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스카나 돌로미티 렌트카 여행 - 1/18
Sophy가 선배 언니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며, 말이 적어 무료한 남편에 대한 불만을 잠시 잊은 그다음 날, 이런 얘기를 했다.
"언니들이랑 이번 여름에 이탈리아 가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도 갈래?"
머릿속에 노란 경광등이 켜졌다. 눈치의 원기옥을 모아야 할 때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탱: 여자들끼리 재밌게 놀다 와. 난 집에서 잘(우히히~) 있을 테니 걱정 말고.
Sophy: 혼자 안 심심하겠어? 알았어, 그럼 우리끼리 다녀올게.
... 삑! 틀렸습니다.
그래, Sophy가 날 떼 놓고 어딜 갈 생각을 하진 않잖아. 근데 언니들이란...? 아무튼, 백일몽 같은 상상은 접고 현실적인 대답을 했다.
탱: 뭐, 난 상관없어. 같이 가자면 같이 가지 뭐.
Sophy: 음, 그래, 잘 됐네. 그럼 탱을 운전수 시키면 되겠다.
그래, 그럼 그렇지.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게지.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은 토스카나의 멋진 풍경을 구경하자는 것. 작년에 나를 떼 놓고 토스카나 풍경을 맛보고 온 Sophy가 제대로 구경을 해보자는 마음인데, 나랑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건지, 언니들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짐꾼 운전수가 필요해서 날 데려가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Sophy가 먼저 어디를 어떻게 가자고 얘기하면 나는 그저 산책 나간다고 좋아서 목줄 물고 오는 강아지마냥 그대로 따라가는 게 그간의 패턴 아니었던가.
항공권, 경로, 숙소, 음식 등등 거의 모든 것은 Sophy가 알아서 하고, 자동차에 관련된 것만 내가 도맡아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동차 선택에서부터 난관이 닥쳤다. 유럽의 렌트카는 오토보다는 수동 차량이 훨씬 많았던 것. 만일 수동 차량을 빌릴 수밖에 없다면 집에 있는 레이싱 게임 장비로 열심히 수동 자동차 운전 연습을 하면 될 거야!...라는 말은 아무도 장난으로도 받아주지 않았다.
선택의 폭이 좁아진 가운데 그나마 오토, 인원수, 트렁크 용량이 맞는 차량을 선택했다. (나중에 이 선택은 큰 문제가 될 뻔했다.)
아직 만나 본 적도 없는 운전기사와 고객님들 나와 선배 언니들 인사도 하고 여행 일정도 살펴볼 겸 송리단길의 타이 음식점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제 첫 단추를 꿰는 여행 준비는 매끄럽게 흐르지만은 않았다. 아무 생각 없는 나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 바라는 것이 제각각이었다. 다들 각자의 취향이 있는 것이니 의견 일치가 안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야 한낱 운전기사라 알프스를 넘자거나 로마에서 빌린 차로 유로터널을 건너 보자는 얘기만 아니면 되겠지만, 조곤조곤 조용히 얘기하는 3명의 여인의 대화에서는 불꽃이 튀겨 테이블의 팟타이가 튀김이 될 것만 같았다. (팟타이 튀김? 맛있겠는데?) 나는 그냥 운전만 잘 하자는 생각으로 애써 건조한 인상을 지으며 나랑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멀뚱멀뚱 있을 수밖에.
그렇게 첫 모임을 마치고 나니 돌로미티라는 새로운 여행지가 일정에 끼어들었다. 언니들이 어디선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왔는데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라는 궁금증을 버릴 수 없어 들어온 일정이다. 대신 지난 여행에서 내가 못 사 와서 아쉬워하던 유리 문어 공예품을 베네치아를 하루 둘러보면서 찾아보려던 Sophy의 일정은 빼야 했다. 하지만 더 걱정스러운 건 무엇보다 돌로미티는 "산"이다, 산! 아무리 남편을 사랑한다는 그녀가 산에 가자는 말을 꺼내면 무의식 중에 주먹을 쥐고 "죽을래?"라고 말한다던 그 산이다.
돌로미티 일정의 난입(?)은 은근히 혼란을 가져왔다. 여유롭게 둘러보려던 토스카나 일정이 반토막 났고, 베네치아는 귀국 항공편 이용만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러면 렌트카 반납 시간도 변경해야 해서 이미 예약된 렌트카 예약 확인 인터넷 페이지를 열었다. 앗? 이게 뭐지? 변경은 안되네? 변경을 하려면 이전 예약과 무관하게 새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해 둔 예약을 취소한 다음 그 차가 내 새 예약에 배정이 되기를 바라야 하나? 근데 그걸 어떻게 보장한담?
