋지고 근사한 곳이라고 한다. 고민이 필요 없다. 어차피 잘 모르는 우리가 알아서 찾는 것보다는 전문가의 추천지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안전빵일 테니까.


묻지마 투어의 보안은 철저해서 도착할 때까지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 어떤 경로로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면세품을 좀 사겠다고 해서 미리 알게 된 항공편명으로라도 알고 보니 필리핀이었다. (지금은 아예 공항에서 탑승권 나눠줄 때까지 안 알려주는 걸로 약속하고 간단다.) 뭐, 하지만 여기까지다. 아직 경험도 많지 않은 내가 필리핀행 항공편임을 알아도 더 이상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가는 길에 그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봐도 "좋은 곳이에요."라는 말 밖에는 못 들었다. 세부 공항에 도착하니 예약되어 있는 작은 버스들에 짐과 몸을 옮겨 실었다. 해는 저물어, 보이는 것은 지평선 아래에서 올라오는 어스름한 빛과 나무들의 실루엣뿐이다. 목적지도 어디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공항에서 짐을 찾았더니 이렇게 나왔다. 이정도면 귀엽다고 해야 되나...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버스를 타고 갔고, 그제서야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말라파스쿠아" 섬이라는 것을 들었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말파"라고 한단다. 하지만 역시, 목적지가 어디인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필리핀의 *데리아 "졸리비"(Jolibee).  부담(불안감) 없이 밥을 먹기엔 훌륭한 선택


무난한 메뉴를 시키면 무난한 음식이 나오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냥 이런 풍경만 보면서 열심히 달린다.


풍경은 별로 변하지 않고 해만 떨어지는구나.


우리가 탄 차가 속도를 줄이고 크게 커브를 틀고는 덜컹대나 싶더니 섰다. '다 온 건가?' 차 문을 열고 발을 디디니 찰그락 거리는 자갈 소리가 났다. 그리고 조금 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찰박대는 물소리도 났다. 그런데 소리만 들릴 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불빛도 없고 인적도 없다. '뭐지? 설마 납치인가?' 납치가 이렇게 허술할 리가. 우리가 믿을 곳은 Angela 강사님 뿐. 여기가 어디인지 물어보니 강사님도 긴가민가 하신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도착한 것이 아니고,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한다는데, 배가 아직 안 왔단다. 음... 뭔가 멀고 험한 길을 가는 기분이다. 그만큼 최종 목적지는 좋은 곳이겠지...


빛이라고 해 봐야 자동차 후미등 밖에 안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선착장


배가 왔단다. '응? 배가 어디에 왔다는 거지?' 사람들이 좀비처럼 어슬렁대며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바닷물이 있는 곳에는 배가, 아주아주 작은 나룻배가 있었고, 거기에 짐을 싣고 있었다. '설마 저 작은 배로 가는 건가?' 다행히 이 배는 더 큰 배로 옮겨 타기 위한 배란다. 지금 물이 너무 얕아서 큰 배는 들어오지 못해서 작은 배로 건너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작은 배를 옮겨 타는 것도 쉽지 않구나. 이곳이 시설 좋은 부두가 아닌 탓에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은 채로 배를 타러 가야 했다. 불빛이라고는 사공(?)이 비춰주는 희미한 플래시에 간혹 누군가 핸드폰으로 빛을 더해 주는 것뿐이다. 이건 뭔가 밀항하는 듯한 느낌인 걸?


아, 저기에 큰 배가 있구나. 그렇다고 해도 밀항의 분위기는 그대로인걸? 때마침 소나기도 내리고, 파도도 거칠어 바닷물이 갑판에 들이친다. 이 배도 크기만 조금 클 뿐 승객들이 편안히 머물 공간이 있지는 않다. 빗물과 바닷물에 몸이 젖는 것보다 짐이 젖는 게 더 걱정이라 모두들 흔들거리는 배 위에서 짐들을 갑판 가운데로 모으고 그 위에 비닐을 덮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 움직이던 배가 엔진 소리를 늦추며 바닷가에 닿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곳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야말로 도착한 것인가?' 그래도 짐을 누군가 옮겨 주는 것만 해도 편한 대접이구나. 이미 젖은 맨발로 걸어 해변을 벗어나니 바로 지척에 불이 환히 켜진 곳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온 말라파스쿠아 섬, Slam's Garden resort이다.


리조트에 도착해서 제일 원했던 Wi-Fi 비밀번호. 역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 느낌


매거진의 이전글 발리카삭에서 Fun 프리다이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