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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n 10. 2018

본격적인 레스큐

스쿠버다이빙-35 | 나부터 살고 보자 | 2013년 4월

레스큐 다이버의 본격적인 과정은 둘째 날부터 시작했다. 수영장 연습 때부터 같이 했던 "영맨"이 이번에도 같은 레스큐 다이버 버디가 되어 교육을 받게 된다. 아침부터 교육을 해 주시는 노마 강사님이 여러 가지 언질을 주셨다.


"오늘은 수영장에서 배웠던 수중과 수면에서 일어나는 응급 상황에 대한 구조 훈련을 할 거예요. 그리고 그거 외에도 여기저기서 뭔가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차분하게 도와주면 돼요.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이 편아-안히 다이빙하셔도 돼요."


스트레스 받을까 걱정해서 해 주시는 말이 고맙긴 하지만, 굳이 또 그렇게 얘기하고 나서 빙긋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시는 건 무슨 의미일까?


첫 번째 구조가 필요한(?) 사람이 첫 입수 때부터 나타났다. 회사 동호회 멤버인 그 후배 친구는 입수에 앞서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마스크(수경)를 쓰지 않고 목에 건 채로 입수를 하려는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마스크 써야지?"라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어쭙잖은 고집을 피우며 그대로 입수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친구는 노마 강사님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어설픈 다이버의 연기를 어설프게 하고 있는 중인 거다. 그런데, 좀 의심스러운 것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와중에 호흡기 대신 스노클을 물고 입수를 했는데,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영 이상해 보였다. '지령을 내려도 저렇게 내리진 않았을 것 같은데...'


"첨벙!" 하고 크게 물이 튀긴 후, 먼저 입수해 있던 나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허우적대고 있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 부축을 하고는 "호흡기 무세요. 마스크도 쓰시구요."라고 얘기하며 레스큐 다이버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면서 넌지시 물었다. "이거 노마 강사님 지령이지?" "근데... 호흡기 안 물고 입수하는 것도 지령이었나?" 이렇게 묻자 이 친구는 "어? 호흡기? 아닌데? 콜록콜록" 거리며 정말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지금 물 먹고 콜록대면서 본인이 처한 상태도 모르는구나? 역시, 지령은 마스크 안 쓰는 것만 받았는데 평소와 다르게 하다 보니 실수로 호흡기도 물지 않고 입수를 해서는 물 먹고 당황한, 정말로 레스큐가 필요한 다이버가 되어 버린 거였다.


훗. 이런 뻔하고 가소로운(?) 상황극이라니. 별로 긴장되거나 어려운 건 아니로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어디서 어설프게 곤경에 처한 다이버가 나타날까 신경이 쓰인다.  


물구나무를 서서 아래쪽으로 입이 삐죽인 Razorfish (레스큐 교육은 사진이 없네...)


그렇게 쓰고 싶지 않은 신경을 못내 곤두 세우니 다이빙이 다이빙 같지가 않다. 위험에 빠진 다이버는 머지않아 나타났다. 평소에 다이빙에 별 문제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공기 고갈 수신호를 보내며 보조호흡기를 달라고 하는 거다.


이건 누가 봐도 훈련용 가상 시나리오임이 드러나지만, 이렇게라도 훈련을 해 둬야 그나마 실제 상황에서 뭐라도 하지 않겠나 싶다. 옆을 보니 레스큐 버디 영맨은 누군가의 공기탱크를 다시 채워주고 있었다.


안전정지를 하며 그렇게 다이빙이 끝나나 싶었는데, 강사님이 눈 앞에서 요란스런 손짓을 하신다. 내용인즉, 아까 같이 오던 다이버(초빙 강사님)가 어디 갔냐는 거다. 그래, 이런 훈련이 있을 거라고 했지. (그래도 이게 훈련이란 걸 알아서 그렇지 실제라면 비상상황이다.)


나와 레스큐 버디 영맨이 같이 실종된 다이버를 찾아 나섰다. 교실에서 배웠던 내용을 머리에 떠올리며 마지막 봤던 곳이 어딘지, 어디선가 공기방울이 보이지 않는지 두리번거리며 다녔다.


아하하! 역시 멀리 못 갔군. 오래지 않아 바위 뒤에 숨어있던 조난자를 연행 구조해서 수면으로 데리고 왔다. 이 훈련은 애초에 얘기됐던 대로 조난자가 의식불명인 상태를 가정한 것이라, 구조호흡을 하면서 다이빙 장비를 몸에서 벗겨내고 안전한 해변이나 보트로 옮기는 것까지 해야 한다.