불확실성이 높은 것 같아 구식(?)의 방법으로 돌아갔다. 한국 사무소가 있어서 여기에 전화를 걸었다. 과연 전화 연결은 오래 걸린다. 안내 멘트를 들으며 누가 이기나 하는 고집으로 기다렸더니 전화 연결이 되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예약 가능한 차량이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준단다. 그리곤 오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상담원과 얘기하면서 곤란했던 여러 가지 실타래가 풀려갔다. 비용이 좀 오르더라도 더 큰 차를 선택해야 짐이 다 들어갈 거라는 것, 로마의 테르미니 사무소보다는 근처의 다른 사무소가 덜 붐비고 직원 만나기도 쉽고 차량 인도도 편할 거라는 것, 인터넷 비회원 예약가가 싸 보이는 이유는 보험료가 반영되지 않아서라는 것 등, 그렇게 안개가 걷히듯이 예약이 휘리릭 끝나버렸다. (감사합니다, 허츠 사무소 최승명 상담사님)
골치를 썩이던 렌트카 예약이 끝나니 돌로미티에 대해서 알아보던 Sophy의 불만도 훨씬 덜해진 것 같다. 사실은 내가 렌트카로 씨름하는 동안, Sophy는 그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 많은 이탈리아의 여행지를 추리고 추려 경로를 만드느라 머리에 김이 났고, 그렇게 겨우 맞춘 경로대로 숙소를 잡느라 폭발 직전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경로가 인기 여행지이다 보니, 여행 3개월 전인 지금 시점에는 좋은 숙소 예약이 쉽지 않았던 것.
항공권, 숙소, 렌트카, 경로까지 다 예약이 완료되었다. 준비물들을 챙길 차례다.
인터넷으로 현지 유심을 샀다. 1주일 여행에 6GB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 운전이 그렇게 고약하다는데 블랙박스를 어떡할까 생각하다가 고프로를 가져갈까 했지만, 과하다 싶어 그냥 안 쓰는 구형 아이폰과 거치대를 챙겼다. (블랙박스 용도로 가져갔던 것이지만 뜻밖에 좋은 기록 영상을 남길 수 있었다.)
토스카나의 멋진 사진을 어디서 찍을 수 있는지 검색도 열심히 했다. 지도만 봐서는 여기가 도대체 어딘지를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기록하자.
운전자 몫이라고 Sophy가 유럽 렌트카 여행 책을 e-book으로 빌려서 나에게 줬다. 최근에 나온 책인데, 다른 책들과 달리 본인 여행기만 나온 게 아닌 실용 정보로 가득한 공대생 취향에 맞는 책이로군. 렌트카 이용, 체크 사항, 보험, 운전 중 주의 사항, 톨게이트, 법규 단속, 사고 대처 등 매우 자세하게 잘 되어 있고, 저자도 "유럽 렌트카 여행은 쉽고 재밌답니다."라고 써 뒀다. 하지만 그다음에 "단, 이탈리아는 예외입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쿠궁-) 그러고는 "유럽의 운전"과 별개의 챕터로 "이탈리아의 운전"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였다.
?? 유럽 운전 ≠ 이탈리아 운전 ??
여기에 ZTL이 나왔다. ZTL이란 "Zona a Traffico Limitato"의 뜻으로, 유적 보호를 위한 자동차 진입 제한 구역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행자들에겐 생소하고, 표지판도 지역마다 다르기도 하고, 시간마다 제한 사항이 바뀌는 데다가 카메라로 단속해서 무지막지한 벌금을 때린다 하여 여행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이라 한다. 이걸 또 공부하다 보니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서 같이 쓸 수 있는 ZTL Radar라는 앱이 있다 하여 이것도 미리 연구했다.
그렇게 3명의 여인을 모시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하니, 주변 인물들 모두 "뭐?"라는 감탄사 뒤에, 잠시 "아..."라는 뜻 모를 효과음(?)을 내뱉고는 딱히 부러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나 정말 괜찮다니깐.
Summary
8월의 여행을 5월에 계획하기에는 충분히 이르지 않다. 미리미리 부지런히 준비하자.
렌트카 예약할 때는 고려 사항들이 많다.
탑승 인원과 적재 용량은 "And"가 아니라 "Or"라고 생각하자. 짐을 싣기 위해서는 좌석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예약한 차량과 등급이 같은 다른 차량이 배정될 수도 있다.
이왕 여행 가는 거, 조금 넉넉한 차량을 예약하자.
한 번 예약한 차량의 일정은 수정이 어렵다.
렌트카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면 인터넷보다 훨씬 수월하게 예약할 수도 있다.
유심 6GB로 일주일 정도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면 용량이 빠듯하다.
멋진 사진을 언제 어디서 찍을 수 있는지가 기록된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운전 여행에서 블랙박스는 꽤 유용하다.
이탈리아에서 운전을 하려면 ZTL에 대해서는 꼭 알아봐야 한다.
그래서 짜여진 최종 경로는
1일 차: 로마
2일 차: 로마 - 티볼리 - 치비타 디 바뇨레조 - 아시시
3일 차: 아시시 - 몬테풀차노 - 몬탈치노
4일 차: 몬탈치노 - 시에나 - 몬탈치노
--- 여기까지 토스카나. 이후로 돌로미티
5일 차: 몬탈치노 - 시르미오네 - 까레짜 호수 - 키우사
6일 차: 키우사 - 오르티세이 - 코르티나 담페초
7일 차: 코르티나 담페초 -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 브라이에스 호수 - 산 비토
8일 차: 산 비토 - 베네치아 공항