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강사 Jan 06. 2019

어둠에 가려진 칸쿤의 첫인상

다이빙 여행 | 칸쿤-03

그래, 내 그럴 줄 알았다고. 항공사 고객센터의 흑인 아주머니의 웃음이 부드럽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피어나는 의심은 또 다른 얘기인 게지. 같이 보내 주겠다던 내 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그다지 놀라거나 불안해하지도 않고 터엉빈 공항에서 혼자 Baggage claim으로 갔다. 오히려 이렇게 태연한 나 자신이 놀라울 정도.


Baggage claim에는 여성 직원이 한 명 있었고, 나는 담백하게 나와야 할 내 짐이 안 나왔다고만 얘기했다. 직원은 뭔가 검색하는 듯하더니, 짐은 아직 애틀랜타에 있고, (그럼 그렇지. 그나마 다행이군.) 내일 보내줄 거라며 서류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머무는 곳이 어디야?"라는 질문에, "아... 잠깐만." 예약 바우처를 보면서 "빌라 데 로사"라고 대답했다. 그 직원은 묘한 표정을 한 번 짓더니, 바우처를 잠깐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빌라 데 로사가 아니라 비야 데 로사야. 그리고 보자... 아꾸말(Akumal)이구만." 그래, 내가 가는 곳은 바로 그곳이야.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스페인어를 배우기 전이라 "Villa"를 "빌라"라고 읽은 거다.)


확인서를 받아 들고 휑한 공항 로비를 지나 출구로 나왔다. 오, 세상에, 맙소사! 아무도 없는 출구에 한 남자가 나를 보고 웃으며, "태영?" 하고 다가온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린 걸까? 비행기 연착에 수하물 분실 처리 때문에 한 시간은 족히 넘게 기다렸을 텐데 꿋꿋이 기다리고 있어 줘서 너무 고마웠다.


단 둘이 탄 미니버스가 차도 별로 없이 넓기만 한 직선 주로를 내달렸다. 이 친구의 이름은 곤잘레스. 14년 동안 이런 일을 해 왔고, 영어를 따로 배운 적은 없다는데, 일 때문에 자연스레 영어를 잘하게 됐단다. 처음 만난 남자 둘이 깜깜한 곳에서 모국어도 아닌 말로 얘기를 나누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마는, 곤잘레스의 조곤조곤한 대화가 어쩐지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줬다.


1시간 반 동안 어둠 속의 대화. 설사 납치범이었대도 전혀 눈치 못챘을 거다.


내 숙소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칸쿤과는 좀 다른 곳이라는군.


직선으로만 지루하게 달리던 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차가 뒤뚱거리며 어둠 속에서 뽀그작뽀그작 자갈 밟는 소리가 들린다. 오, 다 온 건가? 느린 속도로 조금 더 가던 차는 어느 작은 리조트 앞에 멈추며 곤잘레스가 내게 다 왔다고 했다.


어둡고 적막한 숙소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쏘ㄹ조"(?)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내 방 키만 전달해 주러 왔단다. 그러고 내일 아침이면 리조트 주인을 만날 수 있을 테니 그때 필요한 얘기를 하면 될 거란다.


키를 받고 주위를 둘러보니 불현듯 여기에 오기 전에 Angela 강사님이 해 준 얘기가 생각났다. "거기 아무것도 없는 동네예요." 그래서 난 아무것도 없이 때 묻지 않은 곳이 좋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때 상상한 곳은 이렇게까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은 아니었단 말이지! 어느 정도 아무것도 없었냐 하면, 마당 한 모퉁이에 놓인 생수 디스펜서를 보고서는 '앗! 저기 생수 디스펜서가 있군. 적어도 갈증에 힘들진 않겠어. 컵은 없어도 손으로 받아먹으면 될 테고.'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방에 와 보니 여기도 역시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잠 잘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인가. 짐도 없어서 할 일도 없고, 방에는 TV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자는 것 밖에 없구나.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푹신한 침대와 에어컨, 화장실이 딸린 것도 감사해야 할 지경의 숙소


매거진의 이전글 호락호락하지 않은 칸쿤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