이 과정이 레스큐 다이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들다는 소위 "7번 스킬"이다.


PADI 레스큐 다이버 과정의 여러 가지 필수 스킬 목록 중 7번째 항목이라 하여 그렇게 부른다.


조난자가 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조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다이빙 장비를 적절한 순서와 타이밍으로 제거해서 옮기는 데 불필요한 힘이 들지 않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구조호흡을 하면서 조난자를 끌고 헤엄을 쳐야 한다.


이게 강사님이 시범을 보여줄 땐 그럭저럭 할만해 보이는데, 내가 직접, 그것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끊임없이 휘젓는 오리발에 허벅지 근육이 아파 오고, 어째 파도는 내가 갈 길을 거슬러만 치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 바다 정도면 아주 쉬운 바다란다. 바람 불고 파도 치면 헤엄은커녕 떠 있는 것만도 힘들어 내가 죽을 지경이 된다나. 요트에 먼저 올라간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지켜보면서 뭐라고 응원 소리를 낸 모양인데, 그런 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다.


그렇게 어찌어찌 강사님을 보트까지 끌고 왔고, 보트에 먼저 올라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정신을 잃은 연기 중인 강사님을 보트에 올리는 데 까지 오늘의 나의 레스큐 바다 실습이 끝나... 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레스큐 버디인 영맨에게도 나와 같은 훈련의 기회를 줘야 하는데, 이번엔 내가 조난자의 역할을 맡고 아까 내가 했던 구조 절차를 똑같이 해야 한단다.


뭐, 누워만 있으면 되겠지. 지친 몸을 쉬는 셈 치고 내 한 몸 교보재로 봉사하는 것 정도야...


아뿔싸.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누워만 있는 게 결코 편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구조"라면서 나에게 하던 것이 도리어 사람 잡게 생긴 것. 마우스-투-마우스 구조호흡 연습이라고 계속 내 얼굴을 누르는 바람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코로 입으로 계속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멀쩡하게 누웠던 내가 구조 연습이 계속될수록 꼴딱꼴딱 물먹고 숨 못 쉬고 잠깐 숨좀 쉴라치면 다시 얼굴을 물에 파묻어버리니!


영맨의 훈련이 끝나고 마침내 나도 "구출되었다!" 노마 강사님은 조난자 구출 시의 유의점으로 조난자가 물을 먹지 않도록 머리를 잘 받쳐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셨고. 아직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나에겐 조난자 간접 체험으로 앞으로는 더 구조를 잘 하게 될 거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셨다.


마지막에 물을 잔뜩 먹고 나니 하루가 정신이 없는데, 또 뭔가 일이 생겼다. 내가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의 광각렌즈가 사라졌다. 레스큐 훈련 때는 정신없이 번잡하다 보니 유난히 뭔가를 많이 잃어버린단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빠졌을 렌즈를 도대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이제 해도 기우는 듯하고, 모두들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어디서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걸 찾느라 시간을 쓰기도 그렇고 해서 난 그냥 교육비로 낸 셈 치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노마 강사님이 그래도 잠깐 찾아보자고 하신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나는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 모르겠는데, 아까 내가 조난자 강사님을 구조한 곳이라 한다. 여기서 몇 명이 다시 잠수를 했다. 바닥은 비교적 평평하지만 바위들로 가득한 7-8m 수심의 얕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렌즈를 찾을 리가 있을까.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나 보다는 생각으로, 운 좋으면 눈에 보이겠지 하며 찾는 둥 마는 둥 돌아다녔지만 끝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도 마지막으로 배로 올라왔고. 모두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위로했다. 그러다 조난자 역할을 해 주신 O강사님이 "근데 이거 중고로 팔리긴 할까?" 하면서 뒤춤에서 내 렌즈를 꺼내 드시는 게 아닌가. 헐! 이게 어디서 난 거예요?


말도 안 되게 아까 그 바닥에서 찾은 거라 신다. 어쩐지 아까 보니 중간에 혼자 먼저 올라가시더라니. 가슴품에서 잠깐 반짝이며 보이던 게 내 렌즈였군?! 그래, 이건 아직 내꺼인 운명인가 보다.


그래서 그날 저녁엔 감사의 뜻으로 그 배에 있던 다이버들에게 맥주를 한 병씩 쐈다.  


거북이는 언제나 인기 폭발 (레스큐 교육은 사진이 없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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