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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Dec 23. 2018

호락호락하지 않은 칸쿤 가는 길

다이빙 여행 | 칸쿤-02

코스타리카의 산호세 공항에서 나는 칸쿤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인 애틀랜타행 비행기를 타려는 중이었다. 환승 시간 3시간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건만, 문제는 비행기가 내 기대대로, 아니 시간표대로 딱딱 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 그동안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서 봐 왔던 미국 항공사들의 종잡을 수 없는 운영 얘기가 나와는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겪는구나.


코스타리카 산호세 공항에서 본 풍경. 멋진 곳이다.


결국 1시간을 넘겨 비행기에 탔다. 이런 식이라면 3시간이 과연 충분한 환승 시간일까라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고, 미국이란 나라는 들어갈 때든 나갈 때든 항상 외국인을 귀찮게 하지 않던가. 뭐, 그래도 경유일 뿐이니까 다음 비행기 타는데 딴지를 걸진 않겠지...


라는 건 역시나 나만의 착각이었나!!! 어째서 미국은 경유만 할 건데 굳이 입국 심사를 하는 것인가? 애틀랜타 공항에 내려 안내를 따라 들어가니 마치 배탈 난 뱃속의 창자처럼 둘레둘레 줄을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Oh my goodness.


미국 공항의 입국 심사는 또 어떤가. 느리기도 느리지, 이것저것 이상한 걸로 딴지 걸지,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지, 지난번 미국 입국 때도 고작 여권 겉에 싸인 케이스를 들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 지르며 그 여권케이스를 벗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입국심사관을 보지 않았던가. 물론 이런저런 환경적 요인으로 스트레스 받다 보니 그렇게 됐을 거라고 이해는 해 보겠지만. 지금은 당장 내 여행이 불안한 게 문제다.


이대로 있어서는 절대 다음 비행기를 타지 못할 것 같다. 평소 그냥 정해진대로 고분고분 흘러가기만 하는 내 성격이지만 지금은 가만있을 수가 없다. 역시나 딱히 친절할 것 같지는 않은, 사람들 줄을 세우며 정리하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내 다음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며 어찌 안 되겠냐고. 그 직원은 내 얘기를 듣지도, 내가 펼친 티켓도 보지 않은 체 얘기했다. 여기 다 바쁜 사람들이고 당신에게만 특권을 줄 수 없다고.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이런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은 있을 테니 그런 반응일 거고, 또 매번 그런 요청을 본인이 어찌할 수는 없을 테니. 비행기가 연착한 것이, 내 다음 비행기가 촉박한 것이 그 직원에겐 아무 책임도, 상관도 없을 일이니. 근데 우리나라 공항이나 항공사는 잘도 챙겨주는데... 역시 우리나라가 정이 많은갑다...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봤자 줄은 냉장고 속 장모님이 주신 김장김치처럼 도통 줄지를 않는다. 이제 체념을 해야 할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지 모를 애매한 줄 앞쪽임에도 입국심사관까지의 거리는 멀기만 하고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간다. 도대체 뭘 물어보는지, 아니, 별달리 얘기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저리 시간을 죽이고 앉아 있는가.


드디어 내 차례다! ㅠㅠ ... 어디 가냐, 뭐하러 가냐, 언제 돌아가냐. ... (도장 쾅!) 뭐야, 이렇게 뻔한 얘기를 하려고 도대체 얼마나 기다리고 얼마나 맘을 졸였던 거야... 그리고 경유하는데 왜 입국심사 같은 걸 하냐고오...


그렇게 입국심사를 지나 연결 편 비행기를 타러 가야 했다. 정신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 게이트 위치도 못 찾겠다. 안내 모니터에서 게이트 번호 찾기도 힘들지, 직원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나의 다음 비행기 게이트! 다행히 아직 시간이 남았다! ...라는 건 역시 나만의 착각. 비행기는 코앞에 있건만 탑승이 마감됐단다. 하.하.하. 이거 뭐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여기서 뭘 해봤자 나만 손해일 건 뻔하니 다음 해결책을 찾아야지.


그래서 난 어찌해야 하나 물어서 항공사의 고객센터로 갔다. 아, 왜 여기 사람들은 첫인상이 어찌 그리 험악하기만 한 거야. 공항 직원이란 일이 그리도 힘든 일이었구나를 간접적으로 깨달은 나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나를 만나기 전부터 원래 그런 표정인 듯 구긴 인상의 직원에게 내 사정을 얘기했다. 무려 고객센터의 직원은 나를 취조하는 듯 (왜 귀찮게 나에게 일을 만드냐고 생각하는 걸지도?) 질문을 던졌고, 내가 뭘 물어보면 선심이라도 쓰는 듯 최소한의 대답만 해 주었다.


대충 이런 분위기


그래도 내가 고분고분 얘기를 잘하는 게 마음에 들었던지, 그 흑인 아주머니 직원은 내게 얘기를 하면서 이따금씩 미소를 지었고, 결국 1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다음 비행기로 칸쿤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처리해 주었다. 물론 내 짐도 같이 갈 거란다. 그리고는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웃으며 인사를 해 주니, 지금까지 졸인 마음도 다 지난 일이 되어 버렸고, 앞으로 나를 기다릴 여행에 별 탈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칸쿤 공항에서 나를 기다릴 픽업 택시 기사에게 늦게 간다고 연락을 해야 했다. Angela 강사님이 다행히도 로스앤젤레스에서 환승 전 여유 시간에 해변에서 저녁 먹고 있던 중이라 나 대신 연락을 해 주셨다.


한 시간 후에 뜬다던 비행기조차 제시간보다 훨씬 늦게 떴다. 쳇. 비행기를 타고 칸쿤에 도착하니 이미 밖은 깜깜했다. 그리고 이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깊숙이 숨어있던 나의 불안한 마음도 점점 검어지는 것 같았다. 내 짐은 도대체 왜 안 나오는 거냐... 분명 내 짐도 꺼내서 다시 실어 준대지 않았던가... 그 얘기를 들을 때부터 반은 믿고 반은 안 믿었었는데, 이제 그 의심이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보지 않고 믿는 자 진복자라 했거늘, 들을 때부터 의심부터 한 내가 신심이 부족했던 것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결국 공항에 나 혼자 남을 때까지 나의 짐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이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baggage claim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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