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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Mar 03. 2019

세노테에 얽힌 신비스런 이야기들

다이빙 여행 | 칸쿤-07

이번 여행에서 하려고 했던 교육은 완료했으니 편안히 세노테 다이빙을 할 차례다.


애증의 오라일리언 강사 대신 다니엘이라고 하는 듬직한 남자 강사가 나타났다. 강인한 외형이었지만, 표정이나 말투는 훨씬 부드럽고 싹싹한 느낌이다.



교육 때와 마찬가지로 강사 1 명에 손님 1 명인 편안한 다이빙이 될 것 같다. 다이빙은 많이는 못하고 두 번 정도 가능할 거라는데, 다니엘이 "Carwash"와 "Temple of Doom"을 추천했다. Carwash는 여기 오기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Temple of Doom"? 공포의 사원? 이거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부제 아녔어? 동굴에 사람 해골 그득하고 물속에서 고대의 영혼이 나올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이다.


뭐, 그런 이름의 느낌 때문이 아니라도, 나는 어제의 에덴 세노테의 풍경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터라, 다니엘에게 너른 입구에 사람들이 스노클링도 하는 그런 세노테를 가고 싶다고 했다. 다니엘은 Temple of Doom 대신 Gran Cenote를 가자고 한다.


Temple of Doom은 입구가 특이하다. 입구가 외부로 노출되어 있지 않고, 지면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내려가면 지하에 물이 가득 찬 호수가 있는 구조다. 심지어 그 작은 구멍들이 3 개가 있는데 해골 모양으로 보인다 하여 "Calavera", 즉 "해골"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하니, 공포의 사원이란 이름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거다. 게다가 어제 본 Halocline을 여기서 다시 볼 수 있다 하여, 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Temple of Doom을 그대로 가고 Carwash를 빼는 건 어떠냐고 했는데, Carwash는 뺄 수 없단다. 꼭 가야 된단다. 음... 뭐지? Carwash가 꽤나 유명하고 인기 있는 세노테라는 얘기는 들어본 것 같지만, 이렇게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아쉽지만 Temple of Doom은 다음 기회에...


Cenote Carwash의 마야 이름은 Aktun-Ha. Aktun은 동굴, Ha는 물이란 뜻이다. 정말 원초적인 이름이군. 그도 그럴 것이, Carwash는 세노테 초창기에 발견된 시조격인 곳다. 그게 1983년이니, 그렇게 오래된 옛날도 아니다. 세노테의 존재 자체를 모르던 시절, 동네의 택시 운전사들이 이 호수에 와서 세차를 했다 하여 Carwash란 이름이 붙었단다. 그런데 그런 더러운 호수 아래에 그런 신비의 공간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야인들이 알았던 그런 곳을 현대인들은 미처 몰랐던 것도 신기하고, 또 그 호수 아래에 뭐가 있을지 탐험해 볼 생각을 해 본 사람들도 신기하다. 그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주인인 Tony Derosa라고 하니, 내가 마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와 탐험의 세계에 발을 슬쩍 들이밀어 놓고 있는 기분이다.


여기는 푯말도 대충 만든 것 같고 겉보기는 뭐 좀 그렇다...


Carwash에 도착했다. 아니, 이 지저분한 호수는 뭐지? 여기가 세노테라고? 어제까지 갔던 그 맑은 물과는 전혀 다르잖아? 설마 이 뿌연 물이 아직도 택시들이 여기서 세차를 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뭐? 게다가 가끔 악어도 나온다고? 그러면서 다니엘이 저기 저쪽에 주로 나오는데 오늘은 안 보인단다. 한편으론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론 호기심에 악어를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


물도 뿌옇고...
이 부근에서 악어가 보이기도 한다는데. 보고 싶기도 하고 안 보고 싶기도 한 복잡한 심경...
그래도 안내 푯말 그림은 귀엽네. 내용은 결국 "말 안 들으면 너 죽는다" 이지만...


Carwash의 진가는 물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물 밖에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 뿌연 물이, 수면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깨-끗!한 물로 바뀌어 버린다. 오오. 놀라워라. 물은 깨끗하지만 바닥은 좀 지저분하다. 낙엽과 나뭇가지가 그득하고 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 근데 또 그 주변으로 물고기도 돌아다니고, 거북이 가족이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있으니 이 또한 새로운 풍경이다.


뿌옇기만 한 수면을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한 물이 나온다. 오! 놀라워라.
아장아장 어딘가를 가는 거북이 가족. 잘 보면 어미 거북 뒤에 새끼 거북이 따라가고 있다.


Carwash의 진가는 또 있다. 물속에서 고개를 들어 빛이 들어오는 수면을 바라보면 오래된 나뭇가지들과 흐릿한 빛이 어우러져 으스스하지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풍경이 세노테 사진에서 빠지지 않은 풍경이니, 다니엘이 빼지 않고 넣어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동굴 다이빙 시작을 위해 라인 세팅을 하고 있다.
라인을 설치해서 돌아올 길을 표시한다. 마치 미노타우르스를 잡으러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처럼.
훈련을 받지 않은 다이버는 더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 하지만 나는 훈련을 받은 다이버. 후훗
작은 화살표를 설치해서 출구 표시를 한다.
물밑에서 본 카워시 세노테의 시그니처 풍경
날이 좋으면 훨씬 멋진 풍경이 나온다는데 오늘은 그렇지는 않아 아쉽다.


두 번째 다이빙 포인트는 Gran Cenote. 이름처럼 거대한 세노테이다. 다른 곳에 비해 부대시설도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스노클러들이 많이 있는 풍경을 원해서 온 곳인 만큼 정말로 스노클러들이 많다. 입구의 물이 넓고 깨끗한데, 동굴 천장이 꽤 높아서 깊은 곳까지도 스노클러들이 들어올 수 있다. 동굴의 깊은 곳은 드문드문 박쥐들이 날아다녀, 동굴의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 준다.


박쥐가 날아다니는 동굴 안까지 스노클링이 가능해서 스노클러들에게도 신비로운 느낌을 줄 것 같다. (그래도 다이빙만 하겠어...)


이전 다이빙들에 비해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간 것 같다. 넓은 공간도 나오고 물에 잠긴 종유석과 석순도 훨씬 많다. 다만, 다이버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종유석들이 많이 부서져 있다.


입수와 출수를 위한 플랫폼
동굴의 초입은 많이 훼손된 것 같다.


가다 보니 뭔가 푯말이 보인다. 오오. 이게 뭐야? 또다시 으스스함을 느끼게 하는 낫을 든 사신의 푯말이다. 실제로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니, 이렇게라도 경고를 해야 좀 괜찮으려나.


무시무시한 경고 표지판. "들어가면 죽음.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임. 죽음을 감수하면서 볼 거는 없음." 이런 내용이다.


수중의 동굴에서 내다보는 입구의 풍경 또한 근사하다. 가끔씩 스노클러들이 들어와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가기도 한다. 저 아래 풍경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었을까?


다이빙 막판에 바깥을 보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그럴 필요가 없지만 스노클러를 보면서 괜히 우쭐해짐...


이번 여행의 다이빙이 모두 끝났다. 여기는 정말 시간이 있으면 다 돌아다녀보고 싶을 만큼 신비로운 곳이다. 그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제 여기를 와보나 상상만 했던 것에 비하면 꿈이 하나 이루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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